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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Jan 13. 2019

100살이 되어도 노후대비

3-4



 어린 시절, 명절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온 친구들은 세뱃돈으로 산 새 책가방을 메고 새 운동화를 신고 왔다. 나는 세뱃돈을 다른 친구들처럼 많이 받아보지 못했지만, 그나마 받은 세뱃돈도 새 물건을 사는데 지출하지 않고 저축해준다는 엄마에게 맡겼다. (저금해준다고 가져간 세뱃돈은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어쨌든 우리 부모님은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저축파’이시고 교육방침 중 첫 번째도 저축이었다. 지방에서 십 원 한 푼 없이 맨몸으로 서울로 올라온 우리 부모님은 이러한 성실함으로 서울에 작은 집 한 채를 장만하셨다. 늘 안 쓰고 안 입고 안 먹고 저축으로 이뤄낸 성과였지만 여기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다. 그 시절 부모님의 부부싸움 주제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돈. 늘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야 하기에 넉넉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삶의 태도였다. 그리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이어졌다.

 늘 임시로 살았다. 그 언젠가의 나를 위해 계속 대비만 했다. 사소하게는 물건이 망가져도 망가진 대로 쓰고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감수하며 살았다.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불편함을 참고 살아야 할 정도로 형편이 나쁘지는 않지만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궁상맞은 삶의 태도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미래를 대비한다는 마인드가 금전적인 것뿐만 아니라 삶의 가치관 전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훗날을 위한 목적 지향적 삶이 먼저였고 그러다 보니 현재를 소홀히 살았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면서 지난 삶을 돌아보니 미래만 바라본 태도가 가져온 희생 중 가장 뼈아픈 것은 그 언젠가를 위해 항상 현재를 버렸다는 것이 가장 큰 희생이었다. 


 언젠가 우리 네 식구 유럽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펄쩍펄쩍 뛰시며 자기는 남의 나라에 돈 보태줄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때까지도 부모님은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보시지 못했다. 엄마는 내심 좋아하는 눈치셨지만 아버지의 눈치를 보느라 좋은 티도 못 내셨다. 그래도 큰 딸 말은 잘 듣는 아버지라는 점을 이용해 모든 비용은 내가 댄다는 것을 시작으로 한 번은 가볼 만한 곳이니 함께 가자고 2박 3일을 설득했다. 그렇게 부모님은 늘그막에 처음으로 여권을 만드셨고 그렇게 온 가족의 여행 예약을 무사히 마쳤다. 각자 사고 싶은 거 사자고 세 식구의 용돈도 챙겼지만 뭔가 부족했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나중에 카메라 좋은 거 하나 사서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게 소원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었다. 그거구나. 그 말이 생각나서 카메라도 좋은 걸로 하나 사드렸다. 아버지는 습관처럼, 뭐 이렇게 자꾸 큰돈을 쓰냐며 모아서 나중에 무슨 일 있을 때 쓰라고 말씀하셨다. 웬걸, 막상 여행을 가서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그 모습에 그깟 카메라가 무슨 소원씩이나 된다고 그 노래를 부르셨는지 왠지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완벽한 유럽여행을 했고 그때 아버지가 찍은 사진은 아직까지 우리 가족의 좋은 추억이다. 


 100살 가까이 먹은 노인에게 큰돈이 생기면 뭐 할 거냐고 물었더니 모았다가 노후를 대비하겠다는 말을 어느 책에선가 읽었다. 노년이 되어서도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삶의 태도라니. 웃픈 얘기지만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젊은 시절 바쁘게 일만 하다가 모아둔 돈으로 이제 여행이나 다녀볼까 했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는 인생 선배들의 말을 들을 때면 그런 삶이 바로 우리네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후대비 연금보험, 노후보장보험 등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금융상품들의 광고문구도 갈수록 현란하다.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노후는 당연히 대비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노후대비에만 함몰되어 있는 삶의 태도로 나의 지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돌아봤으면 한다. 가슴 아프지만 내 남편처럼 노후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의 나라에 돈 보태줄 일은 절대 안 할 거라던 아버지는 이제, 유럽의 문턱을 자주 넘으신다. 


photo by 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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