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학 강의' 책을 읽고 유언장을 작성해 보았다. 죽으면 화장할지, 매장할지, 연명술을 할지 등을 써 내려가면서 마지막에는 나에게 소중한 가족,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을 적었다. 생각나는 대로 적다 보니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가족, 오랜 친구들, 내가 살면서 은혜를 갚아야 하는 분들! 일상에서 나와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사람 중 대부분 사람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했을 때 생각나지 않았다. 유언장을 써보니 지금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명확해졌다.
새삼 놀란 일은 평소 고맙게 생각했던 분들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연락을 못 드렸다는 사실이다. 살면서 내게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이 많다. 내가 받은 고마움을 다른 분들에게도 나누는 삶이 그분들의 고마움을 갚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내가 컨설팅 프로젝트 수행 중에 만난 분이다. 프로젝트를 수행한 곳이 대학교라서 호칭은 서로 선생님이라고 하고 있다. 선생님은 고객사 담당자는 아니었다. 선생님도 장기 외주 계약으로 근무하고 계신 분이었다. 고객사에 별도로 상주할 프로젝트룸이 없어서 다른 회사가 상주하고 있는 사무실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프로젝트룸에는 IT 위탁 운영 업무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셨다. 거의 다 남자분이시고 여자분이 딱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선생님이다. 회사도 업무도 달랐지만 반가웠다. 혼자 컨설팅 프로젝트를 나간 3개월 동안 같이 있으면서 내가 혼자 밥을 먹을까 봐 점심마다 늘 챙겨 주셨다.
그런데 나에게는 유난히 힘들었던 프로젝트였다. 혼자 들어간 컨설팅 프로젝트였는데 전화로 상사에게 보고할 때마다 매번 꾸지람을 들었다. 상사와 통화할 때마다 일할 의욕을 잃어도 혼자하는 프로젝트라 야근으로 부족한 부분을 꾸역꾸역 메꾸기 바빴다. 계속된 야근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퇴근 시간 직전에 전화로 야단을 듣고 또 야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일을 해야 하는지 화가 났다. 이때 안 좋은 내 표정을 보고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간단하게라도 밥은 먹고 일해요. 내가 같이 가줄게요.’ 하면서 나를 회사 앞 샌드위치 가게에 데리고 가 샌드위치를 사주셨다.
그때 같이 일하는 선배도 아니었고, 선생님이 나에게 신경 써 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은 그냥 일찍 퇴근하시고 집에 가셔도 되었다. 그런데 그때 선생님이 나한테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고 그저 말없이 나와 저녁을 함께 먹어준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두 번째 고마운 분은 노 과장님이다.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같은 팀 여직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업무를 하면서 만난 분이다. 나의 어려움을 알고 난 이후에 모닝커피를 주문받는다고 하시면서 힘든 출근길을 설레게 해 주셨다. 회사에 적응하는데 도움 주실려고 다른 직원을 소개해 주시기도 하고 여러모로 힘을 많이 주셨다.
조직에서 약자 편을 들었다가 혹시나 본인에게 불이익이 올까 봐 침묵하고 방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때 나에게 상처가 된 상황은 사무실에서 일이 일어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가만히 있는 다른 직원들의 태도였다. 하지만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도 조직에서 굳이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들도 힘이 없었을 뿐이다.
오히려 노 과장님이 나와 같이 다닌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나를 응원해 주실 용기를 내셨다는 것이 특별한 일이다. 나 역시 입장 바꿔 노 과장님만큼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힘든 상황에서 늘 소중한 인연을 만난다. 내가 상황이 좋을 때는 좋은 분이 옆에 있어도 그 가치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노 과장님은 내가 예전에 글로 고백한 적이 있어 알지만, 선생님은 아직도 그때 내가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르신다. 지금도 선생님은 나의 든든한 응원군이시다.
자주 못 뵙지만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에게는 먼저 안부를 묻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