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ie Aug 15. 2022

Le Grand Bleu, 그랑블루

내가 가장 처음으로 사랑하여 아주 오랫동안 곱씹는 영화





그랑블루는 너무도 아껴서 차마 인생영화라는 말조차도 아까운 영화다. 누구한테 쉽게 소개하기도 싫고 누군가가 이 영화를 안다거나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을 나에게 하는 것도 싫다. 그만큼 이 영화에 대한 내 독점욕이 강한 편이다. 너무 좋아해서 일년에 한 두번씩은 꼭 홀로 보고, 감독판이 재개봉했을 당시엔 168분짜리 영화를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그것도 심야로만 보러 갔던 기억이 있다.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는 모른다. 사랑하는 당시에는 왜 사랑하는지 알 수 없잖아. 그랑블루를 좋아하는 이유는 언제나 매번 바뀐다.


언젠가는 자크가 너무 안쓰러웠고 언젠가는 엔조가 너무 이해됐고 언젠가는 조안나가 처연해서, 또 언젠가는 더피 박사가 속상했고 또 언젠가는 로베르토가, 그 어머니가, 프리다이빙 진행자가. 짧게 등장하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서사가 있어 그를 자꾸만 눈여겨 보게 되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게 됐고 아직도 사랑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건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


아무튼 그랑블루가 재개봉했던 2013, 그러니까 거의 9 전이군.. 28살에 일기장에 정신없이 써두었던 리뷰가 있어서 일단 옮겨둔다. 옮기면서 조금 수정했다. 좋아하는 장면만  읊어놓은 오로지 날 위한 글이다 보니 별로 맥락은 없고 불친절한 리뷰가 될 것 같은데 양해 부탁…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 순간, 발버둥치는 쟈크와 먼 곳에서 그를 바라보다 소리지르는 엔조


처음 시작하는 과거 장면이 꼭 두 사람의 근원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다. 본질적으로 비슷하지만 달랐던 엔조와 쟈크다. 쟈크의 아버지가 죽는 순간을, 엔조는 보았다. 쟈크가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던 그 상황, 무기력하게 발버둥치기만 했던 쟈크의 모습을 엔조 역시 무기력하게 머리를 쥐어싸면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둘 다 어린아이였으니까 뭘 어떻게 할 수 없었겠지. 엔조가 쟈크에게 일종의 부채감과 책임감을 느낀 것은 그 일의 목격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행동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죄책감. 조금만 더 어른이었더라면.


그래서 엔조는 큰 돈을 벌게 되자마자 쟈크를 찾아나선다. 엔조가 쟈크를 각별하게 여기는 건 쟈크를 찾을 때 던졌던 동전 목걸이를 보고 알았다. 그 동전은 쟈크가 엔조 대신 건져낸 동전인데, 본인이 다 쓸 것처럼 하더니 웬걸 평생을 지니고 있었지 뭐람. 잘 보면 엔조 차에도 걸려 있다. (이건 다섯 번이나 보고 알아냈다)


참나 엔조 츤츤츤츤츤데레 ㅎㅅㅎ



엔조가 가끔 보이는 담백한 진심에 쟈크는 영원히 매여 있을걸. 있는 허세 없는 허세 다 부려놓고, 자신에게만 살짝 보여주는 수줍은 진심 때문에. 가령 호텔씬에서 한 말 같은. "와줘서 정말 고마워."





엔조가 잠수를 끝내고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나는 길고 날카로운 소리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 소리가 제주 해녀들의 소리를 연상시켰다. 살기 위해 물 아래로 잠수하는 이들만 낼 수 있는 소리가. 인위적인 장시간의 죽음에서 다시 생을 찾아온 사람들의, 숨을 쉬고자 하는 의지처럼 들린다. 바다 밑에서 붙들고 있던 죽음을 몰아내는 소리 같달까.


반면 쟈크는 그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죽음과 닿아 있고 그저 숨을 들이마신다. 음, 그래서 쟈크가 마지막에 바닷 속으로 홀려들어가는 게 자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엔조는 무리했고 쟈크는 선택했다.




조안나가 그를 사랑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같다. 쟈크는 고독했고 조안나는 외로웠다. 그건 좀 닮아 있지만 다르다고 여겨진다. 비슷한 냄새가 나지만 본질이 다른 것을. 말하자면 고독은 사방이 투명한 얼음 안에 영원히 갇힌 것 같다. 외로움은 그런 얼음을 보고 이해하는 것인 것 같다. 고독한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보고 너도 고독한 사람이구나, 하고 착각하게 된다. 고독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외로운 건 다만 기댈 곳이 없다는 거라 기댈 곳이 생기면 외롭지 않아진다. 그래도 아직은 순수하다, 영원을 꿈꿀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고독은 기댈 곳이 생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기댈 곳이 생겨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안다. 그것이 곧 떠날 것임을 안다.


둘은 홀로인 것이 닮아 있으나, 외로운 이는 사람을 믿고 고독한 이는 없음을 믿는다.





