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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복 Mar 19. 2024

일주일 연애, 1년의 방황

- 사랑에 기간이 중요한게 아니더라

  대학교 2학년 봄의 일이다.

  "여기 가까운 병원이 어디에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 알게 된 1년 후배로부터 문자가 왔다. 큰 눈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고양이 상을 한 그녀의 문자를 받고 나는 혼자 설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외모로 인기가 많았던 그녀였기에 언감생심 마음 갖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먼저 문자가 오니, 신이 주신 기회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병원의 위치를 대충 알려주고는 '혼자 찾아가기 어려울테니 같이가자'는 식으로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지요'라는 내용을 답장을 받게 되었다. 이 때 나는 몸이 안좋아서 어쩌나 하는 걱정보다는 단 둘이 만나게 된다는 기대감에 설렘과 기쁨이 더 컸던 것 같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그녀를 만나서 학교 뒷문에서 이어지는 좁은 비포장 길을 걸으며 함께 병원을 향해 나아갔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온 그녀는 제법 수척해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마저도 왜 그렇게 예뻐보이던지 내 눈에 콩깍지가 씌여있던게 분명했다. 먼 타지에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기가 얼마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몹시 아픈 그 친구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물었다.


  "타지에 나와서 아프니까 더 서럽지 않아?"


  큰 고민없이 물어본 나의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네, 많이 서러워요."


  갑자기 그녀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뭔가 챙겨주고 싶고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우는 모습마저 예쁠까 하는 생각마저 했던 것을 보면 당시의 나는 정말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녀에게 또 문자가 왔다. '내일 바쁘지 않으면 저랑 놀아주시면 안돼요?'하고 말이다. 이게 무슨 기적같은 일인가 생각하며 당시에 급하게 해결해야할 과제가 제법 있었음에도 마침 시간이 된다며 흔쾌히 그녀의 제안에 응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날을 새며 과제를 미리 다 끝내버렸다. 그리고 그 날 우리는 영화관, 식사, 오락실 등 그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소소한 데이트를 즐겼다. 


  시간이 흘러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장소를 옮기던 중 차도 쪽으로 걷는 그녀를 잡아당겨 자리를 바꾸고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너 걷는게 불안해서 사고날까봐 내가 손을 잡고 다녀야겠다'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내 손을 홱 뿌리치더니 말했다.


  "이러다 오늘 친한 후배 하나 잃는 것 아니에요?"


  당시 유행했던 한 광고에서 나온 대사였다. 저렇게 후배를 잃고 서로 연인이 되었다는 그런 내용의 광고였었다. 


  "응. 오늘 친한 후배 하나 잃었네."


  나는 이렇게 말하며 다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유치해보이지만 원래 사랑이란게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그 날부터 사귀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밤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이 참 꿈만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달콤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 일주일만에 나는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다. 처음 며칠간은 자주 만나 데이트도 하고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락도 잘 닿지 않고 만남도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일주일째 되던 날 나는 그녀를 만나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거냐며 제법 구질구질하게 하소연을 했고, 그 다음 날 그녀로부터 그냥 아는 선후배 사이로 지내고 싶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까지 좋아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으며, 더 큰 이유는 후회가 남을 정도로 너무 못난 행동들을 많이 했던 것들이 자꾸 떠올라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챙피하고 이해가 안되는 행동들인데 이를 테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거리를 두고 다니자'라던지 또 다른 친구들과 있을 때는 내가 선배이니 반말을 하지 말고 존댓말을 써라 따위의 이상한 소위 꼰대같은 말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불킥을 하고 싶을 정도의 나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괴이한 짓들이었다.


