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아팠던 나의 이십 대
내가 루푸스라는 병명을 의료기관에서 확정받은 것은 스물아홉, 가을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실 그전부터 꽤 오랫동안 아팠다.
본격적으로 전조증상이 발현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스물다섯 겨울 즈음부터였다. 어쩌면 그전부터일지 모르지만, 알고 보니 전조증상이었던 나의 상태를 처음 인지한 시기가 스물다섯 살 되던 해의 그날이었다.
열아홉, 나는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난생처음 집을 떠나 부산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무섭고 설레었지만 생각보다 씩씩하게 지냈고, 무탈히 졸업해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취업을 했다.
세상에 사회인으로 시작한 스물셋, 뭐든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 꿈이라는 그 단어가 어쩜 그리 대단한 힘을 준 것인지, 밤 11시에 퇴근이면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런 분위기가 문화였다.
아침엔 헬스장에 가서 아침운동을 하고, 30분 거리를 걸어서 출근했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고, 정말 일이 재미있었다.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했다. 퇴근을 하면 스터디를 했다. 1분 1초의 지각도 없이 모임을 준비했다. 주말도 없이 열정을 불살랐고, 길거리를 뛰며 김밥을 먹고, 외모관리를 한다고 매달 피부과에도 정기적으로 다녔다.
TV 따위 볼 시간도 없었고, 집에 있지도 않았다. 집은 자고, 씻고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다. 아주 가끔 본가에 가면 그때서야 곯아떨어져 하루종일 잠만 잤다. 그리고 다시 내 생활터로 가면 긴장감을 놓지 않고 살았다.
스물 다섯 즈음엔 한 분기 가까이 매주 토요일마다 혼자 서울에 갔다. 좋은 기회로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돈이 없으니 고속버스를 타고 여섯 시간을 달려가 수업을 들었다. 마치고 새벽에 부산에 내려오면 또 일정을 보내고의 연속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았고, 그게 당연했다. 나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달려야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서울이었다. 겨울이었는데, 손이 시려서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서 따뜻한 김을 불었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수족냉증이라지만, 손이 좀 이상했다. 신기할 정도의 창백한 레몬색으로 변해서 마치… 마네킹 손 같았다.
그런데 시각적인 이상뿐 아니라 실제로 감각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서 길거리 근처 포장마차에 달려가 만두 찌는 김에 손을 녹이자 서서히 돌아왔다. 그때 처음 인지했다. 내 몸이 이상한가?
그날 이후로 손은 자주 노랗게 얼룩졌다. 작은 동네병원부터 큰 병원까지 다 가보고, 그 손 사진을 찍어 보여도 봤지만 의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류머티즘 질환 중 하나인 ‘레이노 증후군’ 일 줄은 미처 알지 못한 채.
나는 자주 감기몸살에 시달렸다. 틈만 나면 링거를 맞고 해열제 처방을 받기 일쑤였고, 단골이 된 병원 선생님은 나보고 제발 푹 쉬라고 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던지라, 병원이 익숙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영양제니 수면시간이니 식사루틴 등을 챙기고 있다 보니 내 타고난 체력의 문제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운동도 하니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상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열몸살이 제 집처럼 드나들더니 그게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었다.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날들이 없게 되었다. 나는 바빴고, 아팠다.
그날도 아팠지만, 해열진통제를 먹고 다음 스케줄대로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분명 바쁜 걸음이었는데 갑자기 띵- 시간이 멈추는 것 같았다. 온몸의 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이 들더니, 마치 불꽃놀이라도 터지듯 몸속 전체가 여기저기 톡톡 쏘는 감각이 느껴졌다. 눈앞에 하얀 필터가 써진 것처럼 희미하고, 어질 했다. 이런 표현은 우스운데, 마치 내 몸 전체가 슈팅스타 캔디가 팡 팡 터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쥐가 내리는 거랑 달랐다.
그리고 나는 분명 앞을 향해 걷는데, 점점 몸이 밑으로 기울며 바닥과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녹슨 인형처럼 관절이 빳빳하게 굳어가며 걸음이 느려지고 발이 안 떼 졌다. 나의 본능이 속에서 외쳤다.
‘나, 길에서 이대로 쓰러질 것 같아! 차가운 길바닥에 누울 것 같아! 지금 길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안 보이니까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
안간힘을 다해서 돌아섰다. 몸이 굳어버려 못 움직일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집 앞 대문에서 몇 걸음 안 간 상태였다. 죽을힘을 다해 집에 기다시피 들어왔고, 신발장에서 나는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