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의 아주머니 직원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의 내가 때때로 발작적으로 내비치곤 했던 히스테리만큼 불쾌한 언동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한창 바쁜 시간대에 홀로 서서 모든 손님을 도맡아야 하는 게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건조하지만 떨리는 말투로 최소한의 응대만 하는 그녀는 몹시 지쳐보이기까지 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역시 일말의 친절한 기색도 없는 말투로 입사 초기에 그녀의 사수에게서 배웠을 법한 매뉴얼대로의 응대만을 내뱉는다.
봉투 드릴까요?
네. 주세요.
작은 걸로 드릴게요.
무심하게 내미는 봉투. 그러나 가장 작은 사이즈의 봉투에 담기에는 내가 산 물건은 가짓수가 꽤 된다. 차곡차곡 잘 구겨 넣자면 안 들어가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계산대 뒤로 길게 늘어선 줄을 흘낏 보고 나니 여유롭게 버티고 서서 봉투 소코반을 하고 있을 용기는 사그라들고 만다. 게다가 조금 전보다 한층 더 험악해진 듯한 계산원 아주머니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도 내겐 없다. 손아귀로 엉성하게 봉투를 잡은 뒤 급하게 카드를 챙겨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엘리베이터 안에 올라타 1층을 누르자 내 뒤에서 막 계산을 마친 듯한 두 사람이 웃으며 뒤따라 오른다.
왜 이렇게 불친절하대? 친절하게 해야지 손님들한텐.
냅둬, 울화통 터지는 일이 있었는가부지 허허허.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웃으며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경쾌하게 내렸고, 부인 역시 겸연쩍은 듯 우스운 듯 미소를 지으며 뒤따른다. 그래, 별 일은 아니지. 하지만 난 저 계산원의 마음속을 모르는 것도 아니야. 저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있어 정말 온 세상이 다 증오스럽게 느껴질 거야.
‘내가 왜? 내가 왜 여기서 이런 하찮은 일을 참고 해야 하는 거지. 나는 천원짜리 물건이나 계산하면서 마음을 상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건가… ‘
그래도 그녀 자신 혹은 그녀에게 딸린 식구들의 삶을 위해서 당장 박차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겠고. 압니다. 어떤 기분인지. 저도 많이 느꼈거든요. 그래도 직접 대놓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작은 일에 감동하고, 감사할 줄도 알고, 때론 사람들을 향해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주기도 하는 그런 당신의 진짜 모습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비록 지금은 그것을 끄집어내기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밖으로 나와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를 때 시간은 여덟 시를 훌쩍 지나 해는 이미 저물어 있었다. 다이소 봉투는 손아귀로 겨우 들 수 있을 만큼 빵빵해도 터지지 않을 만큼 튼튼했고, 여름밤은 오랜만에 선선한 느낌이다. 내가 한창 분노에 쌓여 일하던 그 시절, 누군가도 나를 위해 허허허 웃어주거나, 속으로 힘내라는 메시지를 쏴 보내 준 적이 있었을까. 꼭 그랬을 것이라 믿고 싶다. 아니, 꼭 그랬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삶을 지탱해 온 힘일지도 모른다는, 유치하지만 마음 따듯해지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