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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상호 Nov 11. 2021

상처치료 한의원에서 일한지 1년이 되었습니다

벌써 1년, 일상속에서 꾸는 꿈

안녕하세요. 저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벌써 1년


제 초기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2011년에 한의사가 되고나서 공중보건의 포함 4년 정도 한의사로 일하다가, 2015년부터 스타트업 업계에서 5년 동안 몸담았습니다. 진료실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는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지만, 일하는 동안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겪었고, 작년말에 회사를 나온 이후에도 회사의 남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1년여의 시간과 억대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운영할때 한의사 대상 강의를 부탁드리기 위해서 만나 인연이 된 조성준 원장님과는 종종 만나서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여러 얘기를 나누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다가 함께 파트너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작년 11월초부터 자연재생한의원에 합류해서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그 전에도 일반적인 통증 환자들을 주로 보는 한의원에서 1년동안 일을 해봤지만, 상처치료는 처음 경험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서툰점이 많아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일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체표면 20%에 가까운 전신화상 환자를 진료하면서 힘들게 시작한 덕분에 그래도 나름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입원환자가 있는 한의원의 일상


저희 한의원에는 11병상의 입원실이 있습니다. 집이 지방이어서 통원치료가 어려운 경우나, 상처가 깊어서 매일 관찰하며 치료해야 하는 경우, 어린아이의 손이나 얼굴 같이 세심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습니다.

한의원 입원실


 저는 운좋게 38년 동안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해본적이 없지만, 아버지가 8년째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병원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지루한지 잘 알고있습니다. 저희 한의원 환자분들은 짧게는 1~2주부터 길게는 2~3달까지도 입원해서 생활하는데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지... 그래도 다른 병원들과는 다르게 바닥난방이 돼서 조금이나마 덜 차가운 느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입원환자들은 오전 8시30분, 오후 3시, 저녁 8시30분 이렇게 하루에 3번씩 치료를 받습니다. 상처를 계속 습윤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드레싱을 자주 갈아줘야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원장 둘이서 365일을 나눠서 아침부터 밤까지 진료합니다.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이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매일 환자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환자분들과 끈끈한 유대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대부분 양방병원에서 피부이식수술을 권유받고나서 비주류인 저희 한의원의 치료를 선택한 분들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점점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만족합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으로 간식을 사다주는 분들, 퇴원할때 마음을 담은 선물을 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입원기간 내내 매일 아침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다주시던 환자분의 초대로 얼마전에는 모델선발대회 심사위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상, 그 단조로움의 소중함


회사를 운영할때는 한의학계의 흐름을 바꿔보고 싶다는 거시적인 꿈을 가지고 전국으로 출장을 다니고, 어떤 새로운걸 만들어야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면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매일 개별 환자들의 상처를 보면서 잘 낫고 있는지, 다른 변수가 있진 않은지를 관찰하고 치료하면서 보냅니다. 한참 긴장하고 있던 처음 몇달은 환자들의 얼굴과 상처를 전부 기억했는데, 1년동안 1000명 가까운 환자를 겪으면서 요즘은 환자의 이름을 듣고 "누구더라?"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매일 정해진 출퇴근시간과 정해진 진료시간, 정해진 공간에서 일합니다. 어찌보면 예전보다 훨씬 단조롭지만 그 안에서도 매일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사업 하는 내내 누군가 저에게 계속 잔소리로 이야기했던 "꿈은 우주를 향하지만, 현실은 굳건히 땅을 딛고 있어야한다"는 이야기를 매일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됩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서 나태해지다가도 문득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고 있습니다.



과거와 싸우기 보다 현재에 집중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기보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자는 각오로 뛰어든 5년간의 스타트업 생활이 결과적으로 아주 좋지 않게 마무리가 되면서 큰 마음의 상처와 경제적인 부담을 지게 됐습니다. 한의원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 문제가 터져서 그나마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잘잘못을 따지면서 스트레스 받으며 부정적인 것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이미 터진일은 그냥 받아들이고 지금 하는 일이 더 잘되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1년을 지냈더니 자연스레 문제가 하나씩 해결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와이프 뱃속에 아이도 생겨 벌써 15주가 되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건 역시 가족이라는걸 느끼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꾸는 꿈


 4년전에 조성준 원장님을 처음 만나서 청계산을 오르며 들었던 꿈이 이제 같이 꾸는 꿈이 되었습니다. 16년째 진료를 하며 꾸준히 발전시켜온 상처치료연고와 치료기술을 더 많이 알리고, 수술까지 가능한 한양방협진병원을 만들고, 해외로 진출해서 수술위주의 상처치료를 보존적 치료로 바꾸고 싶다는 꿈. 우리끼리만 잘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할게 아니라, 국제 학술계에서 인정받자는 꿈. 

그 꿈을 위해 국내외 논문을 찾아보며 현재 상처치료의 트렌드도 배우고, 매주 비즈니스 모임에 나가서 저희의 꿈을 위한 도움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상적인 진료는 당연히 성실히 해야겠지요.


한 번 실패해봤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일상을 유지하며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춥다고 핫팩 찜질 오래하시면 저온화상 걸릴 수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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