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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호 May 21. 2019

나는 죽음의 계곡을 지나고 있는 대표입니다 (2)협업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드라마 '미생' 포스터

 프로 바둑기사의 꿈을 접고 낙하산으로 회사에 입사한 인턴사원 장그래. 일당백으로 일을 처리하던 오과장과 김대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턴사원을 가르칠 겨를이 없다. 김대리는 "할 줄 아는 일이 없으니 이거나 해보라"며 파일과 폴더 정리를 맡긴다.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장그래는 밤새 폴더를 정리해서 김대리에게 내민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 회사의 업무관리 프로세스를 마음대로 바꾸면 안된다는 질책. 회사 생활을 시작한 장그래가 배운 첫 교훈.


드라마 '미생' 2화 캡쳐화면


"혼자 하는일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독학으로 시작한 내가 스타트업의 경영자가 되어 배운 가장 큰 메세지이다.




 그냥 문서파일만 가지고 책 몇 권보고 따라하면  뚝딱 아이폰 앱이 나오는줄 알고 독학을 시작했던 2011년 가을, 공중보건의 1년차 시절. 남은 2년의 공중보건의 시간 동안 끊임없는 자료정리 노가다를 하며 보낼줄 알았다면 아마 시작하지 않았겠지. 타임머신이 있다면 8년 전의 나에게 돌아가서 "야! 하지마!! 하지말라고!!!"라고 수 백 번 외치고 싶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2016년 1월. 당시 한의대생이었던 이동제 부대표가 닥터스랩에 합류하기 전까지 4년 여의 시간 동안 기획, 디자인, DB구성, 앱 개발까지 모든 일을 혼자 했다. 수익화에 대한 확신 없이 인력과 비용을 투입할 수 없었고, 모든 공을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아이폰을 처음 세상에 선보이던 스티브 잡스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그 어떤 타협도 거부했던 스티브 잡스가 내 롤모델이었지만, 지금은 '타협과 조율'이 나의 주 업무이다.




 작년에 우연히 발견한 이 글을 읽고나서 경영자로서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게되었다. '차고 창업' 신화의 주인공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뿐만 아니라 유니콘기업(시가총액 1조이상의 기업)을 만든 많은 창업자들이 창업 전에 회사생활을 경험해봤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경영자가 되기 전에 회사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없다. 보건소와 한의원,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나름의 사회생활을 해봤지만, 진료와 보조업무가 명확히 나뉘어져있는 의료기관의 경험은 회사 생활과는 완전 달랐다. 부대표였던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회사생활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던 대표님과 함께 많은 갈등을 겪었고, 대표님이 회사를 떠날 때까지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았다. 혼자 회사를 경영하게 되어보니, 협업을 잘 못하는 대표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자리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우리 회사는 초기 대표, 부대표(나)를 포함하여 3명의 직원과 함께 총 5명으로 시작했다. 구인공고에 지원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신기했던 시절. 면접을 볼 때 '도대체 우리 회사를 어떻게 알고 지원했나' 물어보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데뷔 초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트와이스

 그랬던 회사가 어느새 나를 포함해 17명의 멤버가 함께 일하고 있다. 2년 반 만에 외형은 급속도로 커졌지만 회사의 매출도, 회사의 프로세스도 그 외형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대표인 나의 성장이 더뎠던 점이 가장 큰 문제였을거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압박감과 책임감, 스트레스로 '이게 우울증이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3년 전, 아니 불과 작년 가을의 나를 돌아보면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닌가 싶다. 

 몇 번 씩이나 울면서 못해먹겠다고 투정부리던 나를 달래면서, "원금 회수는 바라지도 않고, 돈만 더 안들어가면 좋겠다"며 매달 수 천 만원씩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우리 오너님의 존버정신에 매일 감사하다.

이미지 출처 미상

 두 달 동안 완성하지 못했던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근을 자청해가며 일하며 배달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떼운 우리 직원들 때문이다. 나야 한의사니까 그렇다쳐도, 평생 한번 가본 적도 없는 한의원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갈 우리 직원들을 생각하면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잘해야지... 라고 말하는 좋은 대표 코스프레하는 무능한 대표였습니다


다음편은 '스타트업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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