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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Jul 08. 2019

내 어린 시절 속 어른들도 그 때 참 어렸구나

선생님도 부모님도 TV 속 그 인물도 고작 30대였구나

이제 서른 살이 반 이상 지나갔지만 아직도 친구들을 만나면 서른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머리와 마음은 이십대 어디쯤에 머물러있는 것 같은데 껍데기만 어른인 척, 일을하고 돈을 버는 사회생활에 익숙해진 척 하면서 살아가는 기분이다. 그냥 시간이 되어서 어설프게 어른을 흉내내고 있는 와중인데 사람들이 나를 진짜 어른으로 대해줘서 껍데기가 이제 달팽이의 패각처럼 내 몸의 한 부분이 된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어색하게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요즘 종종 내 어린시절 속 어른들을 생각한다. 아주 멀지 않고 가까웠던 어른들. 엄마랑 나는 딱 서른 살 차이가 난다. 엄마는 서른에 셋째 딸인 나를 낳았다. 지금의 내 나이에 이미 딸 둘을 기르고 있었고 서른살이 되던 해 무더운 여름에 나를 낳았다. 엄마의 이십대의 절반은 임신과 육아가 차지해버렸다. 이십대 중반에 결혼을 하고, 서른에 아이가 셋이나 되었으면 부모라는 책임감때문에 엄마는 엄마 자신을 좀 더 어른스럽게 느꼈으려나? 고작 서른살짜리가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나는 못한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기 때문에 한번도 어른이 아닌 엄마를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엄마가 정말 어릴 때 언니들과 나를 낳아서 길렀구나. 어디서 배운 적도 없이 엄마도 엄마로 처음 살았을텐데...그래서 엄마도 종종 서툴었구나. 알고 그런게 아니라 정말 엄마도 처음이라서 겪으면서 배웠던 거구나. 지금에서야 아주 어렸던 엄마에 대해 뒤늦은 이해를 던질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그렇게 큰 어른으로 느껴지던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특히 갓 부임했던 선생님이거나 아직 서른 살을 넘지 않았던 젊은 선생님들. 그들도 평범한 사회 초년생 중 한 명이었고, 집에가면 근무의 고단함을 풀고 또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하고, 30~40명의 아이들과 종일 같은 공간에서 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업무를 매일 해야했다니 참 고단했겠다는 생각도 들고... 요즘들어 더더욱 느끼지만 나와 10살이상 차이나는 어린 친구들과 진심을 나누며 소통하기가 참 쉽지 않다. 그들이 왜 그걸 좋아하고 이걸 이렇게 생각하는지 자연스럽게 체득하지 못하고 애써 알아보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내 시절 속 선생님들은 마치 우리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 해주었고, 그냥 길 가에 지나가는 어른이 아니라 정말 선생님 다운 모습만을 보여주셨던 것 같다. 아, 그리고 물론 그들도 그 때 부족하고 서툰면이 있었다. 내 기억 속 선생님들도 날 때부터 선생님이 아니라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와중이었겠지. 

 어렸을 때 참 어른 같이 보이던 나이, 내가 바로 그 어른의 나이가 되었다. 그 사람들도 다 이랬겠지? 나도 적응 안되는 사이에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을 바라보며 그제서야 내 나이를 실감하고, 여전히 미래를 생각하면 약간 불안하고, 가끔은 사춘기 때처럼 나는 왜 살지? 인생이란 뭐지? 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지며...어린 시절 어른들은 이제 진짜 어른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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