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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Oct 29. 2022

맑고 깨끗하고 더운 구름 같은

모호 프로젝트 [Sauce, Kite, Lake] 라이너노트

 * 쓴 것들을 올려두는 것을 잊고 있다가 뒤늦게야 한번에 대량 업데이트.


맑고 깨끗하고 더운 구름 같은

모호 프로젝트 [Sauce, Kite, Lake]


Sauce와 Kite, Lake. 그러니까 (음식의 풍미를 더하는) 소스와 연, 호수라는 알듯 말듯 한 제목의 기원이 궁금해 물었다.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해서 이름을 한 글자씩 영어로 쓴 거야, 라는 조금 싱거운 대답.


싱겁지만 모호의 살짝 달뜬 표정에서 전에 없던 가뿐함이 느껴졌다.


그건 아마 오랫동안 짊어져 온 무게를 내려놓고 다시 첫 발자국을 내딛는 마음이 내게도 전해진 탓일 게다.


모호의 음악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3인조 록밴드 구텐버즈다.


한국 인디록의 201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낯설지 않은 이름, 구텐버즈는 2012년 첫 EP [팔랑귀]로 데뷔해 2016년 작 정규앨범 [Things What May Happen On Your Planet]에서 얼터너티브와 포스트 펑크, 슈게이징 등이 절묘하게 혼합된 사운드를 선보이며 록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론 오래된 동지, 이호와 함께 결성한 듀엣 호와호도 2015년 낸 [Unknown Origin]이 이듬해 열린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성과를 인정받은 바있다.


그 와중 '나는 모호'라는 이름으로 포크에 기반한 솔로 음반 [따듯한 눈썹은 되고 싶지 않아요]를 내기도 했다.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던 해의 겨울, 구텐버즈가 해산을 알렸을 때,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이어진 공백까지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호와호와 모호 프로젝트로 드문드문 공연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곤 했으나 이듬해 코로나19의 확산되면서 채널이 없어졌다.


고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모호는 자신의 집과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이어 나갔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2년간에 걸쳐 이어지는 지난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Sauce, Kite, Lake]는 이 고단한 여정의 결과물이다.



곧 발표될 음반을 미리 듣는 호사를 누렸다.


처음 플레이하고선 모호에게 말했다.


"지금 시점의 모호가 낼 것 같은 음반이네요." 예측가능한 음악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그간 모호가 몸 담아온 밴드, 그리고 해온 작업들의 결과물들이 통합적으로 응축된 음악이란 뜻이다.


홀로 주도하는 음악인 탓에 가장 익숙하고 간편한 악기, 즉 포크 기타가 곡을 이끄는 탓에 첫인상은 포크 음악에 가깝게 들린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보다 넓고 몽글몽글한, 마치 구름 같은 질감이 사운드를 마주하게 된다.


추운 날, 샤워기로 온수를 틀면 피어오르는, 맑고 깨끗하고 더운 구름.



겹겹이 쌓인 코러스, 기타, 신시사이저가 만드는 구름 같은 사운드 속을 날아다니는 건 감각적인 단어-이미지들이다.


음반의 제목인 [Sauce, Kite, Lake]와 같은, 맥락이 불분명하고 건조하지만 창작자의 마음 속을 부유하는 듯한 이미지들.


제각각의 방향으로 분방하게 날아다니며 때로는 충돌하고, 또 때로는 서로 영향을 주는 단어들의 쓰임은 최승자나 허수경의 오래된 시들을 연상하게도 한다.


음악과 말들의 이러한 뒤섞임이 이루어내는 것은, 뜻밖에도 얼터너티브한 인디팝들이다.


날선 록 사운드로 관객들을 열광으로 인도하던 모호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선을 넘는다.


팝의 속성이 그러하듯, [Sauce, Kite, Lake]에는 수많은 음악의 요소들이 용해되어 녹아들어 있다.


이 음악들은, 한편으론 창작자로서의 모호가 더 이상 경계를 짓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쳐나가겠다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짐이란 용기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모호는 음반 발매를 위한 텀블벅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사는 쓰지만 긴 글로 뜻을 전하는 일에 서투르고, 일기를 써도 대체로 부정과 불안에 대한 것들을 적는 편입니다. 나의 이런 성향과 경험 탓에 이 음반에 대한 진심을 글을 통해 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지인에게 털어 놓았더니 그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부정한다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야. 네 노래에서 나는 그것을 느꼈어.'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모호 프로젝트의 모호입니다."



[Sauce, Kite, Lake]에 실린 음악들은 일반의 취향 바깥에 있는 것들이다.


이 노래들이 얼마나 확산되어 나갈지, 그래서 이 노래를 좋아할 만한 사람들의 귓가에 닿게 될지는 음반이 나온 이후, 모호가 어떻게 해나가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호가 '한결 편해졌다'는 사실이다.


그건 아마 자신과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


래서 [Sauce, Kite, Lake]는 음반인 동시에 계기이기도, 약속이기도 하다.


모호라는 창작자가 이후로도 음악을 해나갈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약속.



― 단편선 (음악가,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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