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올리는 2025년 상반기 정리... 사실 이번 상반기 대부분은 학위논문에 힘을 쏟았기 때문에 크게 한 일이 없긴 하다.
1월
졸업을 위한 종합시험을 봤다. 처음으로 토익도 봤다.
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틈: Film in the Gap] 기획전의 일환으로 <에스퍼의 빛> GV를 진행했다. 자캐커뮤와 TRPG 등 게임의 방법론을 기반으로 생성된 이야기와 그걸 영화가 구현하는 방식에 관해 질문하고자 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2월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b38008bc-ad1a-4b06-a7b7-21b10eec113f
게임비평웹진 게임제너레이션에 AR 산책 게임에 관해 썼다. 장기간 플레이하고 있는 <포켓몬 GO>, 그리고 작년 가을부터 갑자기 유행한 <피크민 블룸>을 중심으로 다뤘고, 특히 계엄 이후 집회가 진행되던 상황에서 <피크민 블룸> 유저들이 게임 속에서 경험한 몇몇 사례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소리그림에서 '게임과 영화 사이 세미나'라는 이름의 강의를 진행했다. 제목 그대로 게임에 관련된 영화들, 게임 원작 영화, 게임을 배경 삼는 영화, 게임으로 제작된 영화 등을 다루고자 했다. 매주 하나의 테마를 잡고 진행했는데, 수강생 분들의 적극적인 호응 덕분에 무탈히 진행될 수 있었다. 세미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만큼 나의 강의와 수강생과의 토론을 함께 했는데, 세계만들기(worldbuilding)이나 머시니마 등 이야기해볼 수 있는 주제들에 관해 이야기나눌 수 있었다. 사실 게임과 영화를 엮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은데, <에스퍼의 빛> GV도 그렇고 그러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자리가 여럿 있었다.
디그라 한국학회 학술대회에서 "게임의 행위성과 다큐멘터리"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이후 더 발전시켜 어딘가 투고를 한 것은 아닌데, 이후 게임과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C. 티 응우옌이 <게임: 행위성의 예술>에서 논의한 행위성을 중심으로 <니트 아일랜드>,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내언니전지현과 나>, <에스퍼의 빛> 등 게임을 활용한 혹은 게임과 연관된 방법론의 다큐멘터리 작업들을 다뤄보았다.
3월
소리그림에서 진행된 실험영화 기획전 [심상心象: IMAGERY]에서 손구용 감독의 <오후 풍경>에 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공원에서> GV를 진행했었고, 그 전에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는 <밤 산책>을 초청해 GV 자리를 만들었었기에, 여러모로 쌓인 손구용 감독과의 인연을 통한 자리였지 않을까. GV에서도 했던 이야기지만, <오후 풍경>은 문학을 나름의 원작 혹은 모티프 삼는 <밤 산책>이나 <공원에서>와 달리 특정한 모티브보다는 옛 서울의 정취를 풍기는 장소들에 관한 구조적 에세이에 가깝다. 그러한 지점에서 손구용의 '서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달까.
4월
[월간 디자인] 4월호에 "게임과 영화, 플레이와 스펙터클 사이"라는 글을 썼다. 소리그림에서 진행한 강의를 보고 원고 청탁을 주셨다. 강의에서 했던 이야기, 얼핏 닮아보인다고 할 수 도 있을 게임과 영화가 얼마나 같고 다른지 했던 이야기들을 짧막하게 정리하고자 했다.
아참, 탄핵선고일에 안국역에 있었다. 두 번째 탄핵을 목격할줄이야. 반 년 동안 모두 고생 많았다.
5월
[프리즘오브 34호 너와 나]에 참여했다. 청탁받은 원고는 지난 10년 동안 등장한 포스트-세월호 영화들 속에서 <너와 나>의 위치를 설정해보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영화'라 할 수 있을 작품들을 나름대로 꾸준히 팔로우업하고 있었기에, 10년 동안 누적된 영화들을 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글을 통해 여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언급하며, 실제 재난을 재현하는 영화들의 윤리적 전략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했다. 세월호 혹은 재난을 다루는 작품들에서 피해자와 유가족, 시민은 어떻게 재현되는가. 실제 재난의 직접적인 재현은 무조건적으로 비윤리적인가. 그러한 맥락들 속에서 <너와 나>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사실 <너와 나>라는 영화 자체가 세간의 평과는 달리 아주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피해자가 주인공인 첫 '세월호 극영화'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갖는 모종의 성취는 존재한다 생각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도 프로그램노트로 참여했다. 개막작의 프로그램노트를 맡아 GV 모더레이터는 맡지 않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 즐겁게 원고를 써서 보냈다. 팔레스타인계 스코틀랜드인 감독이 제작한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가 다른 곳에서도 상영된다면 꼭 챙겨보시길! 다른 섹션의 프로그램노트는 공식 블로그에 옮겨져 있는데, 개막작 프로그램노트는 올라와 있지 않아 여기에 공유한다.
