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본질을 찾고, 본질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 RAWROW
‘브랜드&라이프’의 첫 번째 인터뷰. 우리 프로젝트의 '첫' 인터뷰이를 어느 분으로 섭외할지 많이 고민했다.
'처음'이라는 것에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바, 주제를 잘 알려줄 수 있으면서도 인터뷰를 읽는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주인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명의 후보를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선정한 인터뷰이는 바로 생활 잡화 브랜드 ‘로우로우(www.rawrow.com)’의 이의현 대표. 인터뷰 대상으로 이의현 대표를 결정하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요즘 다양한 미디어의 관심을 많이 받는 브랜드라 어떻게 하면 차별화할지가 고민이었다.
무더운 7월 어느 날. 현재의 R Center로 이사하기 전 홍대 로우로우 매장에서 인터뷰는 진행되었다. “사전에 보내준 인터뷰 질문이 만만치 않았고, 그 덕분에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시작한 인터뷰. 함께한 그 시간도, 헤어진 그 이후 시간도 참 소중했다.
※ 본 인터뷰는 2016년 7월에 진행되었습니다.
+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인터뷰라 호흡이 꽤나 길어졌지만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편집을 최대한 배제하고 두 번에 걸쳐 인터뷰를 게재하고자 한다.
1. 로우로우(RAWROW)라는 브랜드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가방, 신발 등 제품을 개발하고 만들어서 시장에 파는 생활잡화 브랜드입니다. 로우로우(RAWROW)에서 앞의 로우(Raw)는 ‘날 것(生)’을, 뒤의 로우(Row)는 ‘열’을 의미하여, 직역하면 ‘본질의 반복’이라는 뜻입니다. 오로지 ‘본질(essence)’만을 생각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2. 많은 분들이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만, 그것을 실제 브랜드에 담아내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본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담은 로우로우라는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 일이 하고 싶었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운이 좋게도 근무했던 회사들에서 했던 일들이 창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타이밍에, 좋은 직장에서 많이 배우고 제 일을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공자가 말하길 서른 살에 이립(而立)을 한다고, 저도 서른 살에 뜻을 세워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어릴 때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돈도 많이 벌고, 초고속 승진하고, 최연소 타이틀을 다는 그런 것들이 막연한 제 꿈이었습니다. ‘빨리 저 자리까지 올라가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제 브랜드를 미리 만들어보곤 했습니다. ‘Simple, Normal’ 같은 키워드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디자이너인 브라운(BRAUN)의 디터람스(Dieter Rams)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누군가 디자인을 정의하기를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시각적인 언어로 변형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반대로 디자인을 보고 ‘내가 좋아했던 게 이거구나’, ‘내가 원했던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각적인 언어로 구현된 디자인을 보고 생각하며 느낀 것들이 제 머릿속에 가치관으로 자리 잡은 거죠. 디터 람스의 디자인 10 계명을 보면 디자인은 정직해야 한다, 디자인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걸 보면서 꼭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람도 정직해야 하고, 지속 가능해야 하며, 최소한만큼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인생관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죠.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변화하는 패션 업계에서 일을 할 때는 오히려 좋은 디자인에 대한 기준이 없었던 것 같아요. 소위 유럽에서 핫(Hot) 한 것, 유행하는 것 – 예를 들어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브랜드가 유행하다가, 빅 프린트(Big Print)가 뜨고 – 이 좋은 것인 줄 알았고, 그 기준이라는 것에 대한 변별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러한 시기를 지나면서 고민하다 보니 좋은 디자인에 대해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raw, simple, normal, essential, wild’ 등의 키워드들이 머릿속을 떠다녔고, 그중에서도 ‘raw’라는 단어가 너무 좋아서 이걸 가지고 계속 파보자라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문득 ‘rawrow’라는 이름이 제 머릿속을 스쳤고,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해 보니 홈페이지, 도메인, SNS, 상표권 모두 등록이 가능하길래 2시간 만에 제 상표로 등록해 버렸습니다. 그때 ‘아, 이거다. 이제 시작해야지’ 하면서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고, 여기까지 왔네요.
