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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Apr 22. 2019

영화 <퍼스트 리폼드>

#사적인 영화38:  기도로도 다 하지 못한 진짜 이야기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폴 슈레이더 감독은 아주 오랫동안 영화 <퍼스트 리폼드(First Reformed)>를 구상해 왔다.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의 각본가이자 치밀한 스토리텔링으로 인정받아온 그는 올해 72세이다. 비평, 각본, 감독이라는 분야를 넘나들며 통찰력과 치밀함, 연출과 탁월한 묘사로 인정받아온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독특한 흔적을 남겼다. "나는 나 스스로의 룰을 깨부수기 위하여 또 다른 룰을 만들었다."라고 밝힌 슈레이더 감독은 이번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됐으며, 뉴욕타임스를 비롯하여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됐다. "위험하고 치명적인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에 걸맞게, 영화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에둘러하지 않는다. 에단 호크는 처음 각본을 읽고 마치 인물이 자신에게 으르렁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 말 그대로 이 영화는 관객을 정면으로 쏘아보며 또박또박 말을 거는 것 같다. 참회의 내적 독백으로 일관된 분노가 느껴지는 이 영화는 마음을 묘하게 어지럽히고 불편하게 만드는데, 그 연유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관광 명소나 다름없는 '퍼스트 리폼드' 교회의 목사 '톨러'(에단 호크)는 12개월 동안 손으로 직접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평소의 일상과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남기기로 한 톨러는 어느 날, '메리'(아만다 사이프러드)라는 여자가 찾아와 자신의 남편 '마이클'을 만나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환경운동으로 감옥에 나온 뒤로 우울증 증세를 보인 마이클은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데, 심지어 메리가 임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절망적인 세상에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한다. 그렇게 마이클과 개인 상담을 이어가던 중 톨러는 그의 끔찍한 자살 현장을 목도하게 되는데, 한편, 톨러는 '풍성한 삶'이라는 대형 교회와 퍼스트 리폼드의 250주년 재봉 헌식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후원 기업이 마이클이 조사한 환경오염 유발 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퍼스트 리폼드>은 4:3 화면 비율로 영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불필요한 내용은 가지치기하고 군더더기 없이 인물과 공간에만 집중한다. 톨러 목사의 방만 봐도 금욕적이며 자신에게 엄격한 면모를 드러낸다. 자신의 과오를 용서받기 위해 신 앞에 고개를 숙이지만, 정작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엄숙하고 경건한 일상 속에 그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술이다. 일기를 쓸 때도 항상 술을 마시는 그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 같다. 심지어 술에 빵을 적셔 먹을 정도인데 그럼에도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인생의 희망과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톨러 목사가 마이클과 공격적인 대화를 나눈 뒤, 간만의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환경오염과 생명과 구원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마이클의 자살 이후, 그가 남긴 자살 폭탄 조끼와 노트북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톨러 목사는 초점 없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에게는 새로운 소명, 어쩌면 그것이 구원이 될지, 죄악이 될지 알 수 없는 갈림길 앞에 선다. 나쁘거나 혹은 더 나쁘거나. 이것이 신의 뜻이라는 운명이라면 톨러 목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와 인내를 넘나들며 감정을 조절하는 톨러 목사는 신과 인류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마지막 사제 같다. 그리고 뱃속에 아이를 잉태한 메리가 그의 앞에 서있다. 그리하여 끝을 향해 격렬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은 묘하게 설득당한다. 끝까지 관객을 당황케 하는 불친절한 엔딩 크레디트는 영원한 미궁으로 빠져든다.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환상일까. 과연, 인류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전에 구원받을만한 존재일까. 그 불편한 대답조차 이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온전한 체험일지도 모른다. 





톨러 목사를 연기한 에단 호크는 대사 없이도 말을 거는 것 같다. 표정, 눈빛, 제스처, 움직임만으로도 감정과 생각을 표현해낸다. "그는 얼굴에서 수많은 인생의 교훈과 감정을 드러내며 따로 연기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라고 폴 슈레이더 감독은 처음부터 그가 이 역에 가장 적합하다는 확신을 갖고 각본을 썼다. (실제 에단 호크 또한 대본을 받자마자 24시간 이내 수락했다) 미간 사이로 깊은 주름을 새겨 넣은 에단 호크는 시종 절제된 연기를 통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비록 아카데미 남우 주연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확실히 그의 연기 행보는 흥미롭다. 그가 나오기만 해도 궁금해지는 건, 그만이 가진 분위기, 그가 선택한 영화라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에단 호크는 서서히 청춘 배우의 이미지를 깨고 자신만의 인장을 새겨 넣고 있다. 그의 농익은 퇴폐미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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