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윤지 Apr 03. 2022

줌 월드에서도 찾을 수 있을까?

우정의 언어 예술 | 팬데믹 다이어리 2. 2020년 가을, 겨울

[우정의 언어 예술 | 팬데믹 다이어리]는 2020년 코로나19로 팬데믹이 시작된 후 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과 예술교육실천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에세이입니다.

2020년 11월, 하반기 온라인 교육이 끝나자 또 한번의 혼란이 밀려왔다. 여름 방학 내내 나름 비대면 교육에 대해 연구를 하고 강의를 시작했건만 역시 현장의 맛은 매웠다.


팬데믹 이전에 나는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할 때 보통 주제를 중심으로 예술적 체험을 할 수 있게 준비했다. 특히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은 교과 진도의 일부를 예술 장르를 통해 학습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문화 예술 기관 등에서 진행되는 교육은 장르적 특성을 경험할 수 있는 방향을 고려했다. 그러나 어떤 곳에서 수업을 하든, 예술의 장르적 특성을 살려 ‘감각을 확장하거나, 활용’하는 교수법을 선택해왔다. 하지만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너무 많은 감각이 제한되어 그동안 사용해온 교수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오프라인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숨소리, 시선이 향하는 곳, 몸짓 등 비언어적인 정보가 그대로 보인다. 특히 나는 말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눈을 맞추거나, 미소와 격려의 손짓 등을 사용해가며 소통하는 것을 선호한다. 시각예술장르의 예술교육가이지만, 몸짓과 연기도 다양하게 사용하면서 아이들이 수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데 신경을 많이 써왔다. 공간을 함께 점유하는 시간만큼은 학생들과 최선을 다해 소통하고 그들의 표현에 반응하면서 새로운 예술 언어를 익히고 창작 체험 활동을 하는 것을 문화예술교육의 묘미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 강의실에서는 아이들의 시선이나 창작하는 과정, 어려워하는 부분이 파악이 안 됐다. 그동안 현장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발달시켜온 오감이 제한되고, 아이들이 처한 온라인 환경에 따라 전달력이 제각각이라 전반적으로 소통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단절감이 채웠다.


이번에 진행하는 수업은 초등학생 대상 비대면 STEAM 교육으로 기술적인 부분과 인문, 예술적인 내용이 융합된 것이라 소통의 한계가 더 컸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수업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해서 배우고, 내가 친구로 삼고 싶은 로봇을 디자인하여 전자 부품을 활용해 움직이는 로봇을 만드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 메이커 스페이스'라는 콘셉트로 프로그램의 방향을 이끌어가고자 했다. 나는 실험실의 박사님이 된 것처럼 아이들과 실험 과정을 공유하는 것을 상상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Zoom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초등학생들에게 작은 부품을 연결하는 방법을 스크린 화면과 발문 만으로 전달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나는 수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에게 카메라의 위치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가장 많이 하게 되었고, 낯선 수업 환경에서 도와주는 어른이 없이 홀로 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은 택배로 보내준 재료 박스에서 사라진 부품을 찾느라 시간을 하염없이 흘러보내기 일쑤였다. 박스에서 부품을 찾는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PPT 화면에 있는 이미지를 보면서 생소한 부품의 이름과 생김새를 익히는 것부터 어려워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중요한 부품을 잃어버리거나 부품끼리 연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소통의 질이 낮아지니 수업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 버린것이다.


