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서점의 전성기. 그야말로 붐이다. 거의 대부분의 일간지와 주간지 등에서 갑자기 독립 서점 특집을 다루고 독립 서점에 대한 책도 여러권 출간되었다. 출판계의 끝없는 불황, 대형 서점의 부진, 동네 서점과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서점의 연이은 폐업 소식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들리는 이 소식은 사실 생경하다. 독립 서점과 동네 서점은 무슨 차이일까 같은 궁금증도 든다. 홍대 앞에서 벨로주라는 공연장(희한하게 방송이나 미디어에서 소개될 때 늘 복합문화공간으로 불린다. 그러니까 복합문화공간의 주인장인 셈이다)을 운영하고 있는 필자가 우리 공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땡스북스라는 서점이다.
공연 중간중간 시간이 빌 때, 그리고 특별한 약속이 없을 때나 누군가를 만날 때 대부분 이곳에서 약속을 하고 만난다. 사실 처음 오픈하고 몇 년은 이러다 곧 문을 닫을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는데 1-2년 전 부터는 확연히 '책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모습이 보인다(도서 정가제 영향이 없지는 않을 테다). 유어마인드, 북바이북 등 주인장과의 개인적인 친분과 관심까지 겹치는 서점들도 나에겐 늘 관심의 대상이었고, 대표적(우습지만 틀린 표현은 아니다) 음반 수집가로서 음반과 오프라인 음반샵의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며, 문화적 주제와 취향을 중심으로 지속적 운영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홍대 앞 공연장의 고민과 독립 서점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서점의 미래는 나에게도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그리고 이런 여러 가지 고민에 인사이트를 던지는 공간이 있었으니 바로 일본의 다이칸야마 츠타야였다.
츠타야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츠타야는 일본에서 가장 큰 음반,DVD 렌털숍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도쿄 다이칸야마 츠타야를 시작으로 서점(혹은 복합문화공간)의 미래로 불리는 곳이다. 츠타야의 대표인 마스다 무네아키의 경우 국내에만 그와 관련된 책이 여러 권 소개될 정도로 유명해져있으며, 그 유명세의 중심에는 분명 다이칸야마 츠타야가 있을 것이다. 서점에 대한 설명에 앞서 츠타야가 생각하는 서점에 대한 철학을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츠타야가 생각하는 서점의 위기는 서적 그 자체를 판매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서점은 도서 '판매' 장소에서 '구입' 장소로 전환되어야 하며 고객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구성되어야 한다는 철학에 따라 서점의 배치 또한 잡지, 단행본, 문고본 등의 배치가 아니라 음식과 요리, 디자인과 건축, 인문과 문학 등의 분류로 재배치되어 단순한 도서 판매가 아닌 고객에게 새로운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간 설계 또한 스치듯 방문해 책을 구입하고 빠져나가는게 아니라 최대한의 여유와 편안함을 주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철학을 반영한 첫 프로젝트가 바로 유명한 도쿄 다이칸야마 츠타야다.
허나 다이칸야마 츠타야의 성공은 일본이기 때문에 더더욱 도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주위의 일관된 극찬에 의심을 품고 있던 차. 다이칸야마의 뒤를 잇는 프로젝트 하코다테 츠타야 개장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일본의 북쪽 끝 홋카이도. 홋카이도에서도 변방이나 다름없는 하코다테에 다이칸야마보다도 더 큰 일본 최대 규모의 서점을 열었다는 소식. 그것도 지역 커뮤니티에 기반으로 한 서점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증은 커졌다. 마침 삿포로에 친한 친구 부부가 거주하는 덕분에 지난 5년간 홋카이도를 다섯 번이나 다녀온 나에게 홋카이도는 제주도 만큼이나 익숙한 곳 이지만 하코다테는 처음이었다. 늘 궁금하면서도 삿포로에서 반나절이 걸리는 위치인지라 언제나 다음 순위로 밀리던 곳 하코다테를 우습게도 서점 덕분에 드디어 가보게 된 셈이다.
서점은 삿포로에서도 4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하코다테에서도 외곽에 있다. 멀다. 주택 거주지와도 꽤 거리가 떨어져 있다. 자가용 없이는 가기 힘든 그러니까 이케아나 있을 위치다. 보통 서점이 있던 위치와는 거리가 멀다. 이건 땅값 때문이기도 브랜드의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경험(여유와 쾌적함)을 주기 위한 선택이라고 한다. 마스다 무네아키 대표는 저서에서 좁은 지하 주차장이 아닌 널찍한 지상 주차장이 주는 츠타야 서점의 첫인상과 그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하코다테 츠타야로 들어가 본다.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고려한 곳 답게 서점 1층의 중심 테마에는 어린이가 있다. 육아 잡지 옆에 어린이 도서와 장난감 코너가 있고 그 옆은 실내 어린이 놀이터가 있으며 이는 다시 외부로 확장되어 공원과 이어진다. 하코다테 츠타야의 정체성을 가장 쉽게 설명해주는 공간이다.
