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절규가 지금까지 인기 있는 이유
뭉크의 절규는 새빨간 노을 아래에서 한 사람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소리 지르는 그림이다.
처음 뭉크의 ‘절규’를 봤을 때,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노을을 보고 절규하는 사람이라니?”
“해지는 저녁노을은 보통 낭만을 상징하는데, 왜 여기에 생뚱맞게 절규하는 사람을 넣었을까?”
“이게 왜 예술이지?” 아름답고 밝은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뭉크의 절규는 나에게 예술로 보이지 않았다.
10년 후 나는 경력직 직장인이 되었다. 20대 중반부터 취업 준비를 하고, 20대 후반까지 방황을 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 직장 생활은 초반 6개월 제외하고 즐거운 경험보다는 괴롭거나 버틴다는 느낌이 더 많았고, 나이 먹어갈수록 한해 한 해가 더 힘겹게 느껴졌다. 경력이 쌓여갈수록 안정감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이 쌓여간다.
어느 날 다시 뭉크의 절규를 접했고, 뭉크가 왜 대중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가령, 아름답고 밝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은 내가 밝을 때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아름답다. 반대로 내가 기분이 나쁠 때는 내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아서 오히려 우울감을 준다. 또한 그 작품 자체가 밝다, 아름답다로 끝날 뿐, 내포된 사연이나 스토리가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뭉크의 절규는 다시 보는 순간 공감이 됐고, 사연이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얼마나 힘들기에 사람들이 낭만을 느끼는 노을을 보며 절규하고 있을까? 이 사람도 나처럼 삶이 힘들어서 절규하고 있을까? 뭉크의 사연을 알게 되니, 절규하는 사람의 심정이 더 이해가 잘 됐다. 뭉크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죽고, 누나가 죽었다. 가족이 이렇게 연달아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 뭉크는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까? 당연히 애정 결핍이 엄청 심한 상태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뭉크가 노을 배경 속에서 절규하는 이유도 뭉크의 사랑을 알게 되니 이해가 되었다. 뭉크는 위로를 받고 싶어 사랑했지만 첫사랑에게는 버림받았고, 그 이후 사랑했던 이와는 실랑이를 벌이다 총에 맞았다. 이때 아마 사랑에 대한 강한 공포감이 생기고, 새빨간 피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기억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낭만적인 저녁노을이지만, 뭉크에겐 공포스러운 피의 향연으로 보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에서 아름다운 것만 경험하고, 좋은 것만 보고 살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유명하지만, 돈이 많아진 나지만, 어렸을 적에 절규할 정도로 엄청 힘들었다. 당신의 인생도 힘들다면, 그것은 정상이다.” 뭉크의 그림은 이렇게 위로를 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뭉크의 그림이 후대에서까지 인기 있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