온라인 수업용 PPT가 100페이지를 넘었습니다. (주룩) © 2020. Gong Yunji


비대면 환경에서는 왜 이렇게 소통하기가 어려운지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채 수업을 책임지고 진행해야 했던 나는 답답한 마음에 어느새 수업용 슬라이드를 100장 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계획에 없던 참고 영상과 교재까지 디자인해서 배포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수업 마지막 즈음 ‘아이가 이 수업을 많이 기대했는데, 사기가 떨어졌다.’는 학부모님의 메시지를 받고 나니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정신없이 수업을 마치고 정리를 하면서 그제야 나는 결국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비대면 교육환경과 매체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교수법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 수업에서 생겼던 문제들은 사실 교실 공간에서 수업을 한다면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비대면 수업에서는 부품들을 직접 만질 수 없고, 강사와 학생이 서로의 상황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학습의 장벽들이 너무 많았다. 오프라인에서 이미 한 학기나 했던 프로그램이라 큰 걱정을 하지 않았었는데, 대혼란을 격은 뒤에야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비대면으로 옮겨간 순간 수업의 목표와 과정, 교보재 등이 모두 새롭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수업을 대면에서 진행할 때는 교실 한편에 학생들이 사용할 재료를 종류별로 분류한 재료함을 만들어 두고, 각자 계획한 창작의 방향에 맞게 자율적으로 필요한 재료들을 가져갈 수 있게 해서 학생들의 자유로운 창작을 격려했다. 혹시라도 부족한 재료는 언제든지 더 가져갈 수 있고, 종종 혼자 힘으로 창작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는 교사가 간단한 시연을 보여주거나 적합한 질문을 던져 개별 지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대면에서는 수업 환경을 학생들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교사와 단절된 공간에서 학생들이 수업에서 사용할 재료와 수업의 내용을 미리 숙지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실시간으로 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소통의 질이 급격히 낮아진다. 더불어 비대면 환경에서 한 학생이 수업 준비가 미진할 경우 전체 학급에 대면 수업보다 더 큰 파장을 미친다. 비대면 수업에서는 스크린 기반으로 시각과 청각만으로 소통을 하다 보니 개별 지도를 할 때 다른 학생들의 주위가 같이 산만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대면 수업을 위해서는 사전 준비를 더 철저히 하는 방법을 마련해두지 않으면 학습 목표를 달성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면과 비대면 환경에서의 수업은 다른 전제를 갖고 준비해야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특히 비대면 수업 환경은 시각과 청각을 제외한 이외의 감각이 제한된 상태라는 것을 감안할 때, 예술교육을 이전과 같이 예술의 장르적 특성을 살려 '감각을 확장하거나 활용'하는 방법으로는 운영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팬데믹 이전에 맛보았던 예술교육 현장의 다채로움을 기대하며 시작했던 수업이었건만, 첫 번째 비대면 실시간 수업의 쓴 맛을 보고는 헛헛한 마음이 가득한 채로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속상한 마음을 풀 겸 평소에 좋아했던 김소영 작가의 신간 <어린이라는 세계>를 집어 들었다. 책을 훌훌 읽어 내려가다가 ‘멋진 허세와 솔직한 매력이 난무하는 어린이 세계의 매력’이라는 글귀에 눈 길이 갔다.


이 책은 내가 왜 예술교육을 이토록 오랜 시간 해왔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했다. 어린이의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가의 글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내 마음의 중심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예술의 장르적 특성보다 대상의 특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교육실천가의 입장에서 즐거웠던 예술적 체험을 전달하고, 몰입하는 장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학습자가 처한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세계를 상상하면서 참여자 입장에서 예술교육을 바라볼 수 있어야 했다.


사실 예술교육에서 예술 장르를 벗겨내고 보면 사람이 남는다. 내가 우리나라 예술교육이 지향하는 '생애주기별 예술교육'을 좋아하는 이유도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삶이 예술을 통해 표현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예술교육이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는 예술로 어린이를 만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만약 내가 아이들과 다른 관계로 만났더라면 볼 수 없었을 '어린이, 청소년의 멋진 허세와 솔직한 매력이 난무하는 매력'을 예술교육가라서 더욱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의 세계>는 '내가 다년간 예술교육을 좋아해온 이유'를 건져낼 수 있는 뜰채가 되어 주었다.


나는 예술교육가로서 어린이, 청소년의 멋진 허세와 솔직한 매력을 사랑하고
그들의 품위를 존중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가 다차원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표현하는 다양한 예술 언어를 소개하고 싶다.


수업은 망했지만, 뜻밖에 마음은 단단해졌다. 중심을 되찾았으니 이제 새로운 방법을 연마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내년에는 줌 월드에서라도 기필코 어린이, 청소년들의 세계를 만나리라!'는 마음을 먹고 연말에는 공부에 매진했다. 아르떼 아카데미에서 비대면 환경에 적합한 교수법과 해외 문화예술교육의 흐름에 대한 연수를 듣기도 하고, 온 더 레코드에서 진행한 2020 콘퍼런스 위크 <우리는 러닝메이트>에서 코로나 시대의 교육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비대면 상황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하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술교육 저작권 교육도 이수했다.


이 정도면 2021년에도 계속될 팬데믹 속에서도 여유롭고 능숙하게 비대면 수업을 이끌며 어린이, 청소년의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겨울방학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스크가 가릴 수 없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