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희 Jun 18. 2019

이직에 드는 비용

마음을 쓴 것도 비용으로 친다면, 이직에는 반드시 과소비를 하게 된다.

 이직한 지 딱 2주가 지났다. 지금 내 이직의 만족도에 대해 말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직한 곳에 스며들자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실 계열사 내에서 전배한 거라서 완전 이직은 아니고 쩜오(0.5)이직 정도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2주 동안 나에게는 영어 이름이 생겼고, 내 책상에는 앞면과 좌우측면의 드높은 파티션이 없어졌다. 통계를 보고 숫자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업무가 주어진 대신, 2년간 불티나게 써온 업무용 유선 전화번호는 결번이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최신 트렌드나, 컨텐츠와는 가깝게 지내게 되었지만, 매출 KPI와는 훌쩍 멀어졌다. 


 이전에 하던 일과 조금도 교집합이 없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두 번의 이직에서 반복된 나만의 이직 공식이었다. 이전에 하던 일에 조금도 싫증 난 적이 없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늘 해 온 일에 애정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을 때 성급히 도망치는 사람처럼 짐을 싸서 이직을 했다. 그 애정이 바탕이 되어 나는 떠나지만 그 일들과, 그걸 해내는 사람들이 좋은 결실을 얻길 진심으로 바랬다. 나는 다만 좋은 면이든 싫은 면이든 일단 내게 연결된 모든 전선을 끊어내고 리셋 버튼을 누르듯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세상에 아직 해보지 않은 일들이 많았고,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갈피를 잡아보고 싶었다. 


 여기서 하나 간과한 게 있다면 내 나이, 그리고 내 연차. 연차가 쌓일 수록 몸이 무거워진다는 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40대 50대에는 내가 나의 경험들을 또 어떻게 정의할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28에 했던 이직과 30살의 이직은 무게감이 달랐다.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거나 재촉하진 않았지만 해당 업종에 경력 한 톨없이 이전 직장의 연봉 수준을 맞춰 온 나로서는 마음이 조급해질 수 밖에 없다. 돈 값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마련이고 익숙해지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익숙해지는 시간까지도 익숙하게 일했던 만큼의 돈을 받으며 지내니 자꾸 조급함을 알약처럼 삼키게 된다. 내 몫을 해내는 것을 넘어 잘해내고 싶은 마음도 크다. 


 마음쓰는 것도 비용으로 치자면 이직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 이미 익숙했던 많은 것들을 굳이 내 손으로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공간과 에너지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서 혼자 제 발에 걸려 넘어진 사람처럼 너무 아프고 당황스럽지만 오롯이 내 잘못이라서 누군가를 속시원히 탓할 수도 없다. 얼른 툭툭 털고 일어나서 아무렇게 않게 다시 걸어야 한다. 그렇게 뽀얀 새살에 상처가 나고 상처가 딱딱해지고 다시 없어질 때까지 걸어야 한다. 그리고 걸으면서 생각하겠지. 제대로 가고 있는건가? 다른 길로 가볼까...? 


미래의 나새끼야, 프로 이직러가 될 지언정 습관성 이직러는 되지 않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연의 시작 버튼 활성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