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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청 Oct 24. 2021

오키나와 백수6

아무 생각없이 떠난 첫 여행

아침 8시 반에 간신히 눈을 떠서 조식을 먹으러 내려왔는데 호텔밖에 흐려서 긴장했다. 혹시 또 비가 오나 싶어서. 조식을 먹고 나오니 해가 떴고 기쁜 마음으로 ‘Do not disturb!’ 팻말을 걸고 한잠 더 잤다. ㅎㅎㅎㅎ. 오늘이야말로 얇은 후드티에 반바지가 딱 잘 어울리는 날씨. 대략 최저기온 17도에 최고기온 27도 정도에 볕이 좋은 날. 크록스와 운동화를 두고 고민하다가 크록스를 택했는데 나중엔 조금 후회했다. 슈리성 곳곳을 구경하는 건 가벼운 산행 느낌이라. 아무튼, 크록스를 신고 유이레일 현청역(겐초마에)으로 향했다. 왜 발권기를 생각하지 못하고 창구로 갔는지. 되도 않는 일본어로. “아노 스미마셍, 이찌니찌 후리파스...”라고 물었고 창구직원은 다행히 한 번에 알아들어서 600엔을 내고 구입.


딱 2량짜리 유이레일은 달팽이처럼 고가형 레일을 타고 꼬물꼬물 움직이는 귀여운 경전철이었다. 분당선 기흥역에서 에버랜드까지 다니는 에버라인하고 좀 비슷한 느낌. 현청역에서 여덟 번째 정류장이었던 슈리역. 물론 그 당시엔 슈리역이 종점이라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구글어스를 찾아보니 지금은 슈리역에서도 4정거장이 더 늘었다. 오키나와를 3번을 더 갔지만 갈 때마다 렌터카를 이용해서 그런지 유이레일이 길어진 걸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니. 물론 세 번째 여행에선 공사하는 모습을 얼핏 봐서 “오! 연장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슈리역에 내려서 사거리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걸어 오르면 동쪽전망대 쪽 출입구와 만난다. 물론 슈레문 옆에 있는 쓰이무이칸까지 가려면 좀 걸어야 했지만... 본당인 줄 알고 갔던 쓰이무이칸은 식당과 카페 등이 있고 슈리성의 종합 안내소를 겸하는 공간이었다. 커피를 한잔할까 하다가 스탬프릴레이 안내 팸플릿을 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22개의 스탬프를 찍는 풀코스는 넉넉하게 2시간이 소요된다는 설명이 적혀 있어서. 처음으로 쓰이무이칸 스탬프를 찍고 릴레이를 시작했다. 슈레문이 제일 가까워서 그것도 바로 찍고 경로를 파악했다.


다음 코스로는 슈리성 본진으로 들어가는 목례문을 찾아갔다. 류큐 왕국 시대에 물자를 반입하는 관문 같은 역할을 한 목례문. 마치 사극에서 “뉘시오? 행색이 좀 그러한데, 호패 좀 봅시다”라고 하는 보초들이 지키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의 문. 그리고 바로 이어서 서쪽 전망대인 이리노 아자나에 올랐다. 왕국에 쳐들어오는 적들의 동태를 살피는 곳으로 사용됐다는 전망대. 날이 맑고 시계가 좋은 날은 나하시내는 물론이고, 약 40km정도 떨어진 섬 게리마제도 까지 보인다고 했다. 이날은 정말 쨍하게 맑은 날은 아니어서 나하시내까지만 보였다.


목례문과 이리노 아자나에서 본 풍경.  이날은 약간 흐릿한 날이라 나하시내까지만 보였다.


근처 몇 군데를 들러 스탬프를 잽싸게 찍고 슈리성의 몸체인 정전에 도착했다. 최소 5개 정도 스탬프가 몰려 있는 곳. 스탬프 핫플. ㅎㅎㅎㅎ. 정전은 유료로 관람하는 구역이었지만 당연히 들어가 봐야 했다. 매표소를 겸하는 광복문에서 입장권을 끊어서 봉신문을 들어서면 정전이 보이는데, 잠시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정전을 중심으로 남전, 북전이 있고 관람을 남전부터 시작된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 크로스를 신은 걸 잠시 후회했다. 하지만 맨발에 쓸리는 다다미의 느낌이 꽤 괜찮아서.


봉신문을 들어서서 마주한 정전. 잠시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었다. 


거의 2시간이 넘도록 곳곳을 누비고 다녔더니 스탬프는 빈자리가 하나 남았고, 그건 바깥쪽 연못에 있는 베자이텐도우 라는 작은 공간. 마치 연못에 떠있는 사랑채 같은 느낌이었는데, 조선왕이 보낸 만책장경을 보관하는 장소라고 했다. 왠지 반가워서 한참을 앉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스탬프 릴레이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잔뜩 슬픈 표정을 한 고양이를 봤다. 외출을 넘어선 가출을 일삼는 녀석 같았는데, 집사가 그걸 막기 위해 지붕 끝자락에서 바닥까지 마치 야구장에서 볼법한 그물을 설치해 두었다. 그 안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고양이. “그래도 집사 잘 만난 줄 알아라 짜식아”라고 혼잣말을 하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스탬프릴레이 마지막 코스인 베자이 텐도우와 집사 잘만난 슬픈(?) 고양이. ㅎㅎㅎㅎ.


점심을 먹고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슈리성 남쪽 출구쪽으로 내려가 동네를 구경했다. 다시 거슬러 올 것을 대비하며 몇몇 눈에 띄는 가게와 간판을 기억하며 걸어 내려갔다. 역시 끊이지 않는 뚜벅이 여행. 아마 렌터카를 이용했다면 훨씬 먼 곳까지 다녀올 수 있었겠지만 아마도 오키나와를 그렇게 좋아하게 되진 않았을 것 같다. 발로 도장을 찍듯 걸어 다녀서 아끼는 마음이 훨씬 커진 것 같아서. 이런 게 뚜벅이 여행의 재미. 호텔로 돌아오니 얼추 어두워져 있었다. 역시 오늘도 편의점에 들러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서 들어왔다. 남은 기간 오키나와에 있는 일본 맥주 다 마실 기세로.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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