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riss.kr/link?id=T17294819
올 상반기를 말 그대로 갈아넣은 석사논문이 RISS에 업로드되었다. 논문 제출이 마무리된 게 7월 초이니 한 달 반 만에 온라인 발행이 된 셈이다. 제목은 "여전히 영화를 ‘트는’ 사람들 - 디지털 시대 영화문화에서 자유 상영 실천에 관한 연구"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커뮤니티시네마'와 작년부터 '마이크로시네마'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는 비극장/비제도 상영을 묶어 다루고자 하였다. 본래에는 그러한 상영을 꾸려가는 행위자에 관한 연구를 목표했는데, 지도교수님과의 오랜 대화 끝에 '상영'이라는 이벤트 자체에 초점을 두되 심층인터뷰를 통해 행위자들이 왜 영화를 트는지 다루고자 했다. 사실 작년 1학기 질적연구방법론 수업에서부터 붙잡고 있던 주제이기도 한데, 그걸 생각하면 꼬박 1년 반 동안 석사논문에 매달려 있던 셈이다. 3월 프로포절 시점에 이미 본론을 제외한 부분은 거의 완성 단계였다.
비극장/비제도/비영리 상영 활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무래도 나 자신의 활동에서 온 영향이 크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오랜 시간 몸담고 있는 영화동아리나 친구와 함께 몇 차례 상영회를 기획했었다. 대부분의 상영작이 '한국독립영화'로 묶이는 것들이며 논문에서 다룬 활동들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다. 논문을 다 마무리하고 후기(?)를 쓰는 지금 시점에 떠오르는 것은 이런 기억이다. 어쩌다 집에 친구들이 놀러오면 영화를 틀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몇 번이고 돌려봤던 영화에 제멋대로 코멘터리를 붙여가며 영화를 보기도 했고, 영화를 단순히 술안주 삼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이 구하지 못하는 영화를 파일이나 블루레이로 틀어주기도 했다. 혼자 봐도 그만인 영화를 나는 왜 틀어줬던 걸까? 논문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1990년대의 공동체상영이나 비디오테크가 (시장의 규모나 검열 등으로 인해) 볼 수 없는 영화를 보게 해주는 것이었다면, 그리고 2000년대의 공동체상영운동이 풀뿌리 운동으로 여겨지지만서도 사실상의 독과점 상황에서 독립영화배급사의 생존전략으로 자리잡아버린 것이라면, 지금의 상영들은 집의 티비나 노트북, 스마트폰으로도 틀 수 있는 영화를 대중 앞에서 트는 것에 가깝다. (물론 여기엔 구하기 어려운 '성배' 영화나, 논문 완료 이후 몇몇 집단에서 시도한 필름의 상영처럼 예외가 있지만) "여전히 영화를 트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은 여기서 나왔다.
논문을 쓰면서 크고 작은 도움과 응원을 받았다. 무엇보다 14명의 연구참여자들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 다소 당황스러운 질문들도 있었을텐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국문초록
본 논문은 디지털 시대의 한국 영화문화에서 여전히 영화를 '트는' 상영 실천, 즉 '자유 상영'의 현황과 의미를 탐구한다. 디지털 시대에 영화는 극장과 필름이라는 전통적 지지체를 벗어나 PC나 모바일 기기의 스크린으로 재배치되었으며, 비합법⋅비공식적으로 유통되는 영화 파일부터 OTT 플랫폼까지 다양한 경로로 향유된다. 영화는 한 편의 작품이기보다는 '콘텐츠'로 소비되고, 영화관람은 개인화⋅파편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불특정 다수가 모여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상영 실천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개인화된 영화보기의 시대에 이러한 시대착오적이며 이율배반적인 실천은 상업 극장이나 영화제, 시네마테크, 독립⋅예술영화전용관 등 시장과 제도의 영화 유통망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본 연구에서는 그러한 상영 실천을 '자유 상영'으로 통칭하며, 그것의 동기와 조건, 그리고 한국 영화문화에서의 역할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네필리아적 성격을 띠는 상영 실천은 1960년대 등장한 대학 기반의 시네클럽부터, 1970년대 '문화원세대'의 시네클럽, 1980~90년대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영화운동, 1990년대의 비디오테크와 시네클럽 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영 실천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사이 영화제, 시네마테크,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형태로 제도화된다. 