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애플은 세상을 바꾸는 기업이었다. 아이팟은 음악 소비 방식을 뒤흔들었고, 아이폰은 스마트폰이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정의했다. 애플은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넘어, 기술과 디자인, 사용자 경험을 융합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내는 존재였다. 이러한 애플의 행보는 흔히 ‘메타창조(meta-creation)’라고 불려 왔다.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태계와 문화, 경험까지 만들어내는 고차원의 창조였다. 하지만 이제는 의문이 든다. 애플은 여전히 그 메타창조의 최전선에 있는가?
창조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최근의 애플은 예측 가능하다. 신제품 발표는 ‘놀라움’이 아닌 ‘루틴’이 되었고, 변화는 혁신이 아니라 정밀한 반복이다. 아이폰은 매년 카메라 성능이 소폭 향상되고, 맥북은 칩 성능이 조금 더 빨라진다. 물론 모든 변화가 큰 도약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새로운 ‘서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애플은 기술을 통해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휴대폰이 전화기만을 의미할 필요가 있을까?" "터치스크린이라는 방식은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의 애플은 기존 질문에 더 나은 답을 내는 데 그친다. 새로운 질문은 더 이상 없다.
애플의 생태계는 강력하다.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폐쇄적이다. 사용자는 앱 하나 설치하는 것도 애플이 정한 규칙 안에서만 가능하고, 개발자는 수익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애플에 제공해야 한다. 최근 유럽연합(EU)의 규제로 인해 외부 앱마켓과 사이드로딩이 일부 허용되긴 했지만, 여전히 애플은 ‘창조의 자유’보다 ‘수익의 통제’를 우선시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통제 중심의 전략은 과거엔 생태계 일관성과 보안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오늘날에는 혁신의 유연성을 스스로 제한하는 족쇄가 되어가고 있다.
현재의 애플은 어느새 ‘기술 브랜드’에서 ‘럭셔리 브랜드’로 이동 중이다. 브랜드의 가치보다, 그것이 애플 제품이기 때문에 소비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 광고는 브랜드 철학과 가치 중심의 서사적 카피를 구사했고, 그 이후의 애플 광고는 점차 제품의 기능과 성능 중심으로 옮겨갔다. 애플이 한때 “왜 우리는 존재하는가?”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이 제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포커스를 옮겼다는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실제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혁신은 없지만, 그냥 애플이니까”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브랜드가 신뢰의 근거가 되는 것은 좋지만, 제품이 브랜드 가치를 가리는 순간, 창조적 동력은 정체된다.
한편 기술 세계의 패러다임은 급변 중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오픈소스 생태계, 모듈화 된 하드웨어 설계, 구글, 오픈 AI, 그리고 수많은 스타트업이 ‘기술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애플은 이 변화에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머물고 있다. 자사의 폐쇄적 생태계 안에서 철저히 통제된 방식으로 ‘관리된 혁신’을 이어갈 뿐이다.
애플의 ‘메타창조’는 정말 끝난 걸까? 아니면 애플이 새로운 전략적 위치로 전환한 것일까? 어쩌면 지금의 애플은 더 이상 ‘세상을 바꾸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세상을 정교하게 다듬는 관리자일지도 모른다.
이는 나쁜 변화만은 아닐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애플이 더 이상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기술과 창조를 향한 우리의 기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연 새로운 창조를 원하는가?, 아니면 예측 가능한 안락함을 원하는가? 그 질문이야말로 애플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한 CEO가 아니었다. 그는 기술이라는 악보 위에 디자인과 철학, 인간의 감성을 얹어 세상을 울리는 교향곡을 지휘한 메타창조의 지휘자였다. 그에게 제품은 기능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였다.
아이폰은 휴대폰을 다시 정의했고, 아이패드는 책상을 재구성했으며, 맥은 창작자의 도구가 되었다. 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콘텐츠와 유통, 철학과 경험 이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엮어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해 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보여주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그의 말처럼, 잡스는 늘 한 발 앞에서 미래를 선보인 사람이었다.
그가 떠난 뒤에도 애플은 남아 있지만, 애플이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 ‘창조의 리듬’은 잦아들고 있다. 창조의 절대자 즉, 지휘자의 부재는 창조의 불협화음을 낳는다. 애플이 그리는 미래는 훌륭한 연주가들과 절대적 권위자의 지휘 아래서 만들어졌다.
현재 애플은 서로 지휘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는 다수의 경영진에서 의해 만들어진다. 다수의 지휘는 불협화음을 만든다. 메타창조의 지휘자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 사람이었다.
메타창조(Meta-Creation)
메타창조는 단순한 ‘창조’를 넘어서, 창조의 방식 자체를 재정의하고, 새로운 질서·문법·경험·생태계를 창출하는 상위 차원의 창조 행위를 말한다. 즉,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제품을 통해 세상의 작동 방식이나 인간의 행동 패턴, 산업 구조까지 바꾸는 창조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