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경험이 반영되지 않은 깔끔하게 디자인된 안내판의 역설
글에도 사용자 경험이 있을까 라고 한다면 당연히 있다고 할 수 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나름의 원칙 두 가지를 정립했는데
1. 글을 가능한 한 짧게 쓰고
2. 글 안에 기타 다른 강조(볼드, 기울임 등)를 넣지 않기로 했다.
이는 내가 인터넷 상의 글을 그간 읽었던 사용자 경험 때문인데 글이 너무 길면 지쳐서 중간에 읽다 말게 되는 경험과, 강조를 넣으면 그 부분만 읽게 되어 간혹 영감을 주는 주옥같은 표현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내 경험이 절대로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고 내 기준에서 내 공간에서만큼은 다 읽지 않고 넘기게 될 대다수의 독자들보단 공감하고 안하고와 관계없이 한 자 한 자 다 읽어 나가는 소수의 독자들이 더 의미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번엔 내 브런치 글 원칙과는 반대로 대다수들이 꼭 읽고 본인이 필요한 정보를 반드시 얻어야 하는 안내판에 대해 사례를 바탕으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수속하려면 카운터 어디로 가야 하죠? 봐도 모르겠어"
공항 현장 근무를 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다.
사진은 우리가 공항 출국을 앞두고 출국장에 도착했을 때 반드시 한 번은 찾아보게 될 카운터 안내 표이다(현재는 코로나 시국으로 매우 한적하지만 과거 매우 복잡했을 때의 사진을 가져왔다). 총 6개의 화면으로 구성되어있는 메인 안내판에서 5개는 각 편별로 출발 시간과 카운터 위치, 현재 진행 상태 등을 알리고 있고 1개의 화면은 가장 중요한 체크인 카운터 분류 안내가 있다. 문제는 승객들이 5개 화면 속에 나열되어있는 표에서 본인의 비행편은 잘 찾지만 정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우측 하단에 남겨져 있는 카운터 분류 안내 화면까지는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최근의 공항은 시대 변화에 맞춰 셀프 카운터도 운영 중에 있고, 해당 공항을 허브로 운영하는 항공사는 수많은 승객을 효율적으로 나눠서 수속을 진행해야 하다 보니 같은 비행편이라도 승객 분류에 따라 다양한 카운터를 운영하게 되는데 이 마지막 화면을 읽지 않음에 따라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게 되어 주변 직원들을 찾아 묻거나 심지어는 짜증과 화를 내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처음 공항에 와 실무 배치를 받았을 때 공항 직원분께서 해당 안내판을 보고 '승객들이 마지막 화면을 보질 않아 계속 길을 물어본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문제의식은 정확히 하고 있었으나 한번 더 '왜 그럴까?'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용자 경험으로 해석해보면 마지막 화면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고 할 수 있고 또 해당 화면까지 꼼꼼하게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 생기는 문제인데 오로지 승객의 잘못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디자이너는 승객들이 해당 안내판을 다 읽으면 오히려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란 마음으로 깔끔하게 표를 정리하고 디자인을 했을 것이다. 허나 실제 다수의 사용자들이 읽지 않고 넘어가는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기에 이는 결론적으로 '정확한 안내'라는 제 몫을 못하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디자인을 승인한 기획 실무진도 당연히 승객들의 눈높이는 고려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고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길 잃은 승객과 짜증이 난 그 승객을 응대해야 하는 현장 직원에게 돌아가게 된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다양한 카운터를 운영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자들의 사정이 있다면 적어도 소수보다는 다수가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안내를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복잡한 곳에선 복잡한 정보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이를 꼭 깔끔하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보다는 그 어떤 안내판이든 사용자 경험에 맞게 정보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이 반영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궁극적으로 안내를 제공하는 주체 그리고 안내받는 대상 등 대다수의 이해관계자가 만족할 수 있는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