또한 대기업의 영화산업 진출과 멀티플렉스 극장의 시장 장악 등 산업화도 동시에 진행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기존의 상영 실천은 독립영화의 대안적 유통경로 모색 전략으로서의 공동체상영 운동이나 커뮤니티시네마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영 실천은 충분한 영화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했으며, 제도 내에서의 실천이라는 한계에 놓인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본 연구는 현재의 영화문화를 구성하는 제도가 제도화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여러 사회적⋅문화적⋅기술적 변화 속에서 한계에 봉착했으며, 자유 상영은 그것을 드러내는 계기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에 따라 현재의 자유 상영이 어떠한 기반에서 이루어지며 어떠한 동기와 욕망을 통해 전개되는지, 또 현재의 한국 영화문화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탐구하고자 2020년대 자유 상영 실천을 전개하는 14명의 행위자를 만나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연구 결과 연구참여자들은 비디오세대의 끝자락에 놓임으로써 최초의 영화 관람이 극장이 아닌 세대이자, 산업화⋅제도화된 영화문화에서 비교적 동질적인 극장 경험을 했으며, 동시에 비디오부터 OTT 플랫폼과 디지털 해적질까지 디지털⋅온라인 환경을 통해 공식⋅비공식 유통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영화를 보아 온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특성을 보인다. 이들은 극장이라는 영화의 전통적 지지체의 해체 이후 가능해진 영화에 대한 접근성을 자유 상영의 조건으로 활용한다. 이들은 비공개 트래커 등에서의 영화 파일 공유, 자체제작 자막 커뮤니티 등은 ‘자유 문화’로서의 자유 상영 실천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다. 동시에, 기존에 영화문화를 구성하는 제도에서의 지원사업이나 극장 환경 등은 자유 상영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장과 제도가 지닌 경직성은 이들이 자유 상영을 이어갈 동기를 제공한다.
자유 상영 행위자들은 여러 동기를 갖고 출발한다. 특정한 사회문제에 연대하거나 지역영화라는 의제를 갖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하고, 영화제나 시네마테크 등 제도를 통해서는 상영되지 못하거나 온전히 주목받지 못한 영화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러한 프로그래밍은 행위자에게 하위문화자본을 축적하게끔 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은 피투자자 정체성을 갖게 된다. 이는 자유 상영이 제도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임에도 지원사업이나 극장 대관과 같은 제도와의 협력이 요구되는 이중적 상황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유 상영은 제도화된 영화문화가 소화하지 못하는 영화다양성의 공백을 메우는 중간지대에 틈입하고, 제도의 고착화된 프로그래밍과 관객의 양극화를 넘어서는 영화와 관객 간의 조우를 가능케 하는 문화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기존의 영화 제도가 구성하는 공간들과 더불어 상영-경관(screening-scape)을 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영화문화 거점을 창출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시네필 관객에게는 다양한 영화의 발견을 가능케하고, 비-시네필 관객에게는 영화문화의 입구로 기능한다.
본 논문은 디지털 시대 한국 영화문화에서 자유 상영이 갖는 역사적⋅문화적⋅제도적 맥락을 분석함으로써 개인화된 영화 향유 환경에서도 여전히 영화를 ‘트는’ 사람들의 실천이 갖는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탐구한다. 자유 상영은 아마추어리즘이나 하위문화적 일탈에 그치지 않고 기존 영화문화의 한계를 드러내고 또한 일정 부분 넘어서면서 디지털 시대 시네필리아의 실천적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자유 상영이 기존의 제도의 경계에서 영화문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현상임을 보여주며, 주로 산업과 창작자에 초점이 맞춰진 담론 속에서 다른 실천이 벌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