3. 로우로우를 시작하신지도 벌써 4년이 되어서 많은 것들이 안정되었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었던 초창기 가 많이 궁금해요. 처음에 로우로우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난 이후에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처음에는 사실 브랜드 론칭이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동생이랑 처음 가방 하나 만든 거예요. 가장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 동생에게 제 계획을 이야기하고 제안해서 시작했죠. 그동안 사용했던 가방들의 불편한 점을 모아 개선점을 제품에 많이 반영하면서, 말 그대로 가방의 본질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가방을 왜 메는지 스스로 'Why'에 대해서 많이 물어봤는데, 가방의 역할은 결국 '들고, 담고, 보호하고'인 것 같아요. 그래서 들기 편하게, 담기 편하게, 보호하기 좋게 개발했죠. 개발하는데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샘플만 8번 만들고, 있는 돈 없는 돈 털어서 300개 만들었죠. 홈페이지도, 룩 북(Look Book)도 없었고, 그냥 브랜드 택(tag)만 달린 가방 만들어서 처음으로 플리마켓에 나갔어요.
궁금했어요. 평균 객단가가 천 원 단위인 플리마켓에서 과연 가격이 10만 원이 넘는 가방이 팔릴까, 단순하게 말하면 듣보잡 브랜드 제품을 사람들이 그 돈을 주고 살까, 의구심을 가지고 플리마켓에 갔죠. 결과는 완판이었어요. 열댓 개 정도였지만 그날 가져간 제품은 다 팔고 왔었어요. 많은 분들이 그동안 찾던 가방이라고 해주시면서, 그렇게 시장에서의 첫 테스트에 통과했어요.
4. 대부분의 유명 편집샵에서는 로우로우 제품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통 채널은 어떻게 확장하셨나요?
플리마켓 이후 어느 한 편집샵에 입점했어요. 제품이 많지 않아서 진열장에 색깔별로 올려놨었는데, 입점한 그 첫 달에 입점해있던 150개 정도의 전체 브랜드 중 1등을 한 거예요. 디자인 1종류에 색깔도 5종류뿐이었는데 1등을 했어요. 그 후부터 입점하고 싶었던 편집샵에서 하나하나 연락이 오더라고요.
사무실도 포토그래퍼 친구의 스튜디오에 있는 모델들이 옷 갈아입는 옷방에서 책상 하나 두고, 뒤에 가방 쌓아놓고 시작했는데 8개월 만에 지금의 사무실을 얻을 돈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사무실 얻고, 당시 근무하던 회사를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5. 당연히 매출이 좋아서도 있겠지만, 편집샵에서는 왜 그렇게 로우로우 제품을 좋아해 주셨을까요?
로우로우만의 접근법을 좋아해 주셨던 것 같아요. 판매를 직접 담당하는 직원분들이 구매 시점에 고객들을 상대로 제품에 대해 설명해드리고 권해드릴 수 있다 보니, 그분들이 제품의 가치나 배경에 대해 잘 아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론칭 이후 오랫동안 제품을 택배로 보내지 않고 직접 배달해 드렸어요. 판매하시는 분들께 커피나 도넛 사들고 가서 반응이 어떤지 여쭤보기도 하고, 제품의 장점에 대해 알려드리기도 했어요. 그 당시 포장 박스도 없이 봉투에 넣어서 동생이 직접 홍대, 가로수길, 명동 등의 편집샵을 돌아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죠.
직원분들도 고객들에게 제품에 대해 설명해드리고 권유해주셨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반응이 좋으니 편집샵에서 많이 밀어주셨어요. 저희가 매번 직접 들고 가니까 예쁘게 잘 봐주신 것 같아요. 결국 저희가 하는 일은 장사거든요. 이것이 본질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밭에서 직접 캔 감자 하나를 시장에서 판다는 마음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거창하게 브랜드를 론칭한다기보다는 장사하는 마음,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마음, 물건을 쓰는 마음. 피곤한 몸 이끌고 아르바이트하러 왔는데 누군가 맛있는 도넛 사 와서 말 걸어 주는 배려하는 마음.. 본질이 뭘까를 자연스럽게 고민하는 거죠.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감사하게도 지난 1~2년 사이에 훌쩍 성장한 것 같아요.
5. 오랜 고민과 빠른 실행으로 만든 브랜드라 그런지 더욱 직관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브랜드인 것 같아요. 진부한 질문이지만 대표님이 좋아하는 브랜드, 혹은 로우로우가 닮았으면 하는 브랜드가 있으신지요?
개인적으로 무인양품과 파타고니아를 좋아해요. 물론 이들 브랜드는 대부분의 브랜드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좋아하시죠.
