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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윤지 Apr 16. 2022

질문으로 연결되는 뉴노멀의 봄

우정의 언어 예술 | 팬데믹 다이어리 3. 2021 봄

[우정의 언어 예술 | 팬데믹 다이어리]는 2020년 코로나19로 팬데믹이 시작된 후 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과 예술교육실천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에세이입니다.


2021년은 온라인 그림책 클래스에서 어린이들과의 만남으로 시작했다. 공공기관 수업이 없는 1~3월을 쉬면서 보낼 수도 있었지만, SNS에 올라온 “온라인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 읽기”를 운영할 사람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림책을 통한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기업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고, 지난해 겪었던 시행착오 속에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고 싶었다. 강사로 지원하기위해 그림책을 읽는 영상을 찍어 보내고, 말로만 들었던 화상면접을 봤다. 이 모든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 낯설었지만, 다행히 면접까지 합격했다.


그리고 스크린 너머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내복 바람으로 앉아 있는 어린이들과 한 달에 두 권씩 그림책을 읽으면서 울고, 웃고, 질문하고, 대답하며 우정을 쌓았다.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감 속에서 그림책을 함께 읽는 이 시간은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대와 지역을 넘어 이야기 예술로 연결되는 특별한 연대의 시간이었다.


어린이와 책을 읽는 것은 어른의 책읽기와 감각적으로 매우 다르다. 보통 어른들은 책을 묵독(소리 내지 않고 읽기)한다. 그런데 어린이들과 책을 읽을 때는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가끔은 온 몸으로 책을 읽기도 한다. 특히 나는 어린이들과 그림책을 읽을 때 소음이 가득해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는 것은 나의 목소리였지만, 그림책을 보고 아이들마다 떠오른 것, 알고 있는 것, 경험한 것, 궁금한 것, 그림 속에 나와 있는 것 등을 ‘소리쳐’ 말하면서 수업의 흐름을 이끌고 간다. 그러면 나는 과열된 목소리들 사이로 말문이 막힐만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갑작스러운 정적. 그 사이를 뚫고 누군가 엉뚱한 말을 해버리면, 난장과 논란, 수다의 장이 펼쳐진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것은 질문과 이야기가 변주하는 리드미컬한 소음 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다.


다행히 이런 경험은 온라인에서도 가능했다. 회사는 그림책 콘텐츠를 온라인 송출용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었고, Zoom 수업은 테크니션의 모니터링을 통해 협력 운영을 하니 강사가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과는 몇가지 규칙을 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발언의 방식 이었다. 한번에 여러명이 말을 하면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없으니 손을 들어 발언할 기회를 얻은 후 이야기를 하도록 하였다. ‘경청’의 매너를 규칙으로 삼고 수업의 흐름 중간에 질문을 쉼표처럼 배치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름을 많이 불러주면서 고루 발언의 기회를 갖도록 했다. 수업이 매일 성공적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직 내 안에 아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지난해보다는 성장한 게 분명했다.




<Crinkle! Crackle! It’s Spring>, by Marion Dane Bauer, Illustrated by John Shelley (출처 : 알라딘)

3월에는 봄이 주제인 그림책을 읽었다. 그런데 유독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첫째, 둘째 주에 거의 말이 없었다. 매번 화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서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고민이 됐다. 어떻게 하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셋째 주에 봄이 오는 소리를 그린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Crinkle! Crackle! 이 소리는 누가 내는 소리 같아요?” 그러자 그 아이가 조금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귀뚜라미 같아요.” 반가운 목소리에 "오! 그렇네! 그런데, 어떻게 귀뚜라미 소리를 알았어요?"라고 질문을 하니 “저는 식물과 곤충을 좋아하거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취향을 나눠준 아이에게 폭풍 질문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식물은 뭐에요?, 지금은 어떤 식물을 키우고 있어요?, 지금 계절은 어떤 곤충이 많아요?, 어떻게 식물과 곤충을 이렇게 많이 알고 있어요?…” 자기가 잘 알고 있고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게되자, 아이는 봄이 되면 들판에서 뛰어놀고 싶다는 것과 집에 곤충 모형을 엄청 많이 갖고 있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이렇게 3주 만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아이는 다음 수업 날 집에서 가지고 놀던 곤충 모형을 몽땅 가져와 스크린 앞에 보여주며 친구들에게 신나게 소개를 했다. 관심이 담긴 질문이 아이의 마음을 열고, 함께하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준 것이다.


