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월 첫 주 동안 본 영화들 간단히... <새벽의 모든>은 따로 길게 쓰고 싶고.
2. <응답하라> 시리즈가 회피하려던 것을 마주하는 영화랄까? 물론 레트로 열풍 속에서 등장한, '하여가'와 펌프에서 시작하는 영화이지만, <빅토리>에는 너저분한 남편찾기가 없고 곁가지 소품일 뿐이었던 시대와 지역이 존재한다. <빅토리>는 보편적인 감정에 호소하면서도 그것이 진부함이 아니라 동력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응답하라 1988>과 <빅토리> (그리고 <놀라운 토요일>) 사이에서 자신의 활력을 증명해온 이혜리가 있다. 얼핏 그의 아이돌 그룹 이후의 커리어를 총망라하는 것처럼만 느껴지는 <빅토리> 속 필선의 모습은 천연덕스럽게 정답을 맞추고 무대로 나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모습과 철딱서니 없는 청년의 이미지로 남겨진 드라마에서의 모습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 모습이 향하는 공간, 학교와 운동장뿐 아니라 시장, 부둣가, 그리고 조선소에 이르는 배경들은 그저 배경이길 그만두고 밀레니엄 걸스의 활력과 함께 움직인다. <빅토리>가 대단히 잘 만든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면에서는 '안온 다정 무해'라는 키워드를 안전하게 반복하고 있을 뿐인 영화이기도 하니까. 다만 <빅토리>는 조금 더 쉬운 길보다는 조금이나마 어려운 길을 골라보고자 한다.
3. 이 영화는 어딘가 이상하다. 장강명의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한국과 뉴질랜드를 오가는 계나의 여정은 씬 단위로 툭툭 끊겨서 전달된다. 단지 한국의 계나와 뉴질랜드의 계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계나 사이의 갭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한 인물이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갭을 보여준다기보단 서로 다른 계나들이 각각의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만 같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싫어서>는 실패한 영화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실패일까? 실패하고 있는 것은 오직 계나 뿐이다. "싫어서"라는 제목은 한국에 관해 말하지만, 그가 뉴질랜드에서 마주하는 것은 확장된 한국에 다름없다. 그는 자신이 싫어서 떨어져 나온 공간을, 관계를, 관습을, 행동을 끊임없이 마주한다. 영화는 계나가 속하게 된 공간들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계나들은 그저 그곳에 있다. 남자친구의 집이건 게스트하우스건 학교이건 장례식장이건 라이브클럽이건, 계나는 어딘가에 있고 그곳에서 익숙하고 새로운 "싫음"과 마주한다. <한국이 싫어서>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 "싫음"들과의 마주침이자, 새로운 출발임과 동시에 또 다른 싫음을 마주하기 위해 떠나는 계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4. 사실 개봉할 줄 몰랐다. 60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의 영화가 정식개봉이라니, 5시간이 넘어가는 <해피아워>에는 추가요금을 받아 놓고 <룩 백>에는 정가를 받는 멀티플렉스의 짜증나는 가격정책은 잠시 뒤로 미루자.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를 아주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다. [파이어펀치]와 [체인소맨]의 1부 정도만을 봤을 뿐이니까. 다만 그 정도의 경험만으로도 <룩 백>이 그 자신의 이야기임을, '후지노'라는 이름에서 후지모토 타츠키라는 이름을 연상하고 [샤크 킥]의 표지에서 [체인소맨]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원작 만화를 읽어보지 못했기에 직접적인 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룩 백>의 이야기는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것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후지노의 목소리를 맡은 카와이 유미가 출연한) <썸머 필름을 타고!>나 코나카 카즈야의 <싱글 에이트>처럼 영화를 만드려는 학생들의 이야기, 혹은 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타케시 콤비의 [바쿠만]이나 드라마로도 히트한 [중쇄를 찍자!] 같은 만화 제작에 관한 만화들을, 자신의 만화를 그리고자 하는 후지노와 쿄모의 모습과 자연스레 오버랩시킬 수 있다. 다만 <룩 백>의 중핵은 완성된 창작물을 세상 밖으로 내놓는 것의 감정이라기보단,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에 관한 두려움, 수치스러움, 떨림에 관한 이야기라는 데 있다. 만화가 되었든 영화가 되었든 그것은 어떤 힘을 갖는다. 물론 히키코모리인 쿄모토가 방 밖으로 나온 것처럼 극적인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버스터 키튼처럼 스크린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 못하고, 3D 영화의 홍보영상과 달리 영화는 스크린 바깥의 우리를 향해 뻗어나오지 못한다. 단지 우리가 변화하는 과정 속에 영화가, 만화가, 애니메이션이, 음악이, 게임이 놓일 뿐이고 그것들은 우리가 변화하는 각도를 미세하게 틀어둘 뿐이다. <룩 백>은 그것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변화를,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삶 속에 새겨넣는다. 급격하고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어느샌가 변화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룩 백>은 마치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는 나를 찍은 것만 같은 뒷모습들을 통해 보여준다. '나'는 볼 수 없지만 '너'는 볼 수 있는 그 뒷모습을.
5. 팀 버튼에게 더 실망할 게 있겠냐만,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색채를 그려내기 시작한 88년작의 속편을 36년만에 연출한다는 소식은 극장을 찾기엔 충분한 이유가 되어준다. 시간이 흐른만큼 주인공들은 나이가 들었고, <탑 건: 메버릭>이 그랬듯 <비틀쥬스 비틀쥬스> 또한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팀 버튼이 2010년대에 쏟아낸 폐기물들에 비하면 이번 영화에서의 그는 꽤나 신나 보인다. CGI에 매료되어 엉터리 '이상한 나라'를 보여주거나 자기반복을 끝없이 이어가던 <다크 섀도우>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지나 디즈니 '라이브 액션' 영화 중 단연 최악이라 할 수 있을 <덤보>에 이르기까지, 팀 버튼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세계와 변화한 기술 사이에서 완전히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물론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팀 버튼은 여전히 디지털 영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스톱모션 모래벌레와 아날로그적인 분장들은 종종 겹쳐지는 CGI와 불협화음을 내고, 그것은 스타일이 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린다. <플래시>에서 배트맨으로 돌아온 데 이어 다시금 과거의 캐릭터로 돌아온 마이클 키튼은 이전과 같은 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웬즈데이> 이후 팀 버튼의 새로운 페르소나 자리를 차지한 것만 같은 제나 오르테가는 활기를 잃은 선배들 사이에서 방황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