  그 후로 일주일간 나는 식음을 전폐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이별 노래들을 들으며 하루종일 기숙사 침대에 누워서 울기만 했다. 눈물에 젖어서 축축해진 베개의 감촉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일주일간은 수업도 가지 않았고, 입맛이 없어서 이따금씩 마시는 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 이러면 안되겠다 하는 생각에 수업도 가는 등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했지만 억지로 수업 시간에 참여한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강의를 듣지도, 과제를 하지도 않았다. 남는 시간은 거의 대부분 술로 보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학교가 크지도 않은데 같은 과였기 때문에 이따금씩 그녀를 마주치는 일이었다. 그 친구는 여전히 왜그리도 예쁘기만 한건지.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고 괴로운 마음에 휩싸여 미칠 것 같았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또 그녀의 소식들을 들을 수 없었다면 좀 나았을까. 그게 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자꾸 들려오는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이따금씩 마주치는 그녀를 볼 때면 나는 또 다시 한없이 무너지기만 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할 짓을 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술먹고 문자를 보내는 것이었다. SNS에서 회자되기도 하는 전 여친에게 '자니?' 하는 문자들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답장은 없었다. 어차피 다 끝났고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따금씩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요즘 일교차가 심해졌네. 감기 조심해' 등과 같은 정말 낯간지럽고, 입장 바꿔 생각해도 질릴 수 밖에 없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약 1년 정도 지났을까. 그 날은 방학 중이어서 고향 집에 내려와 았던 때였다. 또 낮에 지붕에서 방수공사 하는 것을 돕는 알바를 했었는데 한 여름 땡볕에서 힘들게 일하고 저녁에 소주를 두어병 마시고 난 뒤였다. 나는 또 그녀 생각이 나서 시덥잖은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녀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폰을 확인해보니 문자의 내용을 이러했다.


  "이제 연락 좀 제발 그만 하세요. 솔직히 님 스타일 별로고, 같이 다니기 챙피했어요."


  문자를 읽으며 휴대전화를 든 손이 떨렸다. 그리고는 폰을 집어던졌다. 그 때 느꼈던 감정은 나에게 심한 말을 한 그녀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내가 고작 상대에게 부끄러운 사람이었구나 하는 수치심, 그리고 그 동안 질리게 문자를 보냈던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던 것이다. 그 새벽에 그 문자를 받은 나는 어찌할 수 없는 감정에는 밖으로 뛰어나가 펄쩍펄쩍 뛰면서 울었다.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자괴감에 휩싸여 너무 괴로웠다. 그 수치심과 자괴감으로 인한 괴로움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아 무서웠다. 


  그 뒤로 나는 그녀에게 문자 하는 못난 습관을 고쳤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소식이 들려오거나 그녀가 보일 때면 그 일들이 떠오르며 몹시 괴로워졌다. 아마도 그녀와 헤어지고 1년간은 상실감과 후회감 때문에 힘들어했던 것 같고, 마지막 문자를 받은 뒤로도 약 1년간은 내가 한 행동들에 대한 수치심으로 인해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내 자신이 한없이 못나고 한심하게 느껴지는 자괴감이라는 감정같다. 나는 이성관계에 있어서 자신감을 잃었고 자존감도 많이 낮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결심했다.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정말 이런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말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그 이후에 인연이 된 친구들과는 4년에서 5년 가까이 만남을 이어갔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들을 다 했다고 생각하니 헤어진 이후에도 그 때처럼 많이 괴롭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헤어짐이 아프지 않았던 적은없다. 다만 적어도 그 때만큼의 수치심이나 자괴감은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지내고 있을까. 사실 지금도 궁금하긴하다. 이제 20여년이나 지난 옛날의 일인데도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피천득 시인의 수필 '인연'의 유명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리워 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그녀는 내가 못잊으면서 사는 사람이지만 만나지 않고 그냥 가슴에 묻어두는 것이 그나마 더한 악연으로 만들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후회가 조금이나마 덜 했을까. 


  그녀는 내가 단지 일주일만을 교제했던 사람이었다. 친구들을 비롯해서 누군가는 내게 이야기한다. 그게 연애냐고. 그것도 사귄거라고 할 수 있는거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만남의 깊이는 기간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깊이로 정해지는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후회가 남는 만남이 더욱 뼛속 깊이 각인되는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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