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커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는 커피다.
하루에 최소 2잔은 마신다. 아침에 한잔, 점심에 한잔 가끔 저녁에 디카페인 한잔. 커피를 좋아한 지는 꽤 오래됐다. 학창 시절엔 잘 마시지 않았고, 회사원이 된 이후부터 주기적으로 마셨다. 가끔은 커피에 달달한 것이 들어간 그런 음료도 마시고, 카푸치노나 라테 같은 음료도 가끔 마셨다.
하지만 요즘은 커피에 뭐라도 추가된 건 커피 고유의 맛을 해치는 것 같고, 몸에도 좋지 않으니 잘 마시지 않고, 밖에선 무조건 아아 혹은 뜨아, 집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원두를 직접사서 갈아서 드립 커피를 마시고 있다.
시골에서도 드립 커피 도구들을 가져가서 아침에 한잔, 점심에 한잔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원두를 갈 때면 향긋한 커피 향이 집안을 감쌀 때 정신이 차려지면서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시골에 있는 커피 도구는 [클레버]다. 아마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는 도구 일 텐데 드립은 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누가 어떻게 내리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많이 난다. 드립 커피 내리는 법을 찾아보면 아주 방법이 많다. 물줄기를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돌리고, 몇 분 내에, 몇 g을 얼마에 시간에 내린다 등등...
하지만 클레버는 이름답게 누가 내리던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도록 만든 도구이다. 클레버에 커피원두를 넣고 뜨거운 물을 대충 붓고 한 3분만 기다리고 잔에 올리면 끝이다. 그래서 누가 하던 맛 차이도 거의 없고 두 잔 정도는 한 번에 만들 수 있어서 사용하고 있다.
드립 커피를 마시다 보면 커피 로스팅에 대해서도 로망도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로스팅을 마당 없는 서울 집에서 했다간 등짝 스매시가 나기 때문에 엄두도 낼 수 없는 작업이다. 한 번이라도 로스팅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원두 로스팅을 하면 생두가 볶아지면서 껍질이 벗겨져 껍질이 마구 날아다니고, 집 안 전체가 연기가 가득 찰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시골에는 마당이 있기 때문에 수돗가에서 커피 로스팅을 해봤다. 도구는 아주 간단하다. 망으로 된 기구, 생두, 가스레인지만 있으면 된다. 대신 팔이 엄청 아프다. 한 20분 정도는 계속 흔들어 줘야 한다. 이게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계속하다 보면 지겹고 손목이랑 팔이 아프다. 가만히 쉴 때는 20분이 후딱 가는데 이런 거 할 때는 시간이 안 간다. 상대성 이론이 여기도 적용된다. 20분간 끊질기게 흔들다 보면 끝이 난다.
그런데 이게 원두가 다 떨어질 때 다시 로스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자본주의가 참 좋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가격이 있는 상품들은 다 노동이나 여러 기술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돈이 되지 않는다면 그 누가 대신 이 일을 하주겠는가. 그래도 생두가 20분간 열심히 볶다 보면 잡생각도 없어지고, 이번 커피는 잘 되려나 그런 걱정과 자본주의 생각도 하면서 로스팅을 하게 된다.
가끔은 원두가 균일하게 볶아지지 않고, 까맣게 탄 원두도 생기기 마련이다. 몇 개는 버리지만, 그걸 다 버리다 보면 마실 커피가 없기 때문에 그냥 먹는다. 약간은 텁텁한 맛도 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거라 맛있게 느껴진다.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마당이 있는 건 참 좋다.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또 한편으론 로스팅을 하면서 느끼는 자본주의도 새삼 장난 아니게 좋은 제도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론은 내가 로스팅하고 드립 해서 먹는 커피도 맛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커피는 누가 해주는 게 제일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