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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May 30. 2024

마음이 먹는 새싹

파릇파릇해 지는 희망

드레싱 없이 달콤한 오렌지와 스테비아토마토를 콕콕 찍어먹는 새싹샐러드
호밀식빵 위에 참치, 양파절임, 새싹채소 올려먹기

요즘 아침마다 새싹채소를 즐겨 먹고 있다. 샐러드도 해먹고, 빵 위에 올리거나 국수 고명으로 얹어도 아삭아삭 파릇파릇한 싱그러움이 입 안으로 밀려온다. 비빔밥에 넣어도 너무 맛있는데 냉장고에 있던 나물 넣고 쓱싹 비비면 냉장고파먹기겸 혼밥이 금세 끝난다.


손질 과정이 번거롭지 않아서 더 좋다. 큰 체에 밭혀 놓고 흐르는 물에 씻으면 끝. 잠이 덜 깬 아침에도 물기만 툭툭 제거해서 접시 위에 올리면 순식간에 근사한 샐러드 한접시가 완성된다.

  

신선하고 파릇한 새싹들을 입에 넣는 것도 좋지만 이 어린잎들은 씻을 때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컬러방울토마토와 새싹샐러드. 레몬즙만 뿌려도 너무 맛있다.
이건 레몬즙 뿌린 단호박 새싹샐러드. 섬유질이 많아서 은근히 든든하다.

아가를 목욕시키 듯 살살 뒤집어 가며 씻기면 손에 닿는 싱그러움이 아침부터 활기를 불어넣는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 신선함, 싱그러움, 파릇함, 여린, 아가같은. 그런 마음들이 새싹채소로부터 밀려 들어온다.


아삭아삭한 싱그러움은 몸으로도 먹지만 어린 잎을 보면 항상 마음이 싱그럽다. 새싹은 마음으로도 먹는다.





파릇파릇해지는 희망으로 요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바로 '일식조리기능사' 자격증 따기. 필기는 우선 90점으로 합격했다.  

필기는 준비에 불과할 뿐. 본격적인 시험은 실기다. 난 이제 큰일났다.


대학교 때 복수전공으로 시간이 많지 않아서 자격증은 나중으로 미루다미루다 여기까지 왔다. 10년 전 쯤 회사생활을 하면서 요리학원 새벽반을 끊어 6시에 요리를 하고 아침식사가 절로 해결되는 과정을 밟은 적이 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수강생은 나 혼자였는데 뻘줌한 분위기 속에서 학원수업은 멀리멀리 사라져갔다. 그때 실기로 배워야했던 한식요리는 49가지. (지금은 일식을 준비하지만 그때는 한식을 준비했었다.) 정말 아침부터 궁중요리급의 한식을 차려내고 출근하려면 하루의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었으니 아득하고도 까마득한 옛날이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필기와 실기내용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필기시험은 조리부분에서 출제 문항이 늘어났고, '식품위생법' 내용당연히 추가된 내용이 많았다.


시험방식도 컴퓨터에 마우스로 직접 답을 체크하는 CBT방식으로 바뀌었다. 시험지를 돌려서 시험을 봤던 나에겐 너무나 낯선 방식이었다. 10년이 지나 처음보는 광경에 난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시험당일 문제를 보자마자 뜨악했다. 헐...너무 어려웠다.


정말 교재에 나와 있지 않은, 전공자 아니면 알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다. 그리고 어느정도 이상한 말을 고르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확실한 내용을 알지 못 하면 답을 고를 수 없었다. 2024년식 교재도 소용없었다. 교재 내용만 업그레이드 되었을 뿐 연습문제는 CBT 전 옛날시험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시험이 시작되고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어떤 여자분이 시험을 포기하겠다며 나가버렸다. 딸깍거리는 마우스 소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옛날의 만만했던 시험이 아니었다.




전두엽에 스크라치가 나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오랜만에 공부를 했다. 대학교 식생활문화 시간에 일식문화를 배우며 '쇼진요리(정진요리, 스님들께서 수양을 위해 발전시킨 채식요리)'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일식자격증을 선택한 건 바로 식재료 본연의 맛을 고수하는 일본인들의 조리법이 나의 레시피와도 잘 맞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채식과 어류를 위주로 식사하는 습관도 나의 채식요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필기를 보고나서 큰 일 났다는 생각이 든다.


조리사 자격증은 실기가 8할이다. 필기는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도 푸른 꿈을 꾸며 산뜻한 채소처럼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되돌아 가본다.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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