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4
햇빛은 창창하고 바람은 시원해서 아주 좋은 날씨다. 아침의 쌀쌀함에 조끼를 걸쳐입고 왔다가 낮이 되니 벗어도 될만큼 날씨가 좋아졌다. 날씨가 좋은 이 와중에 난 졸리다. 왜 난 졸릴까? 왜 어제 밤을 새다시피하고 새벽 6시에 잤을까? 왜 시간을 효율적으로 못 썼을까? 왜 난 '전자기학 무한 장 선전하' 공식 증명을 이해하는데 내 수면시간까지 포기했을까? 집중력이 부족했나? 날씨가 좋은 이 와중에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길을 걷다보면 나는 하나의 점이 된 느낌이 든다. 눈에 안보이는 점말고 흰 보자기에 검은색 점이 하나 박혀있어서 지우고 싶어도 안지워지는 그 점이다. 얼굴로 향해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눈부시게 만들어 눈을 못뜨게 하는 밝은 태양사이로 나는 검정색 점이 되었다. 흰 보자기에서 자꾸만 점이 눈에 띈다. 왜 난 점이 됐을까? 흰색 점이 됐으면 티도 안났을 텐데 왜 굳이 검정색 점이라고 말을 했지. 졸려서 그런지 내 안에 있는 타인과 대화하는 느낌이다. 혼자 걷고 있을 때면, 특히 성찰을 하거나 오늘처럼 이렇게 졸리거나 하는 날에는 나 자신의 고유함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귀에 사람들의 소리나, 차소리, 바람에 날려가는 종이 소리가 들려오지만 난 지금 외부와 단절되어있다. 내 안에 졸린 누군가가 나에게 계속 물음표에 답을 해달라고 부추긴다. 외부와의 연결고리와 단절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신과 소통을 하며 강렬히 내 고유함을 느끼고 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상대방을 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데 가끔씩 이렇게 졸려도 괜찮은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죽을 때 혼자가는데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인가. 그럼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는 수면이다. 지금 이시간 3월 24일 오후 2시 39분 나는 내 안에 있는 타인에게 크게 소리친다. '잠을 자라!'
나에게 고유함을 느끼게 유도하는 타인은 누구라고 딱히 설명할 수 없다. 어떻게 생겨먹은지도 모르겠다. 머리쪽에서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목 밑에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양쪽의 갈비뼈 사이의 틈, 명치 가까이에 있다. 그런 곳에 있다니 엄청 작나 보다. 새끼 손가락 정도 크기로 추정된다. 나에 무엇을 원하길래 거기 들어가서 나에게 자꾸 말을 시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