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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Apr 29. 2022

후안 엔리케스『무엇이 옳은가』

#27_정치적 올바름과 예민한 감수성이 경쟁력인 시대, 가장 핫한 질문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한 보통 시민이라면 보편적인 기준을 잣대로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손쉽게 이건 맞다, 저건 틀리다 구분 지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타인을 해석하고, 도덕적 규범에 합당하지 않으면 분노한다. 인종 차별, 종교, 성 정체성, 기후변화 등등 예전보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으나 우리 사회의 논쟁적인 이슈는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혼란을 가중한다. 과연 옳고 그름의 뚜렷한 기준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인문학적인 미래 학자 후안 엔리케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무엇이 옳은가"






후안 엔리케스는 가장 도발적인 이슈를 던지는 미래학자이다. 그는 기존의 미래학자가 언급하지 않은 부분, 즉, 과학 기술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인간'과 그들이 만들 미래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미래 기술이 만들어 낼 새로운 문명과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성'에 주목한다. “많은 과학자가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과학기술이 우리의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 구조를 변화시키는지 생각한다."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의 교수' 중 한 명인 그는 2009년 TED Talks에서 발표한 <우리의 후손은 다른 종이 될 것인가>로 화제를 모았고, 9회 강연을 진행하며 'TED가 가장 사랑하는 미래학자'로 꼽혔다. 근본적인 잠재의식을 뒤흔드는 질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후안 엔리케스는 생명과학, 경제, 사회, 철학 등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의 영역 곳곳에서 "인류의 새로운 지도"를 위한 미래의 단서를 찾고 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기준이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후안 엔리케스는 말한다. "기술은 윤리를 바꾸어놓는다. 그러니 오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옳고 그름의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술은 우리의 믿음을 바꿔놓고, 윤리의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다. 과거 만연했던 노예제도를 지금은 야만이라 비판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산업화의 발전으로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 가능해지면서 인종차별을 비판할 수 있게 됐다. 1968년까지 동성애를 '사이코패스적 인격장애'로 기술했으나, 현재는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이는, 여러 미디어 채널을 통해 정상 가족의 프레임 밖의 소수자와 그들의 다양한 모습이 대중들에게 보통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닌, 임신 시기와 출산 여부를 조절하고 임신 중지권과 비혼모의 임신 선택권으로 인식이 확대됐다.  즉, 시대에 따라 이동하는 옳고 그름의 역사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윤리적 기준이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43) 내 목적은 이런 복잡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윤리적이라 믿는 것이 기술의 영향을 받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당신이 깨닫게 하는 것이다.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스펙트럼상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는 보물의 ‘비용 병폐’ 이론을 바탕으로 기술 발전이 정체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곳은 비윤리적 행동이 용인되지만, 기술이 발전하여 부가 늘어나고 비용이 줄어들면, 그에 합당한 윤리적 기준도 변한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변화 속에서 윤리적 변동의 가능성은 높아지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대적 ‘옳음’도 역사 안에서는 ‘야만’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시대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변화를 예측할 수 있을까?




기계와의 섹스, 결혼까지 가능할까?


'섹스=생식(번식)=진화'라는 등식은 최근까지도 성립했지만 지금은 섹스를 하고도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가능해졌다. 궁극적으로 섹스는 출산으로 이어졌으나, 여성이 출산 여부와 임신 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술이 개발되면서 피임은 당연시되고 그에 따른 윤리와 법률도 바뀌었다. 피임이 보편화되고 여성의 권한이 커지자 가장 근본적인 가족 규범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체외 수정이 가능해지면서 신체적 접촉과 임신을 분리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쩌면 미래 세대들은 힘들게 몸으로 아이를 낳는 것을 끔찍하다고 여길 날이 올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도 여성 홀로 아기를 낳아 키우기로 결정한 방송인 사유리가 큰 화제에 올랐다)


(336) 끊임없이 학습하고 진화하는 기계를 인간이 갖게 되면 결국, 기계를 기반으로 하는 ‘윤리적’ 논리는 최초에 인간이 설정한 것과는 전혀 다른 논리를 나타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기계 인공지능의 윤리가 진화 과정에 서 인간과 독립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유전자 편집, 인공 자궁의 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되면 가족의 형태는 지금보다 더 세분화되고 쪼개지게 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만의 섹스로 제한할 이유가 있는지 물을 것이다. 친밀성이라는 영역이 과연 인간만의 영역일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의 출현이 상상으로만 그칠까. 성매매 돌처럼 로봇 성매매도 가능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가리켜 부도덕하고 치부하고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실 '디지털 감옥'을 원한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스마프폰 화면을 밀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누를 때마다, 물건을 사고 게시물을 올리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관리할 때마다, 우리는 한층 더 정교하고 영원히 남는 프로필을 디지털 상에 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204) 모든 사람은 우리가 하는 친밀한 행동, 우리가 표하는 욕망, 그리고 우리가 누르는 '좋아요'와 '싫어요'를 거의 항상 지켜볼 수 있다. (...) 우리는 도망칠 수 있을지언정 더 이상 숨을 수는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애니 만들기>의 애니를 역추적하는 장치가 바로 인스타그램이다. 그녀가 그날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고 심지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인스타그램의 사진으로 유추해낸다. 애니가 장소와 사람을 태그 하면, 제삼자는 너무나 손쉽게 타인의 세상을 엿볼 수 있게 된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또 어떤가. 온라인 마케터인 에밀리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매사를 분 단위로 자신과 제품을 한 몸처럼 찍어서 올린다. 사람들은 열광하며 '좋아요'를 누르고, 방문자수와 팔로우 수를 통해 자신의 인기를 점검한다. 그게 바로 그녀의 업무라 하지만,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까지가 일상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자발적으로 디지털 감옥에 갇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이러한 전자 문신은 내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SNS 뿐만 아니라 수많은 앱을 이용하면 사람들 추적이 가능하며, 당신이 대해, 당신의 취향과 생활 패턴에 대하여 엄청나게 많은 사실을 학습할 수 있게 해 준다.


(210) 앤디 워홀은 "미래엔 누구나 15분 동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만일 그의 말이 틀렸다면? 즉 모든 사람의 프로필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분석해서 영구적으로 공개하는 세상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책은 복잡한 시대에 당신만의 무기가 될 것이다.”
故 이어령(교수, 전 문화부 장관)



이 세상에 영원한 옮음이란 없다. 오히려 어떻게 옮고 그름의 문제를 다뤄야 할지 숙고해야 한다. 과학 기술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그에 따른 윤리적 딜레마는 우리를 혼란에 빠트릴 것이다. 현대 사회는 온갖 윤리적 딜레마로 가득하다. 후안 엔리케스는 논의된 적 없던 낯선 질문을 좌파 아니면 우파라는 기준으로, 또 세대와 세대, 인종과 인종, 종교와 종교라는 이분법적 판단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윤리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현대는 정치적 올바름과 그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경쟁력인 시대이다. 페미니즘과 성 소수자, 가난과 계급 등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가 복잡하고 치열해질수록 생각하고 이해하는 힘은 필수이다. 후안 엔리케스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절대적 정답’이 아닌 ‘열린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한다. 그리고 흔들리는 옳고 그름 사이에서 우리만의 무기를 찾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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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의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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