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예술, 그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들에 대하여.
아이를 낳고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의 취미이자 직업이기도 한 예술과 멀어지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아이 재우고 습관적으로 SNS를 보고 있노라면 나 혼자만 뒤쳐지는 것 같은 패배감에 휩싸이곤 했다. 지인들의 맛집 인증 포스팅은 부럽지 않았지만 공연 인증샷 포스팅은 부러웠던 나는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을 찾아 헤맸다. 갓 돌 지난 아기가 입장 가능한 공연을 찾느라 인터넷을 샅샅히 뒤졌더랬다. 처음으로 아이와 본 공연은, 소율 14개월 때, 국립국악원의 <티라노 황금똥의 비밀> 이라는 어린이 국악극이었다. 영유아극은 아니었고 4~5세 즈음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예상 외로 무척 집중하는 아이의 눈빛에 감동했던 나는 그 이후로 아이와 종종 공연을 봤다. 아니, 닥치는 대로 봤다고 해야 더 적절하려나. 연령대 맞는 건 다 봤다. 키즈카페 가느니 차라리 전시나 공연을 보자는 주의였다.
그러던 중 깨달음이 왔다. 많이 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자주 보자 아이는 예술을 익숙하게는 느꼈지만 특별하게 느끼지는 않게 되었다. 자주 볼 수록 아이의 집중 시간은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짧아졌다. 또 자주 보다 보니 아무래도 선별을 덜 할 수 밖에 없어서 관람하는 공연의 평균적 퀄리티도 낮아졌다. 게다가 아이에게 애써 좋은 걸 보여주려 데려갔을 때 아이가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괜히 화가 났다. 한번은 소율이와 어떤 전시를 보러 갔는데, 아이는 초반부터 잘 집중하지 않았고 전시장 밖에 나와서까지도 짜증을 냈다.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소율이에게 막말을 하게 되었다. “너랑 앞으로 절대 이런거 안 봐!” 라고. 그날 집에 오면서 나는 내가 화가 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무슨 학교 숙제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고작 5살 아이가 미술관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서 화가 나는 내가 확실히 문제였다. 아이가 예술을 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비판의식을 깨우고, 창의성을 발달시키기 위해서? 그런 목적을 두는 것은 아이에 대한 폭력일 뿐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역할에 한계를 긋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저 놀고자 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도와주는 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나는 이제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이나 전시장에 예전만큼 자주 가지 않는다. 그 대신 아이도 좋아할 것 같고 나 또한 즐거울 수 있는 콘텐츠를 골라 리스트업을 해 놓았다가, ‘엄마랑 비밀데이트’라던지 ‘칭찬 스티커를 다 모은 특별한 날’ 같은 명분과 함께 문화생활을 곁들인다. 그런 날은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아이스크림이나 와플도 함께 먹고, 옷도 원하는 대로 예쁘게 입게 하고(엘사 드레스 등등..), 셀카놀이도 많이 하곤 한다. 그렇게 집에 오면 그날 아무리 좋은 공연을 봤어도 잘 기억나지 않고, 그저 오늘 맛있게 먹은 간식의 비주얼이나 서로 깔깔댔던 소리의 잔상만 남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소율이도 한결 편안해졌다. 예술은 나에게 분명 삶의 의미에 가까운 것이지만, 동시에 나와 아이가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수단에 머무르기를 바란다. 내 아이가 경험하는 예술은 최고의 것이 아니어도 좋고, 아이의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어도 상관없다. 그저 내 아이가 예술을 경험하는 순간의 그 공기가 우호적이기를 바랄 뿐. 훗날 아이가 본인의 인생에서 힘이 되는 행복한 기억을 떠올렸을 때, 그 속에 엄마, 가족들, 그리고 본인의 작은 성취들이 등장하고, 예술은 그 기억의 씬에 어렴풋이 스치는 배경처럼 존재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