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 출구> 카와무라 켄키 2025
애초에 게임 [8번 출구]에는 내러티브랄 것이 없다. 게임이 시작되면 텅 빈 복도가 등장하고,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뿐이다. “0번 출구”라 쓰인 안내판 옆에는 ‘나폴리탄 괴담’ 같은 데에나 나올 법한 경고문이 쓰여 있다. 복도에서 이상현상이 발견되면 되돌아오고, 발견되지 않으면 직진하라는 단순한 지시다. 이상현상은 다양하다. 반대편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아저씨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갑자기 불이 꺼지거나, 포스터의 눈이 움직이거나, 쓰나미처럼 물이 밀려오거나, 문의 손잡이가 이상한 곳에 붙어 있는 등이다.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는 (운이 좋다면) 10~20분이면 충분하다. 굉장히 짧은 규모의 이 인디게임은 인터넷 방송을 통해 크게 화제가 되며 인기를 끌었고, 19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여기에는 제작자 코타케 노토케케는 2020년대 온라인 호러의 대표적인 키워드 ‘리미널 스페이스’와 그 유행을 촉발한 ‘백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공간연구자 김영대는 “리미널스페이스론”이란 글에서 리미널 스페이스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인간 활동의 부재”라 지적한다. 리미널 스페이스라는 태그를 달고 유통되면 이미지의 대부분이 쇼핑몰, 식당, 엘리베이터, 공항, 지하철역 등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 개념을 따라) 익명화된 개인이 되어 역시 익명화된 노동자들의 서비스를 받는, 인류학적 공간이 아니라 스쳐 지나갈 뿐인 환승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게 이러한 공간에선 다수의 사람 속에서 익명화된 개인은 군중의 일부가 될 뿐이다. 리미널 스페이스는 그러한 공간에서 작동하는 활동은 사라지고 규칙을 알리는 기호만 남은 무언가라 할 수 있겠다.
그러한 맥락에서 [8번 출구]는 리미널 스페이스와 함께 나폴리탄 괴담이 지닌 규칙의 성격, 다양한 이상현상이나 이상물체를 분류하는 SCP 재단의 인상이 뒤섞인 결과물이다. 픽셀 케인즈의 백룸 영상 이후 무수한 백룸 호러 게임이 스팀에 쏟아진 이래로, 그것의 엑기스만을 적절히 뽑아내 성공한 사례랄까. 때문이 이 게임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의문이 먼저 생겨났다. “이걸 대체 어떻게 영화화하지?” 물론 <마인크래프트 무비>처럼 사실상 내러티브가 부재한 게임을 원작 삼은 영화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유치한 이야기들이 군더더기처럼 얼기설기 붙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카와무라 켄키는 나름 영리한 방식으로 이를 돌파한다. 지하철을 타고 있는 주인공 헤매는 남자(니노미야 카즈나리)의 일인칭 시점으로 시작된 영화는 그가 헤어진 여자친구로부터 아이를 가졌다는 전화를 받게 하고, 우는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이 중년 남성에게 고성의 불평을 듣는 장면을 목격하게끔 한다. 남자에게는 고민이 생긴다. 그러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보지 않은 채 한 자신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지하철에서 빠져나와 일터로 향하던 그는 복도에 갇혀 버린다. 흥미롭게도 그는 단숨에 이 게임의 규칙을 파악한다. 그는 마치 리미널 스페이스나 백룸 같은 온라인 호러나 인터넷 괴담을 이미 능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능숙하게 규칙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상현상을 발견하면 후진, 없으면 전진. 포스터 내용과 환풍구, 문 등을 체크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에게 똑같이 복도에 갇힌 어린 소년이 나타나고, 둘은 동행하게 된다.
영화의 90% 이상이 복도에서 전개되는 만큼, <8번 출구>는 게임에 등장했던 (혹은 영화에서 새로이 선보인 뒤 게임에 업데이트된) 이상현상을 탐색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원작에 없던 등장인물(소년, 여고생, 주인공의 여자친구)이 추가되거나 단순히 복도를 걸어올 뿐이었던 남성이 하나의 캐릭터로 할애되는 등의 변화가 있지만, 영화의 기본적인 틀은 규칙을 따라 이상현상 여부를 관찰하고 8번 복도를 통과하여 탈출하는 것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주인공이 탈출해야 할 동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할 뿐이다. 다시 말해, 영화 <8번 출구>는 게임 [8번 출구]의 게임플레이를 상업용 극영화라는 형식 속에 집어넣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물이다. 일인칭은 물론 영화의 대부분이 이상현상 여부를 관찰하는 주인공을 뒤쫓는, 스테디캠을 활용한 롱테이크라는 점은 주인공의 게임에 관객 또한 동참시키는 것에 가깝다. 마치 [8번 출구]를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의 시청자들처럼. 때문에 영화를 보고 게임을 플레이하면, 이미 공략을 알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셈이 되기도 한다. 게임플레이를 어떻게 극영화라는 틀 속에서 구현하느냐라는 문제에 있어 <8번 출구>는 영리하다. 다만 게임플레이와 더불어 스트리밍이라는 미디어 콘텐츠와 그것의 시청/소비 방식과 인디 호러 게임이 공생하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영화화가 갖는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보다 딱히 점프스케어도 아닌 이상현상을 보고 놀라는 스트리머를 보는 게 더욱 즐겁지 않은가? 이는 기존에 개봉한 <프레디의 피자가게>나 제작중인 [파피 플레이타임], [데드 바이 데드라이트] 등 인디 호러 게임 원작 영화가 갖는 숙명일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의 경쟁상대가 유튜브임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