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준이를 향한 엄마의 뻔뻔한 바람 '일단' 3가지
육아휴직 후,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입니다. 회사 점심시간, 직장 상사가 묻습니다.
주임님은 범준이가 뭐가 됐으면 좋겠다, 이런 거 없어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입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전 그냥 회사원인데 행복해요" 나쁜 대답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진심이었고, 그 당시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도 그 질문이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스스로 성에 차지 않는 대답을 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그 질문은 처음부터 제가 '훌륭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한 예능에 나와 초등학생에게 '아무거나 돼'라던 이효리의 말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범준이가 아무거나 되길 바랍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그래봤자, 범준이는 크면 범준이가 되겠지요. '무엇이 되길 바라냐(what to be)'면 '뭐가 안되어도 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살길 바라냐(how to be)'고 묻는다면, 아무렇게나 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그 바람이 너무나 거창합니다. 엄마의 욕망이고 욕심일껍니다. 뻔뻔하기도 하지요. '엄마가 그렇게 살면 되잖아'라고 범준이가 따지면 뭐라해야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준이가 인생에서 지켜나가길 바라는 몇가지 바람을 정리해 봤습니다. 시시때때로 우리 가족이 길을 잃을 때, 저희 부부와 범준이의 결정의 지침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범준이는 사회적 의사결정권을 많이 보유하거나, 권리와 부를 획득한, 일명 기득권층에 속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범준이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처한 소수자의 길을 걷는 어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많은 사람이라면, 여성, 장애인, 성적소수자 등 소수자의 편에서 그들을 위해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수자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권익을 찾기위해 소심해지지 말고, 기득권과 싸우기를 주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자라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아휴직으로 인해 회사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은 후, 나의 뒤를 따라 걸어오는 여자 후배들의 출산, 육아 등 여성으로서의 처우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좋은 전례를 남기지 못해 괴로웠습니다. 제 아들이 절대 여성, 장애인, 성적소수자를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으로 배제하고 소외하는 행위에 가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직적인 문화에서 전해져오는 '예절'만 따르기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매너'를 갖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어른들은 수저통이 저 멀리 있어도 벌떡 일어서 알아서 웃어른들의 수저를 챙기는 젊은이를 예뻐합니다. 범준이가 그러한 행동을 기쁨으로 여긴다면, 저도 대견해 할 겁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예쁨을 받기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이유로 예절 바르기를 바랍니다.
본인의 나이가 많아졌을 때 또한 수저통에 가까운 곳에 앉았다면, 직급나이를 불문하고 먼저 수저를 놓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반가운 사람에게는 지체하지 않고, 본인이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기 바랍니다. '왜 그런거죠?'라고 반문하는 아랫 사람을 노여워하지 않고, 그의 의사의 합리성을 생각해보는 윗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호주에서 친구가 놀러왔습니다. 한국에 잠시 온 열흘 내내 술을 먹고 클럽에 다닙니다. 저는 '나는 밤 12시 이후에 노는 것이 버겁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술에 취해 누군가에게 평소에 않던 이야기를 하면 그 다음날 미칠만큼 후회되고 우울하다'도 이야기했습니다. 친구가 말합니다. '너 아직 젊어. 그리고 그럴 때 속 깊은 이야기 하는거지, 언제해?'. 나는 벌써 노쇠한 것만 같습니다. 친구의 열정이 부럽습니다.
하루는 회사 상사가 이야기를 하자고 하십니다. 요즘 걱정이 '너'라고 하십니다. 좀 더 치열하고 가열차게 가르치는 게 맞는건지 아니면 지금 이대로가 좋은건지, 정말 절 위한 길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그 마음이 참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뭐가 되는건지요...? 저는 뭐가 되려고 일 하지 않고, 일이 즐거워서 일을 해요. 다른 사람보다 역치가 낮아서, 무언가를 미친듯이 해본적도 없고, 무언가가 미친듯이 되고싶었던 적도 없어요.'
상사는 실망스러운 기색이 여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한국 사회에서는 나처럼 악착같이 무언가가 되고싶은 여자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많아. 그냥 그렇게 편하게 살려면 지금도 나쁘지 않지."
여자라서 그냥 그렇게 사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걸 좋아하는 해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마음에 담지 않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종종 밤잠을 설칩니다. 내가 한량이나 이상주의자 같기도하고, 상사의 야망과 성취욕이 부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저는 그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황금같은 성취라 할 지라도 저는 그러한 일들을 할 때 절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범준이에게 범준이가 되라고밖에 얘기할 수 없습니다. 2018 트렌드라는 '소확행(小確幸/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순간들만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가족들과 저녁 먹기, 엎어치고 메치며 범준이와 몸으로 나뒹굴기, 남편과 식탁에 마주 앉아 다이어리를 정리하기, 샤워 후, 한잔의 맥주, 바스락대는 침구 안에서 발가락 꼼지락 대며 책 읽기. 가끔하고는 못 살 일들입니다. 매일어야합니다. 100년의 저녁을 이렇게 보내도 저는 지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흥이나 일로는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저만의 소확행입니다.
자라나는 동안 범준이를 범준이로서 행복하게 만드는 삶의 요소를 찾길 바랍니다. 너무너무 좋은 사람을 알아보길 바랍니다. 후회없는 인생의 방향을 내면에게 물어물어 찾아가길 바랍니다.
번외로, 우리 아이와, 우리 아이의 아이가 살아가는 미래에는 젊은이들에게 치열한 사회의 분위기에 함몰되지 말고, 조금 느긋하게, 지금에 집중하며 살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였으면 좋겠습니다.
epilogue:
SNS에 '범준이와 공유하고 싶은 세상의 좋은 가치가 너무나 많은데, 가르치기엔 내가 너무나 부끄럽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지인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범준이도 에릭남같은 남자로 자라길...'. 그가 타인의 외모를 농담으로라도 희화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잘 자란 남자구나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닮았으면' 이라고 질문을 바꾼다면, 에릭남도 좋지만, 표현이 건강하고 구김살이 없는 헨리같은 남자도 좋겠습니다.(사.심.가.득) 그나저나 저는 그 지인에게 대댓글을 달았습니다.
에릭남은 에릭남을 심어야 난다는데...
오늘밤은 남편 '고씨앗'씨와 좀더 심도깊은 대화를 나눠봐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