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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호 Jun 22. 2019

나는 죽음의 계곡을 지나고 있는 대표입니다 (3)함께

 얼마 전에 영화 '기생충'을 보고 관련 글들을 찾아보다가 아래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아마도 촬영 마지막날 감독과 배우, 스텝들이 모두 모여 찍은 사진인 것 같다.

영화 '기생충'의 감독, 배우, 스탭들 단체사진 (출처 미상)

 봉준호 감독과 조여정 배우가 같은 줄에 있는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얼굴 크기 차이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원근법을 무시하는 봉준호 감독. (이미지 출처 : 스타데일리뉴스)


 그 다음 보이는 것은 언뜻봐도 7~80명은 될 듯한 많은 스탭들의 밝은 표정. 몇 달 동안 동고동락 하면서 위대한 여정을 끝냈다는 후련함이 한 명, 한 명의 표정에서 느껴진다. 개봉한 영화를 가족과 함께 보러 가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저기 봐봐. 저기 내 이름이야~'라고 애써 말해주지 않으면 찾지 못할, 영화 화면에는 나오지 않는 수 많은 스탭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이미지 출처 : 뉴욕타임즈)

 그 스탭들은 봉준호 감독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고생은 함께 했는데 모든 영광은 감독 혼자 차지한다고 서운했을까, 아니면 위대한 작품에 '함께'해서 영광이었다며 눈시울이 붉어졌을까. 그 답은 저 한장의 사진에 담긴 스탭들의 표정이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 회사에서는 '한의학', '한의사'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처음에 5명의 구성원으로 시작하여 지금 18명이 될 때까지 정작 한의사는 나 뿐이다. 드라마 '허준'을 보고 한의학에 푹 빠져서 결국 한의사가 된 나는 한의학을 사랑하고, 한의학이 더 발전하면서 대중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시작했고, 벌써 5년 째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지금은 고생하고 있지만, 사업이 성공했을 때 얻을 부와 명예 또한 나에게 많이 집중될 것이다. 이것은 알게 모르게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아마 다른 스타트업의 대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TV '무한도전' 화면 캡쳐


 하지만 나를 제외한 우리 회사 직원들은 어떨까. 변덕 심하고, 성질은 급한데, 돈은 못버는 대표 만나서 스트레스 받으며 고생하다가, 회사가 잘 되면 대표가 잘나서 잘된 것 마냥 여기저기 다니면서 인터뷰하고, 멘토링하러 다니고, 돈 펑펑 쓰고 다닐걸 생각하면 억울하고, 일하기 싫어서 월급루팡이 되고 싶진 않을까?

 쿠팡, 배달의민족, 마켓컬리같은 B2C 회사는 적어도 본인과 가족이 매일 쓰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텐데, 소규모 집단인 '한의사'를 대상으로 B2B 서비스를 하는 우리같은 회사의 직원들은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고, 성취감을 느낄까. 더군다나 회사의 초기에 고생하다 퇴사한 직원들은 우리 회사에서 일하며 어떤 것을 얻고, 배워갔을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무슨 생각을 할까.

스타트업 대표가 절대 들어가면 안되는 사이트 - 잡플래닛, 블라인드 (이미지 출처 : '잡플래닛' 홈페이지)

 스타트업은 보통 최고경영책임자(CEO)만 있거나,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서비스책임자(CS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등 다양한 C-leve Officer와 함께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되기도 한다. 우리 회사는 CEO(대표), COO(부대표, 나) 체제로 시작해서, 공동대표 체제로 CEO와 COO의 역할이 바뀌었다가, 작년 5월부터는 내가 CEO로 단독으로 경영을 맡고 있다. 그 사이에 내가 주로 맡았던 업무도 서비스 기획, 직원관리, 홍보, 영업, 협업제안 등 다양한 범위 안에서 크고 작게 바뀌어 왔다.


 혼자 경영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매일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식으로 그때 그때 닥친 일들을 처리하고, 수습하기에도 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려 집중하다보면 내부에서 문제가, 내부의 문제에 신경쓰다보면 외부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식이었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수 십 통의 전화와 메세지를 주으며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저녁이 되고, 저녁에는 네트워킹과 영업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서 진탕 술을 마시고 뻗어서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바쁜것도 병이다. (이미지 출처 : 조선일보 기사)


 그렇게 하루 하루를 그저 '버텨'오다가 회사의 설립 3주년이 다가오는 요즘, 회사 핵심인재라고 할 수 있는 개발팀장 김성구님에게 쓴소리와 함께 여러 의견을 들었다. 그러면서 "열심히 하고 있다", "고생하고 있다", "힘들다"는 자기연민에 빠져서 내가 회사를 위해 꼭 해야 할 역할을 외면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스스로도 확신 없이 흔들리면서 열심히 하는 직원들의 의욕을 꺾고 있던 것은 아닌지, "열심히 하다보면 잘 될거야"라는 나태한 생각에 빠져 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있다.




 지난번 글에도 썼듯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표가 해야할 가장 큰 역할은 혼자 열심히 일할 것이 아니라, ‘회사의 모든 구성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그를 통해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

 

 봉준호 감독이 저 많은 스탭들과 '함께'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듯이, 일런 머스크가 수 천 명의 직원들과 '함께' 우주로 쏘아올린 로켓을 다시 불러들이듯이, 모두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Space X의 재착륙 성공을 지켜보며 기뻐하는 직원들 (이미지 출처 : space X 유튜브 캡쳐)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이 회사에 머물면서, 직원들과 '함께' 위대한 일을 만들어보자는 화이팅을 하고, 고충을 듣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모든 직원이 함께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오늘도 고생하고 있을 모든 스타트업의 대표님들, 직원분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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