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쓰는 일기
(Wednesday, Netflix 2022)
오늘은 호수길을 거꾸로 돌테다.
지난주 시작한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날, 아침
갑자기 내릴지 모르는 비를 나름 대비하겠다, 오밀조밀 귀여운 것들이 가득한 말간 우산을 기어코 들고 나선다.
햇살이 나의 정수리와 뺨을 간질간질거릴 테다.
흐린 구름덩이들이 이리저리 헤엄치며 겹쳐졌다 비껴 섰다 하고 있으니.
그렇지 뭐…
햇살은 따갑게 떨어진다. 비도 아닌 주제에…
나의 분신과도 같은 검은 장미로 가득한 나풀거리는 양산을 버린 탓이다.
내 빰에 피어날 거뭇거뭇한 것들은 다 내 탓이다.
자기 어깨까지 닿을 듯 말 듯 기다란 우산을 두 손으로 꼭 쥐고는, 노란 장화를 통통 거리며 등교하는 아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들리지 않는데, 뭔가 비밀인 듯 소소한, 썬캡을 쓴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반대편으로, 떨어지는 햇살 놈을 노려보느라 가늘게 뜬 눈으로 걷고 있는 나
이 오전에 굳이 눈싸움이나 하고 있는 나
싸움을 아무리 걸어도 눈하나 깜짝 않는 구름덩이 놈들
덤벼라
혹여 운이 좋으면 나비 한 마리 , 검은 제비나비 한 마리…
오늘은 볼 수 있으려나...
또 하얀 나비 한 마리 나풀거리면
비켜라 쫌
이 것도 안되면
햇살 놈이 저 산 넘어 도망간 어둑한 시간에
검은 나비인지 하얀 나비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에
이 호수길을 시계방향으로 돌테다.
그리고 난 그 어둑한 시간으로 꺼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