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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이 Aug 22. 2021

아픔을 마주한다는 것

가족의 우울증

나에게는 7살이 어린 막내 남동생이 있다. 딸만 둘이었던 집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나는 작디작은 새 가족이 생긴 것이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동생이 너무 귀여워 볼을 깨물면 동생은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울었다. 머쓱해져 ‘짜증이 많은 아이군’ 하며, 당황하다가 울음을 그치면 그새를 못 참고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나의 귀여운 마음을 표하곤 했다.     


출처: https://blog.bokjiro.go.kr/292

지금 20대 후반의 그 막냇동생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일본식 말로 ‘히키코모리’)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정신과 약을 먹으며 주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는다. 하지만 이것이 몇 년째 지속되고 있으며,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가족, 가정의 분위기와 그 속 관계들 내의 소통 정도에 따라 큰 격차가 있겠지만, 가장 잘 알 수 없는 것이 가족일 수 있다. 그것의 조건은 하루 대부분 시간을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충분해진다. 제일 친밀하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내 가족이 오늘 처음 30분 대화를 나눈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여 한창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바삐 살았던 시절, 중학생이 된 내 동생은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워낙에 어릴 때부터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었던 동생이었다. 물론 그러한 성격이 나쁘다 할 수 없지만 조금 더 씩씩하고 활달한 성향을 불어넣기 위해 부모님은 태권도와 같은 운동도 시켜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창 커가는 혈기 왕성하고 미성숙하며 나쁜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기만 하였나 보다. 내 동생은 그냥 가만히 있는 착한 아이였을 테니까.  

   

동생의 학창 시절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몰랐다. 그 아이가 대학을 입학해야 하는 나이, 군대를 가야 하는 나이에 스스로, 제대로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답답함만 앞섰다. 모질게, 그 어떤 어리석은 부모처럼, 남들은 한 발 쉬이 들어 넘는 허들이 그 아이에게는 머리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을 못 넘어 주저앉은 아이에게 나는, 너는 이것조차 넘지 못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세상의 혹독함을 말로써 신랄하게 보여주기만 하였다. 충격받고 일어서길 바랐지만 결국 내가 절대 일어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내 인생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길 바라는 이기적이고 못된 누나였다.     


그 후 독립한 못된 누나는 그 동생의 존재를 현실에서 최대한 잊고 살았다. 내 미래를 준비하기 바빴고 내 현실을 살아가기 벅찬 시기였다. 사실 그것은 핑계이고 나는 그런 동생을 마주하기 힘들었고 창피했다. 부모님도 내게 다른 말씀은 없으셨지만, 그 사이 아마 동생의 우울 증세가 심화하고 발현되었던 것 같다. 가끔 집에 갈 때마다 동생의 방은 항상 어두웠고 침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그 아이는 가만히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두는 상태. 어디선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두려워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게 두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어리고 어리석었던 시절 나는 그런 너에게 두려움 한 큰 술을 더 넣었구나 싶었다.    

 

꽤 최근 어느 주말, 나에게도 잠시 그런 순간이 찾아왔던 것 같다. 일주일을 분명 아무 일이 없이 편히 보냈던 것 같은데 그 주의 끝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왔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이니 누워서 푹 쉬면 될 것을 왜인지 모를 불안감에 심장이 뛰고,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침대에 내가 누운 모양 그대로 새까만 구멍이 생길 것만 같이 가라앉았다.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그 찰나에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 오랜 세월이.  

   

나는 그 우울감을 금세 이겨낼 힘이 있었다. 너는 그 힘이 약했던 것이겠지. 그때 너를 붙잡고 세상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대신 살아가는 거 별거 없다고 작은 것부터 하면 된다고, 특별한 걸 할 필요 절대 없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면 조금은 더 좋았을까. 아마 그때는 나도 세상이 무섭기만 한 나이였기에 만만치 않은 삶을 말해줄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이제는 좀 쉽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까짓 거 별거 없다고. 이제 나도 너의 아픔을 마주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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