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호 Jan 04. 2021

치느냐 마느냐, 하농

피아노 교칙본의 유용성에 관한 갑론을박의 장에서 체르니와 함께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하농.

이른바 '손가락 연습곡'의 대표 격이기도 한 하농. 과연 꼭 쳐야 할까? 


많은 피아니스트들과 피아노 교육자들 사이에서도 하농류의 교본, 즉 '엑서사이즈'에 대한 견해는 천차만별인 듯하다. '피아니스트라면 반드시 매일 쳐야 한다', '쓸모없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스케일과 아르페지오 정도만 채용할 만하다' 등등.

물론 이 논의의 골자는 전공생과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딱히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지 않는 취미생에게는 어떨까? 하농과 같은 엑서사이즈 교칙본을 반드시 연습해야 할까?

질문을 조금 더 명확하게 바꾸어서, 피아노 취미생에게 과연 '손가락 엑서사이즈' 연습이 필요할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엑서사이즈'류의 연습곡들은 전공생보다 오히려 취미생에게 더욱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내가 체르니 연습곡을 비롯한 고전적인 교칙본에 대해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견해와 비슷하다. 나처럼 성인이 되어 취미로 피아노를 시작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곡들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위한 손과 뇌'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매일의 연습에 집중된 테크닉을 연마하는 에튀드와 손가락의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엑서사이즈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유일한 지름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취미생이라 시간이 없으니 연습곡보다는 하나의 작품에 집중해야지'

쉬이 떠오르는 이러한 생각은 대단한 오류이다. 작품을 통해 기술을 연마할 기회가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쳐 온 전공생들이다. 시간이 없을수록, 돌아가야 한다. 기본기를 집중적으로 연마하는 것만이 원하는 곡을 잘 칠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손가락 독립의 미완성으로 인해 고르지 못한 타건과 흔들리는 템포를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하농류와 같은 엑서사이즈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농과 같은 엑서사이즈를 '손가락 강화 훈련'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 사실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또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통용되기까지 하는 이야기인데, 이를테면 '하농을 많이 쳐서 손가락 힘을 기르세요', '손가락 근육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등등... 당장 인터넷에서 하농을 검색해 보더라도 도처에서 발견되는, 다들 별생각 없이 쓰고 또 받아들이는 이러한 '손가락 근력론'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손가락에는 애초에 근육이 없기 때문이다.


믿기 어렵다고? 그렇다면 손 혹은 손가락 해부도를 검색해서 한번 살펴보시라. 견갑골에서부터 뻗어 나온 우리의 팔 근육은 오직 손바닥까지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손끝에는 근육 섬유가 단 한 가닥도 이어져 있지 않다.


잘 훈련된 피아니스트들은 뇌에서 내린 명령 신호를 말초에 있는 손가락까지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함으로써 고도의 정교한 연주를 가능케 한다. 즉,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신경이지, 근육이 아니라는 사실. 따라서 근육 트레이닝처럼 건반 위에서 큰 힘(많이들 하듯, 포르티시모)을 주어 타건을 계속해봤자 진정한 의미의 손가락 발달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무거운 건반에서 연습해야만 실력이 는다는 이야기도 이러한 의미에서 의심해 보아야 할 문제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가 흔히 '실전용'이라고 말하는 그랜드 피아노들의 건반은 생각보다 많이 가볍다) 


다시 말해, 뇌에서 내린 신호를 '잡음'과 '손실'없이 명료하게 10개의 각 손가락을 타깃으로 정확하게 전달하여 섬세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엑서사이즈 연습 목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농 등을 연습할 때 자주 하는 붓점 연습, 몰아치기, 악센트 나누기 등등도 결국 뇌에게 서로 다른 다양한 패턴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반복하게 함으로써 손가락 하나하나와의 신경 연결을 확립시키고, 더욱 견고하에 만드는 '길 다지기(매핑)'의 방법 중 하나일 뿐이지, 결코 손을 혹사시켜 얼얼한 통증을 느껴지게 함으로써 '이렇게까지 손이 아프도록 연습했으니까 무언가 분명 성장했겠지'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소리. 


피아노 연습 중에 통증을 느낀다면, 그것은 성장의 증거가 아니다. 단지 연습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하농류의 엑서사이즈는 취미생에게 매우 유용하다. 단, 연습의 포커스는 늘 뇌와 손가락의 신경적인 연결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 빠르게 칠 필요도, 포르티시모로 칠 필요도 없다.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집중하여 뇌에서 내린 명령이 '의도한 손가락'에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는지, 그것에 집중하여야 한다. 처음에는 늘 천천히, 피아니시모로. 속도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덧붙이자면, 엑서사이즈 교칙본은 하농보다는 도흐나니를 더욱 추천한다. 특히 취미생의 경우 1번 곡 딱 한 가지만이라도 충분히 수개월 열심히 연습하면, 놀라울만한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미생은 어떤 피아노를 살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