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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5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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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엔딩 본 게임 두 편에 관해.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는 여러모로 기묘하다. 전례 없던 방식은 아니지만 패링과 회피가 핵심 게임플레이가 되는 '실시간 턴제' 방식은 여타 턴제와 달리 게이머를 게임에 붙잡아둔다. 물론 그것 자체가 게임의 난이도이자 진입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림 속 세계와 그림 바깥의 세계 사이를 넘나드는 메타적 구성을 한 데 꿰는 실과 바늘 같은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단순한 턴제나 실시간 전투라면 넘어설 수 없거나 어려운 지점들, 이를테면 고레벨 적과의 대결과 같은 순간이 가능해지고, 이는 그림 속 세계 안에서의 투쟁이.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는 여러모로 기묘하다. 전례 없던 방식은 아니지만 패링과 회피가 핵심 게임플레이가 되는 '실시간 턴제' 방식은 여타 턴제와 달리 게이머를 게임에 붙잡아둔다. 물론 그것 자체가 게임의 난이도이자 진입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림 속 세계와 그림 바깥의 세계 사이를 넘나드는 메타적 구성을 한 데 꿰는 실과 바늘 같은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단순한 턴제나 실시간 전투라면 넘어설 수 없거나 어려운 지점들, 이를테면 고레벨 적과의 대결과 같은 순간이 가능해지고, 이는 그림 속 세계 안에서의 투쟁의 성격과도 맞닿는다. 패인트리스라는 미지의 대상과 그가 그리는 숫자와 그 숫자보다 많은 나이의 사람이 사라지는 '고마주' 현상, 이를 막기 위해 패인트리스를 향해 떠나는 원정대. 애초에 이 게임이 그리는 세계는 의문의 '균열'로 인해 산산조각나고 분열된 세계이며, 매년 패인트리스를 무찌르기 위해 떠난 원정대는 조각난 세계를 여행하는 이들이고, 귀환한 원정대는 없기에 새로운 원정대는 언제나 미지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2막 후반부에 이르러 드러나는 진실이 알려주는 것처럼, 미지의 창조자이자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플레이어는 마엘(과 베르소)을 플레이하며 그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진입하고 그림 바깥의 세상 또한 경험하지만, 플레이어의 파티 구성원, 즉 33 원정대는 그것을 전해듣기만 할 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은 마엘과 베르소에게 진실을 전해 듣고 분노와 실망감을 터뜨리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권능을 통해 복원할 수 있는 고마주의 희생자들과 다시금 그려낼 수 있는 세계에 기대와 희망을 품는다. '실시간 턴제'는 그것을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다양한 (일종의 패시브 스킬인) 픽토스와 루미나를 갈아 끼우는 전략에 따라, 적절히 패링과 회피를 누를 수 있는 피지컬에 따라 공략 가능한 적의 범위가 달라지고, 다소 어려운 상대일지라도 그것을 해치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맛보게 해준다. 원정대 캐릭터의 레벨은 존재하지만 적의 레벨은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도 그러한 지점을 드러낸다. 플레이어는 결국 마엘과 베르소를 쫓아 그림 속과 그림 밖의 세계 사이의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구스타브, 루네, 시엘, 모노코 등 다른 원정대원은 선택할 수 없다. 그들은 전능한 어떤 존재, 그림을 그리는 페인터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패인트리스와 함께 살아간다. 그 안에서 어떤 것을 가능성으로 남겨둘 것인가, <클레르 옵스퀴르>는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에 주목하는 기묘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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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데스 스트랜딩 2: 온 더 비치>는 전작보다 쉽다. 픽업 오프로더 트럭은 꽤나 초반부부터 해금되고, 돌부리가 가득해 바퀴달린 차량을 제대로 운전할 수 없었던 전작과 달리 컨트롤만 잘 한다면 트럭을 끌고 설산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사실 게임을 플레이하며 집라인이나 화물 캐터필드 같은 다른 이동 요소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트럭만으로 대부분의 임무를 클리어했다. 