세상에서 쟈크를 제일 잘 아는 건 엔조고, 엔조를 제일 잘 아는 것도 엔조다. 쟈크가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엔조가 제일 잘 안다. 엔조 자신이 그런 쟈크에게 열등감과 더불어 동경을 느끼고 있음을 본인도 알 것이고. 쟈크가 보는 걸, 사실 엔조도 아마 볼 수 있었을 텐데 더 과감해지기에 엔조에게는 매인 것이 많다. 어머니와 로베르토, 안젤리카 등 가족들과 그 외… 아무튼 그는 삶에 미련이 있고 죽음을 넘나들며 살기엔 너무도 섬세한 사람인 것이다. 쟈크의 섬세함은 주변에게 해당되지 않고, 엔조의 섬세함은 주변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다르다.



쟈크가 조안나에게 일말의 끌림을 느꼈던 건 본인도 사람이고 싶고 누군가에게 소속되고 싶어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조안나에게 돌고래 사진을 보여주며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가족이 있었겠느냐는 자조적인 질문과 함께 흐느끼는 건 (솔직히 야, 그건 자기연민이야 인간아.. 하는 마음도 있긴 하다ㅎㅅㅎ 어휴 취해서. 하여간 자기연민에 빠진 남자란 답이 없지만 내 남자가 아니니까 노상관.) 자신이 원한 가족은 이런 게 아니라는 반어법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돌고래가 가족이라는 거에서부터 쟈크가 돌고래를 더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자명한 일 아닐까? 사람이 아니라 돌고래에 익숙하니까.



진짜 아무것에도 관심없는 눈빛 좀 보소...


쟈크가 현실이 아니라 저 너머에 닿아 있다는 건 잠수하러 갈 때의 음악과 연출을 보면 완벽하게 느껴진다. 쟈크에게 주변은 보이지만 얼음벽 너머에 있는 공기처럼 여겨진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이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쟈크를 붙들 수가 없다. 쟈크는 한없이 자기에게 몰입해 있었다. 그래서 바다 밑으로 가는 것이 별 일 아닌 것이다, 이미 죽어 있는 것과 다름없으므로. 저 아래가 두렵지도 않고 정복해야 할 대상도 아닌 것. 그것은 그에게 가장 익숙하고 오래도록 잠겨있던, 가고만 싶었던 세계.




윗부분까지가 2013년 28살의 내가 쓴 리뷰인데 되게 감상적이네... 그 뒤로 봤던 건 아무래도 조안나와 돌고래였다. 어떤 리뷰에서는 조안나보고 강인한 여성이라고 하는데, 조안나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니? 하는 생각을 한다. 아니, 어떤 존재가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죽으러 간다는데 "GO, go and see my love."하고 직접 떠나보내냐고.


쟈크는 진짜 쟈크 개인으로서는 너무 사랑스럽고 신경쓰이는 사람인데 만일 그를 사랑하게 된다면 나같아도 조안나처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선택이 그것뿐인데 어떡하나. 마지막에서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영원히 쟈크는 죽은 채로 살 텐데. 그걸 본능적으로 알았을 텐데, 사랑에 빠진 여자의 직감으로.


그런 거 보면 쟈크 진짜 쓰레기임... 솔직히 삶을 살기에는 엔조가 더 나은 상대임을 부정할 수 없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기연민에서 비롯되는 바이브를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쟈크를 더욱 사랑하게 되겠지. 그야말로 섶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짓인 것을...




봤어? 이 지지배 뽀뽀하는 거 봤냐구!!! 어우 가만안둬


내가 그랑블루에서 유일하게 사랑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 암컷 돌고래인데, 진짜 볼 때마다 맘 속으로 곱게 욕을 삼킨다. 쟈크와 조안나가 둘이 함께 보낸 완벽한 밤이었는데 쟈크를 꼬셔서 밤새 바닷속에서 노닐었다는 건 쟈크가 자신에게 속해있음을 아는 것이다. 으으.. 재수없어. 약간 남자친구의 신경쓰이는 여사친같은데 나랑 헤어지고 결국 그 여사친이랑 사귀는 꼴 보는 거 같다. 정말 싫다. 마지막 부분에서 쟈크더러 그 손 놓지 않으면 함께하지 못한다고 살랑거리는 것도 아주 싫다.






어떤 리뷰에서는 쟈크라는 인물을 조현성 성격장애를 기반으로 설명하던데, 나는 한 사람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한 인물에게 내재된 서사가 그렇게 논리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면에 서사와 서정이 늘 공존하고, 표현할 수 없는 느낌적 느낌과 표현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감상과 표현할 수 있지만 표현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표현할 수 있는 이유들로 이루어지는 게 사람이 아닐까.


아무튼 35년이나 된 영화인데도 아직도 세련된 컬러감이 좋다. 곳곳에 숨겨진 디테일이 좋다. 입체적인 인물 관계가 좋고, 각자의 풍부한 서사가 좋다.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대사들이 좋다. 푸른 물비늘이 좋다. 그랑블루를 사랑하는 이유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 같다. 또 어떤 면을 내가 사랑하게 될지 다음번 감상이 기대된다.



그랑블루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고 기다리는 장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