로우로우가 어떤 브랜드를 닮았으면 하기보다는, 'raw'라는 아이덴티티에 많이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콜럼버스의 정신을 많이 생각하려고 해요. 레퍼런스를 찾고 쫓아가는 것들에 대해 회의감이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그런 태도를 견지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기도 하고요. 저기로 가면 낭떠러지 일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망망대해에 북극성만 보고 쫓아가는 거죠. 지도도 없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지만 스스로 개척하고 추진해 나가는 자세로 임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어떤 물건을 처음 만든 사람의 생각과 태도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고 고민해봐요. 예를 들어 지게라는 물건을 누군가 만들었을 때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만들었을지에 대해 상상해 보거든요. 처음에는 짐이 있으면 머리에 이고, 혹은 품에 안고 다녔겠죠. 이러한 방식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니까 지게를 만들었을 텐데 특별한 레퍼런스 없이 무엇인가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거기엔 엄청난 힘이 있었을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raw라는 단어가 더 좋았고, 로우로우도 그런 힘을 가진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6. 우리나라 브랜드 중에서 눈여겨보는 브랜드도 있으신가요?
최근에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왜 모든 미의 기준과 우월함의 기준이 왜 다 서양에 있을까. 왜 우리는 (특히 패션 분야에서) 브리티쉬 룩과 미국의 어반 감성, 모던함을 좇아야 하는가. 우리는 실제 거기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경험도 못해 봤는데.. 물론 ‘모두 한복을 입자거나 한국 전통에 집착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의 것'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잘 브랜딩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브랜드로는 아모레퍼시픽의 '오설록'을 좋아합니다. 오설록은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인 것 같아요. 유럽의 카페 문화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중국의 차 문화도 아닌 한국 고유의 차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아모레퍼시픽이 참 잘 하는 기업이자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것을 유지하고 쌓아 올리면서 꾸준하게 지속해 나가는 것을 잘하죠.
우리나라 동대문 쇼핑몰들도 참 잘해요. 유니클로, 자라와 같은 SPA 브랜드와는 완전히 다르고 특별한 레퍼런스 없이 독자적인 장르를 개척했다고 생각해요. 해외 쇼핑몰 사이트는 대부분 옷의 앞면, 옆면, 뒷면 사진 찍으면 끝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쇼핑몰들은 스토리텔링 형태의 상세 페이지로 소비심리를 자극하죠. 사람들이 좋아하고 동경하는 상황들을 연출하고, 그러한 심리를 반영하여 특정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만들어요. 이 역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이라고 봐요. 저는 우리나라 쇼핑몰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브랜드는 자신의 관점으로 새롭게 보는 것, 나만의 영역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7. 로우로우는 제품 자체 브랜딩도 너무 잘 되어있어요. 실제 제품 개발할 때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이론적으로 브랜드 콘셉트를 기반으로 한 제품을 디자인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이야기는 쉽게 하지만 실제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부분인 것 같아서요.
로우로우에서는 디자인을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저희의 디자인 언어로 정의하고 있어요. 더불어 회사의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 중 하나가 '실사구시'인데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디자인을,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가끔씩 저희 내부적으로도 고급 라인 가방을 만들어보자, 소재를 가죽으로 해서 좀 있어 보이게 만들고, 로우로우 골드/블랙 프리미엄으로 판매해보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해요. 물론 이런 프리미엄 브랜드 해보는 것도 좋죠. 그런데 보통 우리가 사는 가방들은 그렇게 비싸지 않거든요. 그런 의견들이 나올 때면 저희는 '우리는 그런 가방들을 사나? 우리도 안 사본 걸 왜 팔려고 해? 나도 안 해본 걸 남한테 시키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예전에 저희 디자이너가 본인은 학교 다닐 때부터 우러러봤던 디자이너들처럼 1,000만원짜리 의자를 디자인해보는 것이 꿈이라고 한 적이 있어요. 막상 본인은 집에서 이케아 의자를 쓰는데, 이케아는 한 때 쓰는 것이고 별로 좋아하는 브랜드는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샀냐고 물으니 '싸니까요'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물건을 구매할 때 수많은 조건을 고려하고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꼭 럭셔리, 하이엔드, 고급.. 이런 것만이 중요한 ‘가치’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싸다는 것'만큼 좋은 가치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오천 원에 맛있는 밥 한 그릇 먹으면, 만원 주고 먹은 것보다 그 기쁨이 커요. 밥 하나 먹어도 그런데 수많은 가치 중에서 합리적인 가격, 즉 가성비가 구매 결정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정리하자면 저희는 제품을 디자인할 때 '나는 이런 가방을 들어 봤고, 그런 가방을 주로 샀고. 근데 이런 점이 불편했어, 이런 게 고쳐졌으면 좋겠어'와 같은 본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우선 논의해요.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탈 때 가방에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어 등 실질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회의를 하고 제품 기획을 하는 거죠.
(이후 Part 2로 이어집니다)
Interviewer. 우승우, 윤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