<오아시스> Alla Mitiukova 2024
우크라이나 미콜라예브스카 주(Миколаѕвська област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로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의 최전선에 있다. 전쟁 초기인 2022년 3월 러시아군이 코앞까지 도달했고, 현재까지 포탄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는 곳이다. 작년을 기준으로 1만 5천 채가 넘는 건물이 손상되었으며, 2년 동안 수도가 끊기는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파괴된 건물 중에는 학교도 있다. <오아시스>의 주인공은 학생과 선생들이다. 이들은 부서진 학교 대신 허름한 헛간을 교실처럼 꾸미고 수업을 이어 나간다. 성 니콜라스의 날을 맞이해 선생님은 산타 코스튬을 입고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아이들은 노트북으로 노래를 틀고 방방 뛰며 즐거워한다. 시시때때로 공습경보와 전투기 소리가 들려오고 나뭇가지를 주워 난방기를 돌리는, 우크라이나의 매서운 겨울에 전쟁이 겹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선생님은 웃음을 지키고자 한다.
산타를 기다리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선물을 기다린다. 아이들의 노랫말에는 산타가 장난감과 인형을 선물해 주길 바라는 가사가 담겨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소원을 적어 보자고 한다. 소원이 적힌 종이를 비행기로 접어 날려 보낸다.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소원을 말하며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아이의 뒤로 전투기가 비행하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는 종이비행기와 전투기를 곧장 이어 붙여 보여준다. 아이들은 전투기 소리가 무섭지만, 그럼에도 친구와 계속 놀 것이라 말한다. 언제든 폭격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최전선의 마을에서, 아이들은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놀고 숙제하는 일상을 보낸다.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게 오아시스의 물은 더럽다. 세균과 기생충으로 가득한 물이기에, 대중매체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사막에서의 목마름을 즉각 달래줄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아니다. 오아시스의 물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물을 생명수로 만든다. <오아시스>가 담아낸 최전선은 그곳에서 소원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오아시스’가 된다.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 Theo Panagopoulos 2024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감독은 우연히 영화 아카이브에서 팔레스타인의 야생화에 관한 필름을 발견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영국이 점령하던 1930~40년대, 한 스코틀랜드인 선교사가 촬영한 “팔레스타인의 야생화”와 “성지 꽃의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이 붙은 두 편의 컬러 16미리 필름이다. 자막에 따르면, 이 영상은 해당 시기의 팔레스타인을 기록한 최초의 필름 중 하나다. 감독은 자신의 조부모가 태어나고 자랐던 땅을 그제야 마주한다. 자신의 집에서 고작 10분 거리에 있던 아카이브는, 감독의 말처럼 시공간을 거슬러 조부모의 땅을 바라보는 카메라 렌즈이자 그곳과 연결된 포털이다.
감독은 이 필름을 디지털화하고 꼼꼼히 들여다본다. 40분이 넘는 분량 속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등장하는 순간은 2분을 조금 넘길 뿐이다. 감독은 80년 전 필름에 담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얼굴을 확대하고, 그들의 발걸음을 반복하여 보여준다. 마치 자신이 알지도 못했던 조부모의 과거 이미지를 발견한 것처럼. 팔레스타인의 들판을 가득 채운 야생화, 그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여주던 영화는 갑작스레 암전된다. 영어로 쓰여 있던 자막은 아랍어로 바뀐다. 감독은 조금 더 적극적인 상상을 해본다. 스코틀랜드인 선교사가 촬영한 필름에 담긴 식물과 사람의 풍경은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기록하지 못했나.
1920년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은 유엔의 영토 분할안에 따라 유대인 ‘정착민’들이 세운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건국되고, 곧장 전쟁에 휘말린다. 2023년 10월 7일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는 사실 80년 가까운 시간을 이어가는 점령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해방된 국가들과 달리, 팔레스타인은 승전국들의 묵인 아래 지속되는 제국주의 프로젝트다. 영국 통치기부터 팔레스타인을 옥죄고 있는 제국주의는 뜻밖의 기록을 생산하고, 그것은 이 영화로 이어진다. 팔레스타인인의 손으로 촬영되었어야 할 풍경은 스코틀랜드인의 의해 담기고, 팔레스타인에서 나고 자랐어야 할 감독은 스코틀랜드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디아스포라의 민족에 의해 부활한 파시즘이 팔레스타인 땅의 영혼을 학살하는 기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풍경과 함께 기록된 이미지 배후의 역사적 아이러니를 우리 앞으로 가져온다.
<사월의 마지막 날들> Laurence Buelens, Jean Forest 2021
예루살렘 다음 기차역이 있는 팔레스타인 마을 바띠르(Battir), 제1차 중동전쟁의 끝 무렵인 1949년 4월 이스라엘 군인들이 이곳에 찾아온다. 바띠르의 주민들은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이스라엘 군인들이 철수하게끔 한다. 영화는 당시 바띠르에 살았던 이들의 인터뷰, 흑백 필름으로 촬영된 현재 바띠르의 이미지, 그리고 바띠르의 일상을 담아낸 영상들로 구성된다. 인터뷰와 흑백 이미지는 매끄러운 영상이 아니라 디졸브되는 사진들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바띠르의 현재를 담아낸 영상들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포토-노블(photo-novel)의 방법론을 따른다. 실제로 촬영된 이미지를 사용하지만, 그것들을 마치 그림책의 그림들이나 만화의 컷들이 연결되듯이 편집한다. 그럼으로써 마을을 이스라엘 군인들로부터 지켜낸 주민들의 증언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점령하려는 이스라엘에 맞서는 하나의 픽션이 된다.
