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희 Sep 18. 2017

[괜찮아,사랑이야]

많은 고민 끝에 건네는 단순한 위로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이 드라마를 찾았고 우연히 1화를 보았다가 정신없이 주말을 이 드라마에 쏟았다. 근데 지금 글을 쓰려니까 생각난다. 이 드라마 3년 전에 내 전 직장 신입공채 면접에서 대표님이 물어봤던 그 드라마였구나. 그 때 질문이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거였다."<괜찮아 사랑이야> 라는 드라마 봤어요?( 이 땐 공효진,조인성이 나오는 것 밖에 몰랐는데 트렌드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들어는 봤다고 했다.) 거기에 보면 주인공들이 각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어요. 혹시 트라우마 가진 것 있어요?" 내 성격의 장단점은 무엇이고,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나에 대해 이런저런 예상 질문을 준비해갔는데 트라우마라는 말에 나는 면접용으로 다듬어진 답이 아닌 진짜 답을 이야기해버렸다.


"저 사실  파충류를 무서워해요, 사진도 못보고 글자도 못 읽고 그게 언급되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깜짝 놀라고 눈물이 나요."

 "왜요 물려봤거나 나쁜 경험이 있어요?"

"이유는 몰라요. 볼 때 마다 너무 울어서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슬퍼하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 대답을 하고 집에 와서 이불을 뻥뻥 찼다. 한 없이 밝고 긍정적인 의지로 가득 찬 듯이 보여도 불안한 신입사원 면접 자리에서 왜 저런 멘탈적인 약점을 보였는지. 가끔 나도 내 자신이 파충류에 대해 왜 그렇게까지 두려움을 가진지 유난스럽다고 느낄정도의 일인데 뭘 어쩌자고 면접에서 대뜸 저런 말을 했는지. 결론적으로 면접은 잘 통과했다. 내가 남들과 다른 특이한 포인트에서 과할 정도의 공포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큰 흠은 아니었나보다.


 그럼 더 심각한 공포증과 트라우마는 괜찮을까? 키스를 할 때 마다 구토를 할 것 같은 관계불안증을 가진 해수와 흥분하거나 긴장하면 표정이 일그러지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뱉는 투렛증후군을 가진 수광이는 면접에서 이런 트라우마를 이야기해도 괜찮았을까? 누구보다 멋있게 자기 커리어 잘 쌓고 살고있는 재열이는 사실 밤마다 화장실에서 잠을 자야만 하고, 환시가 보인다는 것을 이야기 했으면 ? 그래도 해수랑 수광이랑 재열이는 모두 아무렇지 않게 면접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러지 못했겠지. 공채면접 통과는 제쳐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단계 하나도 계단을 오르듯 힘겹게 해내야 했을 것이다. 정신과의사가 주인공의 직업이라서 그런지 드라마 속에서는 주인공들이 본인들의 병명이나 트라우마나 그게 생기게 된 원인을 술술 풀어내지만 실은 그건 어려운 일이다. 말하는 사람도 들어주는 사람에게도. 그게 약간 비현실적이지만 이 드라마가 내게 위로로 다가온 것은 서로의 아픔을 듣는 인물들의 태도였다. 의붓아버지한테 개패듯이 맞고 형에게도 두들겨 맞고 여러 원인이 뒤엉킨 사고로 인해 의붓아버지가 죽은 평범하지 않은 재열이의 가정사를 들을 때 해수는 쉽사리 놀라지 않는다. 어느 가정에서나 그냥 있을 법한 일이라는 태도로 묵묵히 듣는다. 그 이후에 재열이를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자기 기분에 맞춰주지 않는 까탈스러움을 보일 땐 화를 내고, 또 마냥 멋있는 멘트를 하면 좋아한다. 화가 나는데도 괜한 연민의 마음에서 이해심이 샘솟거나 애써 재열이를 쉽사리 위로하려들지도 않는다. 그리고 인물들은 서로에게 막연한 희망도 들이붓지 않는다. 다만 꼼꼼하게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치료법을 찾아간다. 세상에나 너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다니, 얼마나 힘들었니?, 지금은 괜찮은거야? 라고 물음표를 매달지 않는다. 그 덤덤함이 괜히 큰 위로로 다가왔다.  


 노희경 작가는 초반 회차에서 군데군데 흩뿌려놓은 복선 하나하나를 퍼즐끼워맞추듯이 꼼꼼하게 후반회차에서 채워나갔다. 다소 난해하고 이해 안 가는 인물들의 성격이나 습관들이 어디에서 연유되었는지 집요할 정도로 빽빽하게 이유를 끼워맞춰나간다. 그러면서 나에게 주인공들을 이해시킨다. 아픈 사연을 지닌 이들을 동정하거나 쉬운 연민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들을 보여준다. 나 역시도 해수가 재열이에게 했던 것 처럼 재열이를 마냥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냥 재열이를 덤덤하게 지켜볼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우리 이렇게나 여러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고, 또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자주 무너져내리고 또 금방 꿋꿋하게 일어나고, 모두 그럴 수 있는거니까 괜찮다고.


 어떤 드라마는 보면서 내가 저 주인공이고 싶을 정도로 푹 빠져서 현실을 잊게 만든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이 되고 싶은 느낌은 안들었다. (재범이를 큰아주버님으로 맞아들이기엔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다만 해수와 재열이처럼 저렇게 서로에게 구원받는 느낌으로 누군가를 만나 과거의 아픔을 나누고 현재를 보듬으며 미래를 낙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많이 조마조마해하고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괜찮다. 위로를 선불로 받은 기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결말이든 유미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