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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청 Nov 03. 2021

오키나와 백수9

아무 생각없이 떠난 첫 여행

오늘은 이틀 전에 예약해둔 단체 관광차를 타는 날이라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행사에서 9시에 출발하는 일정이라 늦잠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조식도 후루룩 마시듯 먹고 호텔을 나섰다. 한번 가본 적이 있는 길이라고 그래도 어렵지 않게 여행사에 도착. 혹시 한국인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둘러봤지만 없었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좀 아쉽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시간이 되고 버스가 출발했다. 언제 봐도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왼쪽으로 출구가 나있는 버스. 일본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받는 건 아마도 반대되는 차선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버스 등의 구조 때문이기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후 일본 여행에서 여러 번 운전을 하며 나름 익숙해져서 이때만큼의 느낌은 없지만.    


오늘 타는 단체 관광차는 해군호-히메유리 탑-평화기념공원-오키나와 월드를 다녀오는 남부 투어 코스였다. 남부 투어는 별 수 없이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를 볼 수밖에 없는 코스라 좀 경건한 분위기다. 왠지 유족들이 타 있을 것 같기도 해서.... 특히 오전 해군호에서 히메유리 탑과 평화기념공원까지는 왠지 맘 놓고 웃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라, 적당히 표정관리를 했던 것 같다. 류큐왕국이 통치하던 오키나와를 일본이 침략했고, 이후 미국과 무력대결을 하다가 오키나와 전쟁이 발발하며 미국이 한동안 통치를 하기도 했던 굴곡진 현대사가 그대로 새겨진 공간이 몰려있는 곳이 남부지역이라. 


여행사에서 30분 정도 달려서 첫 코스로 도착한 해군호. 이곳은 오키나와 전쟁 당시 참호로 쓰던 곳이다. 땅굴을 450m 정도 파서 전쟁용 참호로 쓰던 곳. 관람으로 개방된 곳은 300m 정도 구간이었는데, 굉장히 좁고 서늘해서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수류탄이라도 하나 터졌으면 어땠을까 싶어서... 역시 전쟁은 끔찍해. 해군호 관람을 마치고 이동한 히메유리 탑. 히메유리 탑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오키나와 전쟁 당시 참전한 여 학도병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추모공원엔 위령비를 시작으로 여러 자료를 모아둔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위령비에서 검은 슈트를 차려입은 아저씨가 묵념을 하고 있었다. 왠지 유족인 것 같았는데, 다행히 먼저 웃어주셔서 분위기가 그리 무겁진 않았다. 

히메유리 탑 위령비에서 검은 슈트를 차려입은 아저씨가 묵념을 하고 있었다. 왠지 유족인 것 같았는데, 다행히 먼저 웃어주셔서 분위기가 그리 무겁진 않았다

히메유리 탑을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여행사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이었는데 퀄리티가 나쁘지 않아서 괜찮았다. 반찬으로 고야참푸르도 들어 있었고. 오키나와의 상징 같은 볶음요리. 물론 그렇게 입맛에 맞는 편이 아니라서 그냥 상징적인 음식을 먹었다 이 정도 의미. 점심을 다 먹고 달리기 시작한 버스는 평화기념공원에 도착했다. 평화기념공원은 한국으로 치면 국립현충원과 비슷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오키나와 전쟁 당시에 세상을 뜬 수많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공간. 거대한 불상이 있는 평화기원당과 전쟁 당시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평화의 주춧돌. 이날도 평화의 주춧돌 앞에서 추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평화기원당 앞쪽에 한국인 위령탑이 마련되어 있었다. 전쟁 당시에 일본으로 징용됐다가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한국인들을 위로하는 추모비. 30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 졌는데, 한국인 위령탑을 시작으로 산책하듯 곳곳을 살펴봤다. 슬픈 공간이지만 또 바로 앞에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 곳이라 억울하게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넋을 달래주기에 마땅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했다. 


평화기념공원은 슬픈 공간이지만 또 바로 앞에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 곳이라 억울하게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넋을 달래주기에 마땅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한 오키나와 월드. 이제야 관광 같은 느낌이 드는 장소에 도착. 오키나와 월드는 류큐왕국의 전통을 재현한 것이 메인인 곳이라 테마파크라기보다 민속촌에 가까운 느낌이라 생각하면 된다. 오키니와 월드의 첫 번째 코스는 종유석 동굴인 교쿠센도. 총 5km의 길이로 동양 최대 규모라고 하지만 현재 공개된 구간은 890m라고... 그래도 시원해서 좋았다. 대략 27도를 넘나드는 더운 날씨에 볕도 쨍해서 더운 날씨였는데 교쿠센도에서 조금은 식힐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열대식물이 잔뜩 심어진 정원을 지나 전통마을 쪽으로 이동했다. 수많은 열대 식물을 보며 일본보다 류큐왕국의 풍경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지점 같은 느낌. 정원이 끝날 때쯤 열대 과일을 좌판에 깔고 판매를 하고 있는데, 마치 노란색 별 모양 참외처럼 생긴 스타후르츠. 이건 귀국하기 전에 꼭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류큐왕국의 양식으로 꾸민 민속마을은 무언가 독자적인 느낌이었다. 일본도 동남아시아도 아닌 류큐왕국만의 분위기.


류큐왕국 전통마을 쪽으로 가면 유리공예를 하는 공간이 있는데, 소풍을 온 고등학생들이 체험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서 구경만 했다. 유리를 불어서 모양을 잡는 모습을. 류큐왕국의 유리는 예전부터 뛰어난 품질의 특산품이었다고. 하나 사볼까 하다가 왠지 국제거리에도 있을 것 같아서 참았다. ㅎㅎㅎㅎ. 그리고 류큐왕국의 양식으로 꾸민 민속마을은 무언가 독자적인 느낌이었다. 일본도 동남아시아도 아닌 류큐왕국만의 매력이 담긴 분위기. 왠지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결국 일본의 남국, 일본의 하와이라는 말은 이러한 류큐왕국 특유의 분위를 뜻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단체 관광차는 일정을 마치고 여행사에 도착했고, 내일 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마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있어서 물었더니 호텔 앞에서 셔틀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내일은 그나마 좀 여유 있게 올 수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좀 놓였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역시나 맥주를 한 두 캔 샀다. 분주한 하루를 보냈으니 한 모금해야지.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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