중간중간에 큰 벽난로와 의자가 있어 다들 오손도손 모여 앉아있고, 책장 사이로 드러나는 좁지만 긴 통창에는 작은 의자와 1-2인용 테이블이 놓여 있다. 또한 실내 곳곳에는 아늑한 작은 서점들이 있는 것처럼 중간중간 벽과 문이 있다. 보통 어린이 도서관을 설계할 때 고려하는 다락방 같은 느낌. 하지만 어린이 코너가 아니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결국 자신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싶은 건 본능이다. 거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책은 혼자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디자인. 공간의 성격이 다른지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츠타야를 참고로 했다는 국내 서점의 100인용 테이블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실내 어린이 놀이터 주위에는 노는 아이들을 기다려야 하는 부모들을 위한 리빙 코너가 있다. 음식과 관련된 도서 코너와 키친 관련 상품들이 함께 배치되어 있으며, 가구 코너의 판매용 의자들은 모두 앉아보게 되어 있다. 눈치 보며 앉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권장되어 있다. 판촉 사원은 없다. 여러 가지 의자를 직접 앉아보고 결정하게끔 그저 잘 놓여 있을 뿐이다. 잡지는 접근성이 가장 좋은 위치에 있으며, 거의 모든 잡지는 개봉되어 있다.
1층에는 스타벅스가 2층에는 캐주얼한 레스토랑이 있다. 마트 식당가처럼 여러 업체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레스토랑이 존재한다. 그래서 번잡하지 않다. 처음 서점에 들어와서 경험한 여유를 식당에서도 그대로 이어간다.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다. 워낙 식자재가 좋은 지역인지라 맛은 나쁠리 없었고. 카페 메뉴가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메뉴가 굳이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음료 또한 한 번에 나오는 게 아니라 식사가 진행된 후 뒤늦게 후식처럼 제공된다. 실제 이런 식당을 운영해보지 않았더라도 이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결국 서점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을 자신들이 의도하고 추천하는 속도에 맞추라는 뜻이자 서점을 들어서면서 느꼈던 여유를 이곳에서도 일관되게 경험하라는 의도이다.
도서 코너와 레스토랑은 신기할 만큼 열려있으면서도 독립적이다. 그냥 자연스럽다. 애써 막으려고 하지도 굳이 노출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츠타야 서점의 강점은 결국 이런 공간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2층 레스토랑 창가로 보이는 하코다테의 풍경은 자리를 뜨기 싫게 만드는 체험이자 왜 굳이 이런 한적한 곳을 택했는가에 대한 답이다.
그렇다고 일상과 유리된 테마파크의 느낌은 아니다. 이곳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각종 이벤트가 일상적으로 열리는 커다란 커뮤니티다. 이곳 주민들에게 츠타야는 서점이 아니라 활성화된 마을회관에 놀러가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지나가던 서점 고객이 레스토랑 주방장과 인사를 하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반갑게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한다. 관광객도 있지만 역시 지역주민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문득 지역 경제와의 공존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아마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면 그리고 츠타야 서점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츠타야의 본령인 렌털숍 코너에서 놀라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수만 장이 넘는 온갖 장르의 시디를 모두 들어볼 수 있게 되어있다. 그것도 선채로 몇 곡을 잠시 잠시 듣는 게 아니라 내 서재에 앉아 긴 시간 책을 읽듯이 편하게 음반을 쌓아두고 들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어떤 눈치도 주지 않는다. 아직까지 음반(특히 CD) 시장이 의미 있게 살아있는 전 세계 거의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하코다테는 확실히 다이칸야마보다 좀 더 여유가 있다. 그에 비해 음반숍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신보 소식보다 공간을 찾는 고객의 핵심 연령층을 타겟팅한 구성이 지배적이었다. 티렉스, 밥 딜런, 쟈니 캐시, 필 스펙터의 명반들로 구성된 코너, 70년대 명반선, 60년대 명반선... 아무래도 음악 마니아인지라 여러 가지 질문을 해보았는데 마스다 대표가 자랑하고 강조하는 컨시어지(Concierge, 단순 판매사원이 아닌 각 장르에 정통한 접객 담당자)의 수준은 솔직히 실망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일본어에 능숙해 도서 코너에서 문의했어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현실은 늘 근사한 용어에 가려져있는 법이다.
