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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15. 2024

내란 2주차

2024.12.10 

내란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어제오늘 예산안을 비롯한 여러 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그 중에는 금투세 같은 쟁점 현안처럼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진 법안도 있지만 영비법 일부개정안도 포함되어 있다. 오늘 통과된 영비법 일부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입장권 가액의 5% 이하에 해당하는 영화관입장권 부과금의 폐지와 행정법상 영사기사 자격증 취득자만 가능한 극장 영화상영을 취득 혹은 관련 교육 이수자로 변경하는 것이다.  


후자도 일정부분 문제적이라 볼 수 있지만, 우선 큰 문제는 부과금의 폐지다. 앞서 적은 것처럼 기존 영비법은 입장권 가액 5% 이하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과금을 징수하는 것이었으며, 현재 대통령령으로는 3%를 부과금으로 징수하고 있었다. 윤석열 내란수괴는 지난 1월 17일 영화관입장권 부과금이 "준조세, 그림자 조세"이며 자유시장경제를 위축시키는 부담금이기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26일 임오경 외 더불어민주당 의원 12인이 부과금 관련 조항에 관련된 영비법 일부개정안을 제안했으나 본회의 상정되지 못했고, 7월 26일 정부가 부과금 폐지를 제안했으나 역시 본회의 상정되지 못했다. 그리고 10월 7일 이종욱 등 국민의힘 의원 11인이 제안한 일부개정안이 오늘 통과된 것이다. 


통과된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영비법 제25조의2 '부과금의 징수' 조항은 삭제되었고, 이에 따라 제24조 '기금의 조성'의 3항 "제25조의2의 규정에 따른 영화상영관 입장권에 대한 부과금"도 삭제되었다. 부과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영화예술의 질적 향상과 한국영화 및 영화ㆍ비디오물산업의 진흥ㆍ발전"(영비법 제23조 1항)을 목적으로 운용하는 영화발전기금의 주요 재원이며, 3/4 가량의 비중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정부 출연금이나 기부금 등으로 정세에 따라 변동이 심한 부분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영화산업 구제를 위한 지원정책으로, 그리고 급감한 관객수로 부과금 징수액은 크게 줄었으며, 쌓여 있던 영발기금 자체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올해 영진위에서 진행한 관객개발 사업 등의 예산은 복권기금 등의 일회적 원조를 받아 진행되었다. 영발기금은 독립영화 개봉지원, 독립/단편/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지원, 독립예술영화관 운영지원, 관객개발 사업, 영화제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운용된다. 영발기금의 고갈은 그 자체로 이러한 정책들의 위기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 제도의 미흡과 그에 대한 불만은 언제나 존재한다. '제도화'는 제도의 대상이 되는 것들과 조응과 불화를 반복함으로써 성립된다. 어떤 정책의 폐지에 대한 요구가 영화정책 자체의 폐지는 아니지 않나. 하지만 영발기금 폐지로 직결되는 부과금 폐지는 그 기반을 무너뜨린다.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영사 자격자 관련 조항 개정안 제안이유에 적힌 "영사 분야 교육 프로그램 활성화"는 어떤 돈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윤석열이 제안하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한 자기모순적 법안에 찬성한 야당 의원들은 어떤 생각인가? 며칠 전 공개된 "윤석열 퇴진 요구 영화인 긴급성명"에 박수를 보내던 야당 의원들은 왜 이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나? 나아가 부과금의 폐지가 영화관 입장료의 인하일 것이라 생각하는 영화인은 없을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입장료는 3000원 가까이 상승했지만 부과금은 기껐해야 5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동시에 부과금은 부가가치세처럼 소비자인 관객에게 부과되는 조세가 아니라 입장료를 수익으로 삼는 극장에 부과된 것이다. 부과금 폐지는 입장료 인하를 강제하지도 않고, 인하의 계기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일주일 째 이어지는 내란 상황 속에서 이런 개정안의 통과는 큰 유감이다.  


찾아보니 우리 지역구 전현희 의원도 찬성표를 던졌더라. 뭐 하는 짓이지? 


