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흔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의별짓 Sep 21. 2021

여전히 미생인 마흔.

나의 일에 대한 고찰

모든 것이 불안했던 스무 살의 나는 서른에는 비상할 줄 알았고, 마흔에는 안정을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청춘의 불안감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올 초, 생애 첫 마흔을 맞이하면서 생각이 많았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 삶의 후반기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요소도 찾고 싶었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놓인 현실에 급급해하는 난,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이다.


마흔을 기점으로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은 "일"이다. 


비혼인 내 삶에 있어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취미 생활도 있고, 일과 상관없는 소그룹 모임도 갖고 있지만, 일상의 대부분이 "일"과 연관되어 있다. 하루 24시간 중, 가장 많은 생활을 하는 곳이 회사고, 가족보다 회사 동료들과 대화를 더 많이 한다. 최근 통화목록은 광고주가, 카톡에는 업무와 관련된 메시지가 가득하다. 또한, 현재 친하게 맘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전 직장동료다 보니, 만나서 하는 이야기도 대부분 "일"에 관한 거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공사를 구분한다고 해도,  삶의 희노애락이 "일"에 좌지우지될 때가 많았다. 한동안 이런 삶이 특별히 문제 되진 않았다. 부지런한 베짱이가 모토였기에 "일"은 하나의 필수 조건이었고, 다행히 하는 일을 좋아했기에 나름 만족했다.


이랬던 내가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게 된 건 서른 중후반부터였다. 그 당시, 나는 공사 홍보실을 나와 이직을 준비하던 때였다. 10여 년의 경험으로 얻어진 탄탄한 래퍼런스와 노하우, 그리고 여전한 일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데, 나로 하여금 뭔가 자극이 될만한 요소가 없었다. 직장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할 나이도 지났다고 생각했고, 또,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봤던 터라, 특별히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도 없었다. 그래서 뭔가 나에게 자극이 될만한  '새로운 일'은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너무 막연하다 보니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에 의해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마흔의 문턱을 들어섰고, 여전히 나는 '새로운 일'이라는 막연한 고민 앞에 놓여있다. 적당히 현실에 타협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최근 중년의 선후배들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솔직히 갑갑한 상황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고민, 해결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 현실 도피책으로 제안되는 퇴사 등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제자리걸음에 마음 한편이 답답해졌다. 


대단한 유명세를 원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가슴 뛰는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앞으로 못해도 한 20년은 "일"을 하며 살 텐데,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사는 것보다, 아주 작은 거라도 스스로에게 만족해하며 즐기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어떤 직장이든 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직장이 주는 나의 만족감에는 늘 한계가 따르니, 조금 덜 벌더라도 오랫동안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은거다. 결국, 그 일도 어느 순간 나에게 지금의 "직장"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시들해져버린 일을 20년 하는 것보다, 조금 더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20년 하는게 더 생동감 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익숙한 것이 주는 안정감 앞에 늘 져버리는 나의 용기에 한숨만 쉴 뿐이다. 


양육해야 될 아이도, 돌봐야 할 가족도 없어, 오롯이 나만 생각하면 되는데, 무엇이 나의 이 고민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걸까?. 재능이 문제일까? 아니면, 자존감을 빙자한 자존심이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면, 허상을 향한 막연한 나의 열광인 건가?. 


올해는 이 고민의 실타래를 조금이라도 풀어볼 수 있었으면 했는데, 결국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한해의 3분의 2 이상을 보내버렸다. 한발짝만 내딪으면 될것 같은데, 어디로, 얼마만큼 내딪어야 할지를 몰라 동동 거리는 중이다. 연륜이 주는 지혜로 해답을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연륜이 주는 익숙함으로 인해 주저앉고 싶은 기분이다. 


"불혹(不惑),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하지만, 난 여전히 다른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미완성의 마흔 일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에 비혼으로 산다는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