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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Jun 08. 2020

뚜렷한 취미가 없는 직장인

취미까지 스펙처럼 쌓을 필요는 없지 않나

내 주변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동료들은 모두 저마다의 취미가 있었다. 요가나 마라톤, 방송댄스 같은 동적인 취미도 많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가죽공예를 하는 예술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도 많았으며 주말에 한번씩은 시간을 내어 뮤지컬을 보거가거나, 산과 바다로 캠핑을 곧잘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인생에서 그저 먹고 자는 것 외에도 반짝이는 즐거움을 쌓아가는 그들이 좋아보였다. 

 좋아보이는 것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나는 그게 부러운 한편, 은근히 압박도 느꼈다. 뚜렷한 취미가 없다는 것은 취준생시절부터 생각해 온 내 약점이기도 했다. 평일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주말에는 늘어지게 자고, 가끔 뒹굴면서 책을 보거나 그마저도 TV보면서 보내는 게 전부인 나에게는 꾸준한 취미가 없다는 점이 나를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 밖의 시간을 촘촘하게 채워넣어보려고 시도해보기도 했다. 모두 내가 예전에 조금씩 하고 싶었던 취미들을 골라내서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미술학원에 갔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1:1 필라테스를 했으며, 회사 점심시간에는 사내 클래스로 중국어 수업을 들었다. 3개 모두 최소 1년 이상씩 유지했지만, 그 당시 나에게 취미를 물었다면 3개 중 어느것도 내 취미라고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취미를 쫓기듯이 했다. 누가 개근상과 성적표라도 쥐어줄 것 마냥.  중국어도 늘 허겁지겁 업무를 마치고 수업에 들어갔으며, 주말에는 밀린 구몬숙제를 앞둔 아이처럼 자습/복습은 하지도 않은 채 죄책감만 쌓아나갔다. 필라테스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해 외부 미팅이 끝나고 택시를 타고 황급히 필라테스를 하러 갔으며, 나중에 일이 너무 바빠졌을 때는 필라테스 하다가 업무 연락을 받고 다시 운동을 하는 등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1:1 수업이었기에 간신히 수업에는 갔다.) 미술학원이 이 제일 가관이었다. 매일 컴퓨터만 두드리던 업무를 벗어나 내가 그리고 싶은대로 뭔가 그려보자는 마음이었지만 '학원'이라는 단어때문인지 나는 입시학원을 다녔던 버릇처럼 자꾸 혼자 '진도'를 나가지 못해 끙끙댔다. 하루는 미술학원 선생님이 우스갯 소리로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완성을 못해서 걱정이세요. 입시 미술 준비하는 친구들도 이렇게는 안해요" 라고 말했을 때야 아, 내가 말로는 퇴근 후 취미를 즐기러왔다고 하면서도 내가 낸 학원비만큼, 내가 들인 시간 만큼 뭔가 결과물을 남기려고 또 혼자 급급했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로 즐기는 마음보다 1주일에 한번씩 출석하듯이 하면 그게 내 취미가 될 줄 알았다. 그때의 나는 진짜 내가 즐기는 취미를 갖고 싶었다기 보다 남들이 물어봤을 때 그럴싸한 취미도 있고, 삶을 알알이 잘 채워나가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직 후 회사업무가 조금 익숙해지면서 (일의 양이 줄어든 건 아니지만) 내 삶이 그냥 회사 출퇴근 외에는 별거 없는 것 같아 뭐라도 하고 싶었나보다. 

 위의 취미활동은 결국 1년 반 정도만에 모두 청산했다. 나중에는 저녁에 미술학원을 가기위해, 필라테스를 하기위해, 점심에 중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 무리하게 회사 업무를 당겨서 해야했고 주말도 편히 쉬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면서 취미에 쫓기는 생활을 그만 두었다. 그렇게 보냈던 시절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미술학원은 안 다니지만 여전히 예쁜 그림을 보는 건 좋아해서 종종 전시를 찾아가기도 하고 필라테스는 정말 하는 동안 잔병치레를 하지 않아서 꾸준히 다니고 싶었는데 돈도 비싸고, 일 스케쥴도 너무 변동이 심해서 그만두었다가 PT도 해봤다가 지금은 넉 다운 되어버렸다. 중국어는 실력향상보다는 그냥 다른 언어 배우는 자체가 좋아서 꾸준히 했는데 최근 코로나때문에 사내 클래스가 중단되면서 더 열의를 갖고 진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나중에 또 관심이 생기면 유투브로 언어도 배우고, 홈트도 하면 되는거지 뭐.

 내게 취미라는 글자는 꾸준히 하고 있으며, 직업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인보다는 조금 더 잘 알고 잘하는 분야의 무언가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표다. 그래서 지금은 취미가 없다. 한 달에 5권 정도는 책을 읽고, 영화도 종종 보지만 취미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한 수준이다. 그래도 이제는 취미를 가져야겠다는 압박은 없다. 없다고 내 인생이 시시하건 아니니까. 지금도 책장 맨 아랫칸에는 인스타그램의 멋진 작품을 보고 덜컥 산 오일파스텔 48색 세트가 나를 언제쯤 쓸 생각이냐며 곁눈질을 주는 것 같지만...(^^...) 하고 싶을 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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