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는데 막상 랩탑을 펼치니 흥미가 붙질 않는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카페의 새단장 때문일까. 뭐든 새로운 생각을 지금부터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냥 집 근처를 산책할 때처럼 느슨하게.
가끔 뭔 생각일까 싶은 이름의 밴드들이 있다. 그중엔 우리는속옷도생기고여자도늘었다네라는 밴드도 있는데, 사전의 아무 장이나 펼쳐 나온 임의의 단어 2개 ‘속옷’과 ‘여자’가 대충 둘다 들어가게 지은 이름이라 한다.
나도 랜덤단어생성기를 검색해서 돌려봤다. ‘메론’이 나왔다. 운동장 저편에서 누가 잘못 찬 공처럼, 야무지게 둥근 오늘의 주제가 그렇게 데굴 굴러와 닿았다.
잠깐, 메론이 아니라 멜론 아닌가? 하긴 갈랐을 때 달면 그만이지 메론이든 멜론이든 알게 뭔가. 그냥 메론으로 하자.
메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중산층’이다. 어릴 때 본 드라마 때문인데, TV 속 서민 가정의 어머니는 선물로 받은 멜론을 가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면 우리도 주.. 중산층 아냐?”
어머니는 메론을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았다. 아마도 메론껍질의 거칠고 단단한 질감이나 한 손에 들었을 때의 그 균형잡힌 무게감도 새로웠을 것이다. 그간 형편이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나아지긴 했지만 누가 봐도 중산층으로는 볼 수 없는 집이었다. 분명히 어머니는 중산층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다. 겨우 메론 한통을 대단히 여기고 중산층이란 말도 더듬거려야 나오던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나는 메론이라면 실컷 먹어봤다. 노래방 주방에서였다. 방학 때 술 파는 노래방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과일안주를 예쁘게 썰어 갖다주면 손님들이 팁을 주기도 했다. 많이 어려보이고 왠지 좀 삐딱한 알바애한테 대접받는 기분을 느낄 거란 기대를 안 했던 것 같다. 도우미(정말 웃기고 창의적인 말이라 생각한다)를 끼고 노는 아저씨들은 구색을 갖춰서 정성들여 썰어놓은 과일을 보면 반색을 하며 지갑에서 만원짜리를 꺼내 기분을 내곤 했다.
메론을 예쁘게 써는 법은 아주 쉽다. 먼저 둥금의 위와 아래를 좀 썰어 평평히 세운 다음 반으로 가른다. 반의 가운데를 또 반으로, 그걸 또 반으로, 그러다보면 초승달 같은 메론 8개가 나온다(초승달 1개나 2개의 행방은 묻지 않기로 한다). 껍질 쪽에 칼을 넣고 슬슬 발라내 연결을 끊고, 한입 크기로 자른다. 그 조각들을 지그재그로 조금씩 밀면 보기에 좋다. 그걸로 끝이다.
메론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아끼지 않는 것, 아니 낭비하는 것이다. 저미듯 썰어 과육을 최대한 살리려 하지 말고 껍질 쪽을 과감히 버릴 것. 바깥 쪽의 질긴 섬유질까지 먹지 말고 가운데의 단 육즙과 부드러움만 취할 것. 버리는 부분이 많아야 더 맛있다. 그런 면에서 메론은 서민의 과일이 아닌 게 맞다.
중산층이란 게 얼마나 엄두도 못 낼 소득과 자산의 수준인지 암담히 느껴본 나는 중산층과 점점 멀어지며 자라오는 동안 메론을 볼 때마다 드라마 속 어머니를 떠올렸다. 노래방 주방에서도 수백통의 메론을 썰면서 그 어머니와 그의 가난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 그 어머니는 덜 맛있는 메론을 먹었을 것이다. 뭐든 아끼던 생활방식대로 껍질을 얇게 썰어 양을 늘리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애 처음 먹어보는 메론을, 별것도 아닌 그 과일 한 통에게조차 주눅이 든 채 먹었을 것이다.
저미듯 썰어 껍질 쪽까지 씹어야 하는 게 가난이다. 가난은 질기고도 질긴 것이다. 맛도 향도 흔적처럼 희미한 조각들로 채워지지 않을 허기를 채우려는 것이다. 예상 못한 좋은 것이 들어온 날에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무언가 아끼려는 마음으로 되려 낭비하는 것이다. 겨우 과일 한통에도 주눅드는 것이다. 그것들이 가난이다.
노래방 주방에서 취객의 지갑이 열리기를 바라며 메론을 썰 때마다 나는 드라마 속 그 어머니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드시지 마시라고. 처음 먹는 메론인데 맛있게 먹으라고. 그깟 과일 아무것도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