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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ight Hands Jan 05. 2021

국제개발협력 실무자의 해외 출장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면서 메일로만 소통하던 현지를 방문하여 수혜자를 만나고, 기부된 사업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거기에 아이들의 환한 미소까지 본다면 그 보다 더 큰 활력소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2020년 올 한 해는 인천공항을 가본 적도 없으니, 이런 적은 처음인 듯하다.


  사업부의 실무자로서 누구나 꿈꾸는 해외출장. 공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면세점에서 립스틱을 산다든지 소소하지만, 작은 사치를 누려보기도 한다. 장시간의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보며 기내식을 먹고 수시간 동안 멍하니 떠도는 구름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온 몸으로 한국과는 다른 날씨와 언어들을 느끼면 현장에 대한 도전과 셀렘이 가득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적으로 일이 치이고 살기에, 출장 직전까지 짐도 제대로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슬픈 현실) 막상 현장에 도착해서는 한국의 업무 메일을 팔로우 하기 급급한 웃픈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현지에 가면 한국 업무를, 한국에서는 현지 업무를 본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코이카를 비롯한 많은 기관들이 지표와 모니터링 평가에 대한 강의를 많이 한다. 큰 단체들의 섹터별 지표 분석과 적용을 듣다 보면 실무자들은 ‘이 지표와 평가 방법을 어떻게 우리 사업에 적용하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바쁜 업무 탓에, 그 책자와 정보는 고이 사무실 책장에만 자리 잡게 된다. 막상 상사로부터 지표를 접수받았다고 할지라도 인터뷰와 기본 스킬이 부족하여 현장에서 잘 활용하지 못한다.


  한정된 시간 안에 레코딩부터 기록까지 하며 수혜자 얼굴도 보지 않고 인터뷰를 진행하니 그들에게서 성의 있는 대답이 나올 턱이 없다. 입장 바꿔 생각해도, 내 앞에서 내 말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라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분위기를 보며, 사람을 보며, 생각을 하며 수혜자와 함께 진행하는 현지 방문조사. 언어와 시간적인 제약이 있기에, 결국 현지인들에게는 이기적이고, 강압적인 인터뷰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라는 핑계를 항상 안고 사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다.     

  개발협력 프로젝트에 있어서, 좋은 모니터링과 평가는 무엇일까? 지표를 활용하는 건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실무자 스스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설령 사수와 같이 출장을 간다 해도 ‘내가 뭘 말할 수 있지?’ ‘난 옆에서 따라만 다녀야지!’ 하는 수동적인 태도부터 변화해야 한다. 현지에서 타문화를 경험하며, 사업의 최전선에서 현장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젊은 실무자를 보면 많이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가지게 된다. 소중한 후원금으로 이루어지는 "흥청망청 개발 투어"가 아니듯. 현장에서 주어지는 24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5배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여 준비를 해야 하고, 현지에서는 시간 단위로 쪼개어 생각하고 판단하고 의견을 개진할 적극성이 요구된다.


  나의 경우 첫 NGO 직장에서 필리핀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을 어른들과 다닐 때에는(사실상 의전!) 말도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지만, 단체의 마지막 출장으로 인도네시아를 단독으로 다녀올 때는 스스로 꼼꼼하게 준비하여 진정으로 내가 만족할만한 사업 타당성 조사를 경험해 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미숙하기 그지없지만) 그러나, 두툼한 출장보고서는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고, 출장 보고서의 표지에 있는 결재란에 서명하는 것으로 보고는 아쉽게 끝이 나버렸던 기억. 나의 "출장자 소견" 란에는 상사도 관심이 없어서 무척 아쉬움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작년만 해도 기회가 된다면 비용이 들더라도 종종 직원과 함께 출장을 가려고 한다. 가능하면 내가 현지 파트너와의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보다는 실무자가 실무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편이지만, 그런 분위기 자체를 낯설어하는 직원들도 있었던 것 같다.

  어마어마한 탄소가스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타며, 현지를 방문하는 건 실무자인 우리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기회이다. 그 기회를 귀하게 여기고 준비부터 조사 및 팔로우까지 이어지는 나이스한 어프로치를 하는 실무자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더군다나 요즘은 해외파견을 가기 주저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씁쓸하다. 이 바닥에서 현장 경험은 군대를 다녀온 것과 비슷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어느 단체에서 어느 사수로부터 어떤 일을 부여받았고 어떤 기회를 가지고 어떤 성과를 도출했는지 중요하지만, 필드의 경험 그 또한 어렵다면 단기간 출장의 화려한 접근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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