<Love You Forever>, Written by Robert Munsch, Illustrated by Sheila McGraw (출처 : 알라딘)

로버트 먼치의 책 <Love you Forever> 을 읽은 후에는 아이들이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중에는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직까지 여러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은 주인공이 태어나서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성장하면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녀가 변화무쌍한 성장기를 겪는 내내 변함없이 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책의 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 속에 아이들이 공감할만한 일상의 풍경이 많아서인지 특히 가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이제 막 4학년에 올라가는 여자아이 하나는 엄마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이 아이는 첫 시간에 자기 소개를 비롯한 가족을 소개할 때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우리 엄마는 회사 사장님이에요. 나는 엄마처럼 될거에요." 그런데 수업 중간 즈음에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매일 나랑 있어주지 않고, 학원을 많이 보내요."라며 속상한 마음을 꺼냈다. 10대 초입에 서서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는 아이의 성장통이 보여 안쓰러웠다. 책을 다 읽고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뭐였나요?"하고 묻자, 아이는 표지 장면을 꼽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나도 어릴 때 저 아기처럼 엄마 화장대를 엉망으로 만들어서 엄마를 힘들게 한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책 속 주인공의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나를 사랑했을 것 같아요."라며 자못 진지한 마음으로 엄마의 사랑을 되새겼다. 아이의 마음에 이해의 폭이 자라나는 만큼 엄마의 사랑이 깊이 기억되기를 바랐다.


어떤 남자 아이는 청소년기에 접어든 주인공이 이상한 옷을 입고, 이상한 친구들과 밴드 흉내를 내며 노는 장면을 보며 "요즘 우리 형아가 저래요!"라며 형을 흉보자, 형이 있는 몇몇 아이들이 동조하며 저희들끼리 낄낄거리기도 했다. 올해 3학년이 된 또 다른 여자아이는 결말에서 늙고 병이 든 엄마가 아들에게 노래를 끝까지 불러주지 못하는 장면을 보고 화면을 끄고 울음을 터뜨렸다. 평소에는 수업 중에 무척 까불거리고, 화면 바깥에서 챙겨주시는 엄마 목소리에 까칠하게 대답하던 아이였는데, 주인공의 엄마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감정이 복받쳐 오른 것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내내 말없이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아이가 긴 침묵을 깨고 던진 질문이었다.


“어… 그런데요 선생님, 이렇게 반복되는 거예요? 계속 살아가면서요?”



이제 갓 열 한 살이 된 아이가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책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성장과 노화, 그리고 새 생명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죽음도 마주하게 되는 사람의 생에 대한 깊이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생명과 죽음, 그 순환을 채우는 사랑의 가치, 영원의 의미 등을 일깨우는 질문은 수업이 끝나고도 내게 긴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비대면 수업의 한계를 가능성으로 만드는 '질문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질문은 어째서 아이들빛을 이토록 선명하게 해줄까? 질문을 받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새 변방으로 물러서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배움의 중심에  순간' 지켜보며 내적 탄성을 지른다. 아이들은 서로를 자극하는 질문을 던지며 생각을 틔우고, 그들만의 흐름을 리드한다.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고 노는 티키타카가 갑자기 급물살을 탄다거나, 서로의 선을 넘으며 불똥이   같으면 잠시 개입하기도하고, 대화 속에 숨겨진 보물같은 순간을 끌어올려 다시 질문으로 던진다. 그래 이맛이었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던 어린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맛. 변칙적이고, 엉뚱하며, 기발하고, 무례한  같지만, 실은 지극히 상식적이어서 사이다 같은 시간들! 스크린을 두고 앉아있지만, 어린이들의 영혼은 질문을 가지고 놀며 여전히 생기를 발하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월드에서 어린이와 우정을 나눌  있는 열쇠를 찾은  같았다. 팬데믹이 종식될 때까지 계속 마주해야할 비대면 교육 환경은 여전히 한계가 있을테지만, 우리가 마주한 재난 속의 일상을 연결하고, 성찰하며, 이야기를 나눌 예술적인 질문들은 스크린을 관통할  있겠다는 가능성이 보였다. 더이상 스크린은 장벽이 아닌, 질문을 던지고 노는 놀이터였다. 나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고 재미있게 던지고   있는 예술적 질문을 준비하는 사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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