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수업에서도 UX는 UI 위주였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디자이너로 취직하려면 이젠 무조건 UX를 배워야 해요. UX 말고는 기업이 이제 디자이너 뽑지도 않습니다."
UX와의 첫 인연은 2012년이었다. 전자제품 회사에서 모바일 사용자 경험을 담당하던 분이 새로운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맡았던 과목은 '인터페이스 디자인'이었다. 3학년부터 본격적인 심화 디자인 전공 수업을 하게 되다 보니 당연히 UX/UI가 뭔지 기본적인 개념도 안 잡혀있을 때였는데 위에 말은 교수님께서 첫날 얘기했던 내용으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다.
당시엔 크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2008년 말부터 국내에서 아이폰과 함께 스마트폰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시작되면서 모바일과 연계된 서비스 제공을 위해 기업들은 앞다퉈 직접 UX 인력을 뽑기 바빴고 선배 동기 후배 할 거 없이 UX 디자인 배웠다 하면 IT 관련 기업이 아니더라도 UX 인력을 따로 뽑다 보니 소위 '대기업'에 취직은 일반 기획 직군 대비 수월하게 하는 편이었다. 다만 요즘 들어 당시 UX 디자이너로 취직한 친구들의 자신들의 역할과 성과에 대한 고민들을 듣다 보면 일반 기획자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내 입장에선 일정 부분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고 또 한편으론 UX 부서가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회사를 보며 안타까운 부분들도 있다. 결론적으로 취업시장이 전반적으로 얼어붙은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2010년 초반만큼 IT 관련 기업이 아니고서는 UX 인력을 뽑지 않고 UX 부서가 기업 내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현실은 UX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기인되기도 하지만 UX에 대한 첫 교육도 잘못된 방향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 UX를 UI 위주로 배운다.
돌아와서, 그 수업은 몇 가지 디자인 방법론을 배우고 거기에 맞춰 기존에 있는 모바일앱에 대한 UI 조사를 한 후 개선 포인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는 UI 와이어프레임을 짜 보고 최종 시각적 디자인을 했었는데 UX에 대한 수업을 UI바탕으로 진행해서 그런지(당연히 수업이 '인터페이스 디자인'이었으니까) 으레 학생들은 UX = UI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물론 당시에 나도 그중 하나였고... 이후 전공 수업에서도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조사하더라도 항상 앱과 연동해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결국 마지막 최종 발표 때 결과물은 UI 디자인, UI 사용성에 더 치우지게 되는 편이었다. 유용한 수업이기는 했지만 UX 교육에 있어서는 절대로 좋은 시작이라 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인터페이스 디자인' 수업 이전에 UX 디자인 개념을 최초로 만든 도널드 노먼의 책 '디자인과 인간 심리(The Design of Everday Things)'로 바탕이 된 수업을 한다거나 아니면 UI 뿐만 아니라 산업디자인, 그래픽, 제품과 사용자 간의 상호작용, 기타 등등 UX가 적용된 사례를 연구하는 수업을 먼저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스마트폰 보급 흐름과 맞물려 UX 디자인이 급성장 한 감은 있지만 아직까지도 기업 전반적으로 UX가 단지 자사 앱/웹의 개선과 개편 위주의 한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자연스럽게 UX 하면 앱이나 웹을 떠올리기 때문이고 이는 또 수업에서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각자 다른 학교에서 UX수업을 들은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다닌 학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2. UX '디자인'이라서 디자인과에서 가르친다?
어느 UX 관련 서적을 읽던지 간에 빠짐없이 나오는 말이 있다. 'INTERDISCIPLINARY'. 즉 학제적인 분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러 학문/분야의 협력으로 이루어낸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뒤에 꼭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같이 붙어서 활용되는 편이다. 결과물을 내야 하기에 'UX Development', 'UX formation' 등등의 단어로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창조적인 결과물을 기대하는 측면에서 'Design'이라는 단어와 한 쌍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기존의 전통적인 산업 디자이너들이 많이 하던 사용자 조사에 대한 정성적인 접근이 많이 이루어지다 보니 생긴 현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전공 수업을 들을 때에도, 나가서 UX 리서치를 할 때에도 디자인 전공 학생들끼리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다양관 관점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고 기본 개념조차 잘 안 잡혀 있는 상태에서 다양한 관점이 오고 가지 않는 상황은 더 UX의 역할을 한정적으로 만드는 근본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가끔씩 호기심에 수업을 들으러 온 타과생들 그리고 복수전공자들이 있는 경우에는 관점에서 충돌이 생긴다는 이유로, 미적 감각이 떨어진다, 혹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다룰 줄 몰라 자기만 개고생 한다는 이유로 같은 조로 활동하기를 꺼려하곤 했는데 이 또한 학제적으로 공통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디자인부서가 아니더라도 회사 내에서 어떤 기획이나 업무를 진행할 때 타 부서와의 협력이 가장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각자의 이해관계와 사정이 있는 것이니까... 거기에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기존 업무에 익숙해진 상황 속에서 새로운 걸 진행하기 위해 협력을 해야 하는 상황은 '보상'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끊임없이 발전해야 되고 성장을 추구하는 만큼 어떠한 새로움이 주기적으로 형성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화두를 던지고 추진해야 하기에 누군가는 동참해서 협력을 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전 글에서 쓴 바와 크게 다를 바 없이 UX,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좀 더 정성적인 분석을 통해 폭넓게 사용자와 이해관계자를 조사하고 다양한 분야와의 협력을 통해 결과물을 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디자인과에서 이를 주도적으로 수업을 하는 이유는 단지 최종 제품/상품이 나오기 전에 이를 시각화하는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 수업에서(적어도 학사 과정에서) 결과물을 주로 앱/웹의 UI 위주로 유도를 하다 보니 UX에 대한 이미지가 굳혀지는 것이고 다양한 분야와의 협력이 결여되면서 편협한 시각 속에 디자이너 스스로 다양한 의견 조율 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곧 '미(美)적인 결과물'만 내는 디자이너가 되는 과정이 아닐까... 직접 체험해본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학사에서 뭘 얼마나 가르치겠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석사도 어차피 2년이다. 학사 4년 전공수업 동안 기본 개념 정도는 충분히 배우고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공이라 말하는 것도 좀 웃기다랄까. 오히려 진짜 학제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들을 수 있는 교양으로 진행되어도 차차 UX에 대한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고 기업 내에서도 한정적이었던 범위를 넘어 그 역할이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서 다행이다 싶은 점은 그래도 UX의 의미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 회사들이 눈에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직접 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체는 알 수 없어도 구인구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글을 보면서, 그리고 일부 회사들은 UX 부서로 입사한 선후배들의 얘기와 그들이 진행한 실제 결과물들을 보면서, 실제 사용을 해보면서 소비자들의 사용자 경험이 잘 반영됨과 동시에 세상이 발전하고 삶이 진보하고 있음을 느낀다. 편견을 깨 부수고 세상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부서의 의견을 조율하며 노력하고 있을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모두가 'UX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