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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Oct 16. 2016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중학교 때 국어를 가르치셨던 여자 선생님께서 어느 날 수업시간에 불쑥 말씀하셨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동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고 하시면서 그날 아침 이야기를 해주셨다.  선생님 부부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을 때 생후 몇 개월밖에 안 된 아이가 기저귀에 대변을 보았는데 아버지는 식사하시다 말고 밥맛이 떨어졌다면서 바로 출근하시고 어머니인 선생님은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손을 씻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마저 식사를 하시고는 학교에 나오셨다고 하셨다.


그때는 무심코 흘려들은 이야기였지만 세월이 지나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소변 기저귀까지는 갈아주겠는데 솔직히 대변 기저귀는 엄마 차지였다.  아내도 처녀 때는 안 그랬을 것 같은데 아이 대변 기저귀를 갈아주면서도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아이와 눈을 맞추고 미소까지 보내는 것을 보니 그제야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 말씀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단지 이 뿐만이 아니고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면 아빠인 나는 왜 우는지 몰라서 허둥지둥하였지만 엄마는 배고파서 우는 건지 아니면 기저귀가 젖어서 우는 건지 아니면 잠투정인지 바로 알아차리고는 즉각 조처해 주었고 그러면 아이는 거짓말같이 울음을 그치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와 아빠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물론 엄마 아빠라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의 호칭이니 아이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차이가 있다는 뜻이고 이것 역시 아버지들이 잘못해서가 아니고 조물주가 세상을 만드실 때 이미 이렇게 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엄마 아빠만의 문제가 아니고 외가인 이모는 너무나 편한 존재이다.  마냥 투정을 부려도 대충 다 받아주는 분위기이지만 고모는 어느 순간 만만히 볼 수 없는 엄격함이 있다.  외삼촌도 편하고 가끔 투정을 부려도 다 받아주는 분위기이지만 큰 아버지는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게 된다.  그래서 조선 시대 왕실 역사에서도 항상 외척세력들이 득세하였고 이것이 큰 문제를 일으킨 적도 많고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태종 같은 경우는 세종이 왕이 되어 마음껏 정사를 펼치게 하기 위하여 미리 외가인 민씨 가문과 세종의 처가인 심씨 가문을 정리(?)하는 끔찍한 일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이쯤 되면 아버지들이 한마디 할 것 같다.  ‘그래서 어쩌라고?’  맞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 이런 사실에 대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 아이들한테 엄마보다 더 우수한 평점을 받는다고 상금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불필요하게 힘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끔 생각날 때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더 떠오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의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들었으면 너무나 기가 막힐 노릇이겠지만 아버지는 형제 중에서도 눈에 띄게 나를 편애하셨고 돈을 많이 버셔서 내가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넘어 남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게 해 주셨고 아버지 세대에는 돈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했을 여자관계(?)도 깨끗하셔서 가정이 깨지지 않고 잘 지켜지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이런 많은 좋은 기억보다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몇몇 일들만 자꾸 생각나는 것이었다.  즉 백 번 나한테 잘해 주었어도 한 번이라도 어머니의 눈물이 나게 했던 행동들이 있으면 그것만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감정으로 남는 것이었다.


나만 특이한 것이 아니고 주위의 내 친구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아이들한테는 무조건 엄마가 최고이고 엄마의 가슴에 상처를 준 사람은 설사 그가 너무나도 잘 해준 아빠라도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친할머니의 사랑이 주변에서 유명할 정도로 지극했는데도 지금은 돌아가신 친할머니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이야기하곤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였다.  그 할머니가 본인 어머니에게 심한 시집살이를 시켜서 어머니의 마음고생이 심하였다고 한다.


상갓집을 방문하다 보면 돌아가신 고인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어도 상주들을 보면 대충 알 수가 있다.  천수를 다하시고 소위 말하는 호상이라는 상갓집은 상주들이 슬픈 중에서도 비교적 차분하고 또 얼굴빛이 나쁘지 않다.  또 고인이 오랜 기간 아프시다가 돌아가신 경우도 비슷하다.  그런데 상주 분들의 눈이 퉁퉁 부어있고 너무 슬픈 분위기이면 고인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경우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학교 동창이 갑자기 죽음을 맞았다.  심장마비로 돌연사를 한 것이다.  상가에 갔다가 상주들인 자녀들의 얼굴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전혀 운 흔적도 없고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오히려 조문객인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고인이 된 이 친구는 대한민국 최고의 학벌과 최고의 직장을 다녔지만 매일 술에 기대어 살면서 가정적으로는 내가 봐도 너무할 정도였고 특히 아내의 눈물 정도가 아닌 피눈물을 흘릴 일들을 다반사로 하곤 했었다.  자기 어머니를 힘들게 한 아버지에 대해서 갑작스러운 죽음도 자녀들의 눈물을 이끌어내지는 못하였다.


아버지들에게 자녀들이 기억하는 것은 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가 이다.  자식들에게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더라도 어머니에게 특별히 가슴 아픈 일을 안 했다면 최소한 나쁜 기억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자식에게 잘 해 주어도 어머니에게 피눈물 나는 일을 했다면 앞의 잘해준 부분들은 다 잊히게 된다. 

 

우리는 우스개 소리로 아내한테 잘 해야 늙어서도 따뜻한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어느 대기업의 기발한 노력으로 이 부분은 해결이 되었다.  바로 햇반이라는 발명품이다.

그런데 어떤 대기업도 또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도 자녀들의 기억을 뒤바꿀 수 있는 개발품을 만들 수는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는 비교적 인기 많은 아버지인데 이것 역시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그리 눈물 나게 하는 일이 없었다는 대전제 아래 가능했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이 둘을 동격으로 말하지만 실제로 단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절대 동격이 될 수 없다.  글자 수가 3개로 같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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