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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Aug 25. 2022

내 아이에게 예술이란?

내가 사랑하는 예술, 그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들에 대하여.

아이를 낳고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의 취미이자 직업이기도 한 예술과 멀어지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아이 재우고 습관적으로 SNS를 보고 있노라면 나 혼자만 뒤쳐지는 것 같은 패배감에 휩싸이곤 했다. 지인들의 맛집 인증 포스팅은 부럽지 않았지만 공연 인증샷 포스팅은 부러웠던 나는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을 찾아 헤맸다. 갓 돌 지난 아기가 입장 가능한 공연을 찾느라 인터넷을 샅샅히 뒤졌더랬다. 처음으로 아이와 본 공연은, 소율 14개월 때, 국립국악원의 <티라노 황금똥의 비밀> 이라는 어린이 국악극이었다. 영유아극은 아니었고 4~5세 즈음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예상 외로 무척 집중하는 아이의 눈빛에 감동했던 나는 그 이후로 아이와 종종 공연을 봤다. 아니, 닥치는 대로 봤다고 해야 더 적절하려나. 연령대 맞는 건 다 봤다. 키즈카페 가느니 차라리 전시나 공연을 보자는 주의였다.


소율 9개월, 처음으로 본 영아 전시 <아이캔두잇>



그러던 중 깨달음이 왔다. 많이 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자주 보자 아이는 예술을 익숙하게는 느꼈지만 특별하게 느끼지는 않게 되었다. 자주 볼 수록 아이의 집중 시간은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짧아졌다. 또 자주 보다 보니 아무래도 선별을 덜 할 수 밖에 없어서 관람하는 공연의 평균적 퀄리티도 낮아졌다. 게다가 아이에게 애써 좋은 걸 보여주려 데려갔을 때 아이가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괜히 화가 났다. 한번은 소율이와 어떤 전시를 보러 갔는데, 아이는 초반부터 잘 집중하지 않았고 전시장 밖에 나와서까지도 짜증을 냈다.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소율이에게 막말을 하게 되었다. “너랑 앞으로 절대 이런거 안 봐!” 라고. 그날 집에 오면서 나는 내가 화가 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무슨 학교 숙제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고작 5살 아이가 미술관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서 화가 나는 내가 확실히 문제였다. 아이가 예술을 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비판의식을 깨우고, 창의성을 발달시키기 위해서? 그런 목적을 두는 것은 아이에 대한 폭력일 뿐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역할에 한계를 긋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저 놀고자 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도와주는 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1호가 그려서 선물해 준 노란 장미, 손가락 페인팅 기법으로 작품세계 창조 중인 2호


나는 이제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이나 전시장에 예전만큼 자주 가지 않는다. 그 대신 아이도 좋아할 것 같고 나 또한 즐거울 수 있는 콘텐츠를 골라 리스트업을 해 놓았다가, ‘엄마랑 비밀데이트’라던지 ‘칭찬 스티커를 다 모은 특별한 날’ 같은 명분과 함께 문화생활을 곁들인다. 그런 날은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아이스크림이나 와플도 함께 먹고, 옷도 원하는 대로 예쁘게 입게 하고(엘사 드레스 등등..), 셀카놀이도 많이 하곤 한다. 그렇게 집에 오면 그날 아무리 좋은 공연을 봤어도 잘 기억나지 않고, 그저 오늘 맛있게 먹은 간식의 비주얼이나 서로 깔깔댔던 소리의 잔상만 남곤 한다.


당일치기 호캉스와 함께한 <파라다이스 아트랩>


그러다 보니 나도 소율이도 한결 편안해졌다. 예술은 나에게 분명 삶의 의미에 가까운 것이지만, 동시에 나와 아이가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수단에 머무르기를 바란다. 내 아이가 경험하는 예술은 최고의 것이 아니어도 좋고, 아이의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어도 상관없다. 그저 내 아이가 예술을 경험하는 순간의 그 공기가 우호적이기를 바랄 뿐. 훗날 아이가 본인의 인생에서 힘이 되는 행복한 기억을 떠올렸을 때, 그 속에 엄마, 가족들, 그리고 본인의 작은 성취들이 등장하고, 예술은 그 기억의 씬에 어렴풋이 스치는 배경처럼 존재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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