게다가 화물 수집이 가능한 스티키 건이나 무기를 달 수도 있으니, 트럭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채굴장이나 모노레일 등 새로이 추가된 요소들은 국도 재건 속도를 빠르게 해주고, 국도를 통한 배송은 뮬이나 BT의 위협을 뚫고 배송한다기보단 장거리 운전의 고됨을 재현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전작이 샘의 배송과 카이랄 네트워크 등을 통해 연결의 '복원'을 테마로 잡았다면, 본작은 연결의 '부작용'을 다룬다. 샘을 플레이하며 겪는 지루함, 즉 너무 잘 연결되어 있어 플레이할 것이 생각보다 적고 지루해지는 상황은 그것의 가장 단순한 지점일 것이다. 전작보다 강화된 다양한 빠른이동 수단(온천, 마젤란 등)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흐르는 타르 조류를 통해 가능해지고, 그것을 역이용하는 적의 등장은 예정된 수순이다.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한 일종의 '인류보완계획'이 등장하기도 하고, 특정인에 대한 복수를 위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멸종을 일으키려 하기도 한다. 연결은 생존의 가능성을 증대하지만 동시에 그 역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전작의 출시 직후 벌어진 코로나 19 팬데믹을 통해 우리는 연결의 모순적인 두 기능을 모두 목격했다. "우리는 과연 연결해야 했을까?"라는 홍보문구는 초연결을 넘어 과연결 시대의 역설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연결되어야 했을까? 게임 내내 수십번은 스쳐지나갔을 프레퍼들 중 극소수만 직접 대면할 뿐인 샘의 입장에서, 연결은 하나의 과업임과 동시에 멸망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것이다. 네트워크를 통해 더 많은 대륙,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네트워크는 연대뿐 아니라 적대 또한 생산한다. 코지마의 취향이 듬뿍 들어간 후반부, <메탈 기어> 시리즈는 물론 뜬금없는 춤사위에 거대괴수물과 메카물, 격투게임, 기타 대결까지 끌어오는 본작의 후반부는 진중하고 우울해 보이면서도 종종 드러내던 어처구니 없는 유머 코드를 맹렬하게 드러내는 순간은 그러한 맥락에서 성립된다. 샘이 해변에서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루프를 겪었던 전작의 최후반부 컷씬들을 떠올려보자. 본작의 엔딩은 결코 그러한 결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매 메인미션이 클리어 될 때마다 조금씩 흩뿌리던 플래시백을 짜맞춘 시퀀스가 등장하고, 샘과 투모로우 사이의 연관에 관해 설명해주는 조금은 긴 컷씬이 있을 뿐이다. 그보다는 샘이 최종결전을 치루는 순간의 거창할 정도로 어수선한, 앞서 말한 코지마의 취향이 듬뿍 드러나는 이미지들을 떠올려보자. 과연결로 인한 폐해는 그렇게 진지한 무언가로 드러나지 않는다. 온라인의 유치한 이미지와 토막글들. 밈은 우리를 웃게 하지만 극우화를 추동하기도 하고 연대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커뮤니티의 짧은 글은 순식간에 논란이 되고 행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연결은 더욱 빠른 반응과 더욱 빠른 결과를 요구한다. 샘의 안전하고 빠른 배송에 프레퍼들이 보내는, 프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가 연결한 국도나 설치물에 보내는 '좋아요'는 전작에서만큼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이 한때는 연결을 통한 연대를 가리켰다면, 좋아요를 더 많이 누적해야 아이템이나 패시브를 해금할 수 있는 본작에서 좋아요는 플랫폼 앱의 별점과 다를 바 없다. 연결은 더 많은 것과의 접촉임과 동시에 더 많은 평가로의 이행임을 본작은 드러낸다. 본작의 중요한 플롯으로 왜 샘과 루, 투모로우, 닐 바나 등이 등장할까? 전작에서 우리는 샘과 클리프의 과거에 관해 무언가 평가할 여지가 없었지만, 본작에서 우리는 샘의 과거를 마음껏 평가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목격한다.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든, 보이드아웃이라는 결과를 비난하든 말이다. 우리가 플레이하는 것은 샘이지만, 과연결 상태의 우리는 힉스와 다름없는 시선으로 샘의 과거를 바라본다. 연결 속에서 한 명의 유저가 될 것인지 트롤러가 될 것인지를 이야기한 것이 전작이었다면, 본작은 연결 속에서 필연적으로 '누구나 잠재적 트롤러'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마냥 쓸데없이 광활한 설정이 가리키는, 꽤나 단순한 메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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