<사월의 마지막 날들>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단지 1949년에 벌어졌던 순간에 그치지 않는다. 전쟁 동안 500여 개의 팔레스타인 마을이 파괴되었고, 그러한 파괴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현재에도 조직적으로 팔레스타인 마을 주변에 정착촌을 건설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마을을 버리고 떠나갈 때까지 그들을 괴롭힌다.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가 벌어지고 있다면, 서안지구에서는 ‘고원 청년회’와 같은 극단주의자 정착민들에 의한 조롱과 공격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영화가 그려내는 것은 수십 년 전 있었던 하나의 무용담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80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압하고 학살하는 이스라엘의 방법론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목격하는 것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제노사이드의 과거형이다.
6월
양지훈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도라지불고기]의 전시서문을 썼다. 전시서문이라는 형태의 글을 처음 써보는지라 고민이 많았는데, 다행히 작가님도 마음에 들어했다. 전시된 두 작품 <도라지>와 <불고기>가 재일조선인 재현에 관한 기존의 극/다큐멘터리 작품들에 대한 반감 혹은 반대적 읽기에서 출발하기에, 기억나는 최근의 두 사례인 <되살아나는 목소리>와 <가면라이더: 블랙 썬>을 이야기하며 글을 시작했다. 전문은 추후 도록에 실릴 예정.
”(...) 이 평범함을 어떻게 찍을 수 있을까? 평범함에는 매력적인 내러티브도, 눈길을 사로잡는 스펙터클도 없다. 작가는 평범함의 유일한 스펙터클일 수 있을 얼굴마저 지워버렸다. 행여 관객이 저들의 얼굴을 재일조선인의 초상이라는 스펙터클로 받아들일 여지마저 배제한다. 운동장의 인공기, 강당에 걸린 북한 지도자들의 초상, 한복을 입고 안무를 추며 부르는 북한노래. 이것들은 얼굴 없는 재일조선인이 놓인 역사가 아니라 환경을 환기한다. (...)“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9d2cd1a0-37a0-41c9-86e2-2696dde51f4a
게임제너레이션에 기고한 또 다른 글.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개봉을 맞이하여(?) 게임 원작 영화에 관한 글을 청탁받았다. 최초의 게임 원작 영화인 1993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부터 <마인크래프트 무비>까지 여러 영화들을 이야기하며, 게임 원작 영화가 게임을 상대하는 방식의 변화를 다뤄 보았다. 예전의 게임 원작 영화가 게임플레이의 특정한 순간, 게이머가 기억하는 게임의 순간을 영화 안에 새겨넣는 방식을 택했다면, <슈퍼 소닉>과 <마인크래프트 무비>에 이르러 게임플레이뿐 아니라 게임이 향유되고 소비되는 방식, 즉 스트리밍과 밈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다뤄보았다. 사실 원고를 보내고 나서 든 생각이지만, [마인크래프트]처럼 내러티브가 부재한 게임의 영화화에 있어 <레고 무비>는 흥미로운 레퍼런스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놀이'라는 행위를 중점에 두고 그것을 어떻게 내러티브로 녹여낼 것인가의 문제랄까. 언젠가 써봐야지.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심사를 다녀왔다. 영화제 본심 심사는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는데, 함께 영화평론가상 심사를 한 손희정, 홍수정 평론가님, 다른 부문이지만 일정을 함께한 임대형, 윤가은 감독님, 김영민 PD님과 바쁘고 즐겁게 보낸 것 같다. 영화를 몰아보는 게 나름 익숙한 일이긴 하지만, 심사위원의 입장으로 매일 세 편의 영화를 보는건 꽤나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더라…. 보고 싶었던 영화제의 다른 프로그램들(특히 이민휘 음악감독의 <제네럴> 음악상영...)을 못 본건 아쉽지만, 다음에 관객으로 찾아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게 된 시간. 영화평론가상은 <에스퍼의 빛>에 돌아갔지만, 심사과정에서 언급된 <3학년 2학기>, <봄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3670> 모두 할 이야기가 가득한 영화들이었다. 개봉한 <봄밤>과 가을 개봉 예정인 <3학년 2학기>와 <3670>, 아직은 개봉이 예정되진 않은 <에스퍼의 빛>과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모두 많이들 챙겨보길.
6월 20일에는 본심을 진행했고, 합격했다. 논문 인준과 제출 등 행정 절차도 마무리되었고 이제 졸업식만 남았다. 논문은 RISS에 업데이트 되는대로 공유 예정.
7월부터 쭉 일들이 가득 찼다. 어쩌면 논문학기였던 상반기보다 더욱 정신없는 하반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건강을 잘 챙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