이쯤 되니 일본 지식인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홋카이도 대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지인을 통해 물어보니 의외였다. 아주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츠타야 서점의 확장으로 인해 전문서적이나 분야가 피해본다는 이야기가 핵심이었다. 전통적인 카테고리가 아닌 고객의 관심과 필요를 중심으로 해체되고 새롭게 구성된 진열 방식은 자연스럽게 '잡지' 편집 방식을 닮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편집이란 언제나 가치 판단이며 그 힘은 점점 한쪽으로 집중되게 되어 있다. 이는 국내 대형 서점의 환경과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신간인 경우 적어도 한 번은 서점 각 카테고리별 신간 코너에서 노출이 되었는데 고객 중심의 리노베이션 후 그 기회는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여기서 질문이 든다. 서점에게 고객은 저자, 출판사도 포함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한국 상황에선 이런 비판도 배부른 고민이 아닐까 싶어진다. 성인 10명 중 4명이 1년에 책 한권도 읽지 않는 나라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책에 대한 조명과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관심을 일으킬 수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같은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부정할 수 없는 츠타야 서점의 장점은 책을 '고른다'는 경험이다. 츠타야의 혁신으로 평가되지만 사실 이건 잊고 있던 서점의 본질이 아닌가. 지난 수십여 년의 서점이 미리 책을 결정해 재빨리 결제하고 떠나야 할 것 분위기였다면 츠타야 서점이야 말로 서점의 본래 의미로 돌아간 느낌이다.
두번째 장점은 이곳에선 책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책이라는 형태와 서점이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책과 서점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좋은 것들이 놓여있다고 좋은 공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걸 좋아보이게 만들기가 사실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는 사람만이 그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디자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서점에 더 있고 싶게 만들 것, 이에 더해 고객들이 그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 것,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게 되어있다. 이건 결국 '업(業)'의 본질에 집중할 것. 혁신은 그 본질에서 나올 것이라는 사례이자 교훈이다.
어쨌든 멸종 위기에 놓인 서점이 다시 살아나고 있지는 않아도 이슈가 되고 거론되어 지고 있다. 서점의 일부를 연극무대로 활용하는 영국 서점도 화제가 되었고, 술을 파는 서점, 숙박을 할 수 있는 서점, 일주일에 단 한권만을 판매하는 서점까지 서점의 이종교배와 확장은 현재 진행 중 이다.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웃 나라의 성공모델인 츠타야의 실험이 이곳에서 가능한 것인가라는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예스24의 모바일 매출액이 1000억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제 책은 언제 어디서나 구매되는 상품으로 급격히 전환된 상태다. 구매의 장벽이 없어진 시대, 예스24와 아마존이 동시 경쟁하는 시대에서 츠타야의 실험은 서점의 미래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진지하고 의미 있는 대답이다. 츠타야가 서점의 미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결론은 무엇이냐고? 잘 모르겠다. 하지만 츠타야의 실험이 이곳에서 적용되기 힘들다는 점은 말할 수 있다. 이웃 나라지만 시장의 규모도 문화도 턱없이 다른게 현실 아닌가. 또한 츠타야가 강조하는 오프라인에서의 경험과 가치를 손으로 직접 책장을 넘기는 감성에 빗대어 설명하는 건 마치 그동안 잊고 지내던 엘피(LP)의 따뜻한(?) 소리를 강조하는 음반 시장의 감성팔이 마케팅과 닮아있을 뿐이다. 오프라인이 중요한건 감성적이어서만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경험하고 구축된 자산들이 지속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아마존 오프라인 서점의 모습에서도 배워야 한다. 답이 있다면 츠타야와 아마존 서점 그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뻔하고 이상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요약해보면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 도시에서는 지금처럼 특색 있는 작은 서점들이 더 늘어나는 방향으로. 중소 도시에서는 서점이 아니라 지역 도서관에 이런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지자체의 지원이 필수적이겠지만 무엇보다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활성화 시켜야만 할 것이다. 예산을 써도 민간의 동기 부여를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쓰고보니 츠타야 같은 기업이 나오길 기다리는게 빠르지 않을까도 싶다...). 그리고, 이 모든 시작은 츠타야에 대한 칭찬이나 주목보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작은 독립 서점들에 대한 관심이 될 것이다. 땡스북스, 북바이북, 유어마인드, 인디북스, 더북소사이어티, 소심한책방, 무사...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흥미로운 서점들이 많다. 모든 미래는 현재에서 시작하는 법. 서점의 미래에 대한 답은 지금 이 독립 서점들에게서 시작할 것이다. 아니 서점의 미래같은 거창한 질문에 신경꺼도 좋으니 꾸준히 지속하면 좋겠다. 츠타야의 인사이트가 독립 서점에서 꽃피우길. 잔잔하지만 단단한 흐름이 되길.
* 하코다테 츠타야는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사용된 사진은 하코다테 츠타야 홈페이지 외 공개된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 이 글을 읽고 츠타야 서점에 관심이 생긴 분이라면 다이칸야마 츠타야에 가보시길 권합니다. 여유있게 그 곳에 머물면 많은 인사이트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하코다테 츠타야는 그 관심만으로 가기엔 멉니다. 물론 다이칸야마에 이미 가보신 분이라면 추천합니다. 하코다테는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합니다. 단, 하코다테 츠타야는 대중교통으로는 가기가 어려워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데 나중에 다시 택시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택시앱 사용이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택시 기사분께 몇시간 후 정문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게 좋습니다. 여유있게 3-4시간 정도가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