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월 아이와 <우주, 아이, 삶, 춤> 관람 후기
오늘은 둘째 지율이와 공연을 봤다. 지율이와 두 번째로 보는 영아 대상의 공연. 매번 소율이랑만 봐서 내심 둘째에게 미안했었는데, 오히려 복직하고 나니 이렇게 가끔 지율이와도 공연볼 기회가 생긴다.
오늘 본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 제작, 인정주 연출의 <우주, 아이, 삶, 춤> 이라는 공연은 아이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부분과, 아이에게 해주는 부모의 메시지가 혼합되어 있었다. 무용수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만든 공연의 흔적이 보인다. 우리 아이를 기르는 열 가지 방법인 ‘단동십훈’을 테마로 극이 진행된다. 아이가 짝짜꿍을 처음 했던 날, 곤지곤지를 처음 했던 날 너무 신기해서 영상을 찍어놓은 기억이 났다. 유아 발달의 척도로만 생각해 왔던 단동십훈이었는데 그 각각의 동작이 확장되는 과정을 보면서 동작이 내포하는 메시지를 함께 듣고 있자니 나보다 앞서 아이를 키운 부모들의 지혜가 느껴진다. 몇천년 전 살았던 그들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이 잔잔한 감동으로 밀려왔다.
오늘 23개월 지율이는 지난번 첫 관람보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무대의 경계를 계속 발로 탐색하다가 손으로 짚어 보기도 하고 엎드려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내가 딱히 돌아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다시 엄마에게 돌아와 안겼다. 마치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 걸까 하고 스스로 탐색하는 것 같았다. 무대 한켠에 엎드려서 한참 있길래 뭘 하나 봤더니, 무대 조명이 만들어내는 자기 손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림자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주어진 시간에는 무대 위 배우들을 보길 원하는 것이 애써 돈 내고 데려간 엄마 마음이긴 했지만, 사실 무대조명으로 그림자놀이를 하는 아이는 진정한 무대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 배우 5분쯤 안 쳐다보면 어때, 네가 보는 것이 공연이고 네가 앉은(혹은 누운) 이곳이 무대인 걸.
단동십훈을 움직임으로서 나열하는 초,중반부를 지나 마지막 부분이 되자 무용수들이 앞의 모든 것이 어우러진 춤을 추었다. 그러자 우주의 신비한 섭리 속에서 태어나 주체적으로 기능하는, 무척 소중하고도 힘있는 생명력으로서의 아이가 보였다. 이 아이가 끝이 어딘지 모르는 머나먼 우주 어딘가에서부터 나에게 온 것 같아 새삼 경이롭다. 동시에 누군가에게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인간의 본능으로서의 ‘춤’이 주는 아이와 나의, 우리와 세상의 연결됨을 느꼈다. 공연이 끝난 뒤 내 무릎 위 아이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문득 희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와 눈을 맞추며 곤지곤지와 잼잼을 하는 한 이 세상에는 사랑이 있을 것 같은, 그런 막연하지만 행복한 기분이 드는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