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결국 ‘이해하는 일’이다.
디자인은 결국 ‘이해하는 일’이다. 사람이 왜 멈추고,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감정에서 결정을 내리는지를 읽어내는 일. 눈에 보이지 않는 맥락을 감각으로 번역하는 순간, 디자이너의 작업은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좋은 디자인이란 결국 이해력의 깊이에서 시작된다.
이해력은 단순한 정보의 해석이 아니다. 그것은 공감의 지능, 혹은 맥락의 감각에 가깝다. 사람들은 논리로 설득되지만 감정으로 움직인다. 디자이너는 그 감정의 표면을 읽어내고, 그 이면의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왜 어떤 제품의 곡선은 따뜻하게 느껴지고, 왜 어떤 타이포그래피는 차갑게 느껴지는가? 그 미묘한 감각의 차이는 결국 인간의 경험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지금, 디자인의 언어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AI가 등장하면서 표현의 속도와 범위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머릿속의 이미지를 꺼내기 위해 수십 번의 드로잉과 시안을 거쳐야 했다. 이제는 한 줄의 프롬프트만으로 수백 장의 결과가 즉시 눈앞에 펼쳐진다. 그 속도는 마치 생각이 현실로 번역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드저니’, ‘피그마 AI’와 같은 도구들은 디자이너의 작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과거의 디자이너가 손으로 ‘만들던’ 존재였다면, 이제는 언어로 ‘지휘하는’ 존재가 되었다. “Make it minimal but warm.” — 단 한 문장으로 수많은 조형적 변주를 탐색할 수 있는 시대다. 표현력은 손끝이 아니라 문장과 맥락의 조합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 변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이해력은 더 중요해졌다. AI는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어떤 이미지를 선택할지, 어떤 색을 남길지, 어떤 결을 사람에게 보여줄지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해력이 없는 표현은 표면만 화려한 노이즈에 불과하다.
그래서 요즘의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건 ‘도구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도구를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능력’이다. AI를 잘 쓰는 디자이너와 그렇지 않은 디자이너의 차이는 결국 이해의 깊이에서 갈린다. 도구를 믿지 말고, 맥락을 믿어야 한다.
이해력은 사람을 향하고, 표현력은 기술을 향한다.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시작된다. 예를 들어, 브랜드 디자인에서는 더 이상 ‘시각적 일관성(visual consistency)’만이 핵심이 아니다. 이제는 ‘감정적 일관성(emotional consistency)’이 중요해졌다. AI가 자동으로 생성하는 수많은 결과물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일관되게 움직이는 언어를 찾는 일이 디자이너의 과제가 되었다.
AI가 디자인의 ‘표현력’을 맡고 있다면, 인간은 디자인의 ‘의미’를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로고이든, 패키지이든, 공간이든 결국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의 방향은 사람만이 조율할 수 있다. Maass의 연구(2007)에 따르면 사람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전진·진보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후퇴·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 시각적 방향성이 행동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했다. 모든 로고를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진보와 미래를 표현하는 로고는 대체로 완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의 방향을 유도한다.
또한 Boroditsky(2001)는 언어의 구조, 특히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는 방향적 은유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여주며, 언어가 사고를 형성한다(linguistic relativity, 언어 상대성)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증명했다. 사람마다 쓰는 언어의 방향과 구조가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로, 예를 들어 영어권 문화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기 때문에, 시간·움직임·진행을 왼쪽에서 오른쪽방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예: 과거는 왼쪽, 미래는 오른쪽)
반면 아랍 문화권에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기 때문에, 시간과 진행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예: 과거는 오른쪽, 미래는 왼쪽) 즉, 읽는 방향이 곧 사고의 공간적 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같은 이미지라도 영어권 사람은 ‘전진’으로, 아랍어권 사람은 ‘후퇴’로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로 대부분 UI 디자인에서 시스템 로딩바는 로딩에 단계에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각적 진행방향을 표현하여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을 인식하게 한다.
이제 디자이너의 경쟁력은 ‘얼마나 잘 그리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가’에 있다. AI가 표현을 대신해주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더 인간적인 관찰과 공감을 배워야 한다. 어떤 장면에서 사람의 시선이 멈추는지, 어떤 목소리의 높낮이가 신뢰를 주는지, 어떤 색의 온도가 기억을 자극하는지를. 이해력은 결국 관찰에서 태어나고, 표현력은 그 이해를 세상과 공유하는 과정이다.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이해력과 표현력, 그 두 축을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AI는 도구지만, 그 도구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더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가 된다. 이해력으로 사람을 읽고, 표현력으로 세상을 설득하는 일. 그 사이의 긴장감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크리에이티브를 정의한다.
디자인의 본질은 여전히 같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그 이해를 더 아름답게 표현하는 일. 다만, 이제 그 표현의 언어가 바뀌었을 뿐이다. 디자이너는 다시 인간을 공부해야 하고, 동시에 AI를 통해 인간을 다시 표현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디자인’은 인간의 이해와 기계의 표현이 함께 만든 가장 인간적인 결과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