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살면 행복할까?
욕망을 따르는 게 자유일까?
우리는 자유를 갈망한다. 자유의 원동력은 한계효용 체감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그런 끝없는 욕망은 인간이 자아를 믿기 때문에 생긴듯하다. 자아라는 절대 다다를 수 없는 것을 인간은 너무 당연하게 믿기 때문에. 그것이 허구이고, 내 안에 자아가 실제로는 없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찾아 끊임없이 나아가리라.
많은 사람들이 자유는 무조건 좋기만 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자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불행해진다. 자유롭게 욕망을 추구하고 사는 삶이 행복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지만, 실상은 한계효용 체감 때문에 그런 삶의 행복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닿을 수 없는 자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인간은 지속적으로 발전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발전에는 setting이 필요하다. 이런 setting에는 평가의 기준과 게임의 법칙이 필요한데, 이는 욕망 추구를 제한하고, 희생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들어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들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기준을 벗어난다고 해서 기준이 필요 없어지는 건 아니다. 새로운 기준으로 갈아타고 그에 맞게 게임을 다시 시작할 뿐이다. 물론 그 새로운 기준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만족을 줄지는 그 게임에 실제로 깊이 참여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기하고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게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새로운 setting을 받아들이고 더 행복해지는 사람들도 많다. 새로운 직업을 갖고 더 행복해지는 사람들처럼. 가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사회적 동물이어서 서로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실제로 법적인 가정이 없더라고 가족 같은 사람이 우리 (거의) 모두에게 필요한데, 이런 관계를 맺는 방식은 그 setting의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참여자들이 setting에 관한 합의에 이르기도 어렵고 깊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역시 욕망을 크게 제한해야만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즉 욕망을 추구하고 희생하지 않는 것이 자유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 가정이 유지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오감을 조작하는 게 쉬워지면 가정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특히 남자에게는. 부성애는 모성애보다 약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실은, 인간은 자아를 믿고 이로 인해 끊임없이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할 수밖에 없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욕망의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사실 욕망을 따르는 것은 자유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욕망으로 부터 벗어나 지독히 무거운 책임을 지는것이 자유에 훨씬 가까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