2024.12.11 

오늘은 대학원 동료와 여의도를 찾았다. 추최 추산 5만 명 정도 모인 집회였다고 한다. 강추위에 시달렸던 토요일 집회와는 달리 비교적 따뜻한 기온에서 집회를 마무리했다. 국회 앞 도로에서의 시민발언들부터 국민의힘 당사까지의 행진. 학교에서의 침묵시위를 마치고 여의도를 찾은 동덕여대 학생들과 함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고, 퀸의 "We Will Rock You"에 맞춰 국민의힘 당사에 쏟아진 "윤석열을 탄핵하라, 국민의힘 해체하라" 레이저쇼를 바라보고, 구호와 음악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고. 행진 도중 집회를 촬영 중인 문종택님을 봤다. 세월호 유가족이자 유튜브 채널 416티비를 운영하시고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맞춰 개봉한 <바람의 세월>을 공동연출하신. 높이 솟은 카메라봉에 달린, 세월을 증명하듯 헤진 노란 깃발을 봤다. 2016년의 광화문에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 관해 이야기했다. 2024년의 여의도에서 우리는 그에 더해 10.29 이태원참사를, 아리셀 참사를, 반지하와 터널 침수 사고를, 비민주적 대학 행정과 학생 탄압을, 지하철 파업을, 용주골의 성노동자를 더해 이야기한다.  


2024.12.12 

등교길에 극우유투버 내란수괴의 대국민 변명을 들으며 복통과 두통을 얻고 하루치 체력을 소진한 채 강의실에 도착했다. '한국다큐멘터리영화 연구' 수업의 마지막날이었고, 12.12라는 날짜와 내란 정국 속에서 포스트-트루스와 포스트-메모리, <김군>에 관해 토론하는 날이었다. 수업 50분 전에 끝난 대국민 담화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시작된 수업은 결국 지금의 대한 이야기들로 이어졌다. 사실 12월 3일 이후로 모든 수업에서 내란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기말페이퍼를 써도, 영화글을 써도, 일기를 끄적여도 모든 이야기가 그것으로 귀결된다. 수업 시간 동안에도 쏟아지는 속보들을 보며(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조국이 의원직을 상실했고, 권성동이 원내대표가 되었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전의 수업 토론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무수한 다큐멘터리가 취하는 각자의 관점에 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두서없는 결론은 서로 경합하는 관점과 (탈)진실 사이에서 결국 우리는 가능한 봐야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오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보느냐도 중요한 문제지만,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이냐를 이야기해야 한다. 너무나 많은 것을 볼 수밖에 없기에. 이번 토요일은 많이 춥다고 하더라. 


2024.12.14 

 탄핵소추안 가결! 하지만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탄핵소추안 가결이 발표된 순간 "다시 만난 세계"가 재생되었고, "삐딱하게", "한페이지가 될 수 있게" "그대에게" 등이 이어졌다. 우리는 축제를 즐겼다. 공공의 적을 무찌르는 데 성공했고, 여의도의 200만 가까운 집회 참석자와 전국 수백만의 집회 참석자의 햡동 플레이는 국회를 압박해 204표의 탄핵소추안 찬성표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적어도 이번 주말 동안은 그 승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승리는 무엇인가? 나는 가결 이후 (개혁신당 이외) 야당 5당의 대표들이 집회 무대에 올라 발언하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다.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진보당을 지나 조국혁신당 당대표대행과 민주당 이재명 당대표가 발언하던 순간, 나의 앞뒤양옆은 조국과 이재명을 연호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우리는, 적어도 나는 조국이나 이재명을 옹호하거나 지지하기 위해 국회 앞에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윤석열의 탄핵소추이지 야당인사 중 누군가를 차기 대권주자로 치켜세워주기 위함이 아니다. "다시 만난 세계를 통해 하나로 묶였던 우리는 야당 인사를 연호함으로써 다시 개별의 우리로 나뉘었다. 솔직한 인상으로는, (진보정당들을 포함해) 야당대표들의 무대 발언보다 개표 직전 진행된 평범한 직장인으로 자신을 소개한 개인과 평범한 '야빠'로 자신을 소개한 개인의 연설이 더욱 와닿았다. 적어도 그들의 연설은 '모두'를 위하고자 했다. 야당대표들의 연설 이후 재생된 노래 중 "Next Level"이 있었다. 우리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다음 레벨은 헌법재판소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막 게임의 중간보스를 가까스로 해치웠을 뿐이다. 하지만 다음 레벨은 모든 게임이 그렇듯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야당 대표들의 연설 속에서 우리는 우리들로 흩어졌고, 우리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것은 장기전이 될수록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이다.  


 가결되기 직전 불린 노래는 공교롭게도 "소원을 말해봐"였다. 탄핵소추라는 공통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세상 소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이라는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것은 아직 잠재적인 외침이다. 이 외침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여성의, 성소수자의, 이주민의, 참사 피해자의, 청소년의, 빈민의, 농민의, 노동자의 소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야당(들)은 아직 그것을 약속하지 못했다. 우리가 헌재 앞에 똑같은 깃발과 구호를 가지고 나갈 때 달라져야 할 것은 이것이다.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개인의 이름 대신 말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내 말이 찬물 끼얹기가 아니길 바란다. 이게 찬물이라면 앞으로 맞이할 것은 더욱 차가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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