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개가 왔다>라는 정이현의 산문집을 읽다가 깨달았다. 인간에게 꼬리가 있다면 이 난장판의 사회는 씻겨내려간 듯 깔끔해지고 우리 삶은 정서적 안정을 찾아 윤기가 돌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꼬리다.
그러게 애초에 퇴화하지 말았어야 됐다. 아니, 왜 꼬리를 없애는가. 남자의 젖꼭지같이 하등 쓸모 없는 것도 두 개씩이나 꼬박꼬박 달려있는데 왜 매우 유용한 꼬리를 퇴화하는 선택을 했는가. 아니… 직립보행 핑계 삼지 말라. 신체적으로 필요한 게 아니다. 꼬리는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이 사회의 꼬리 없는 인간으로서 그걸 고려하지 못한 점에 매우 심심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대충 안 쓸땐 꼬리 허리에 감고다니는 짤 자리 - “드래곤볼 허리에 꼬리” 등 검색했으나 찾지 못함)
꼬리의 사회적 기능을 논하기 앞서, 표한 김에 인간의 기획 방향에 관해서도 매우 심심한 유감을 같이 표하고 싶은 바이다. 인간 기획은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성장하는 데 너무 말도 안 되게 오래 걸린다. 20년 이상 키워줘야 성인이 된다. 성인 된다고 그게 진짜 오롯한 성체도 아니다. 그로부터 한참 더 지나야 겨우 밥값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아예 영영 밥값을 못하는 개체도 상당수다. 땅속이며 바닷속까지 이 행성을 다 뒤져봐도 이 정도로 한가하게 성장하는 건 오직 인간뿐이다.
전에 EBS에서 사자에게 쫓기며 출산하는 사바나의 얼룩말을 본적이 있다. 놀란 건 쫓기면서 출산하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온 새끼 얼룩말이 태어나자마자 사자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이었다. 태막에 쌓여 세상에 떨어진 새끼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녀린 다리로 비틀비틀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곧 절뚝이며 걷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서툴게나마 뛰기 시작했다.
반면 인간은 어떠한가. 걷는 데만 꼬박 1년이다. 수십년을 할애하면서 그렇게 한땀한땀 성장할 거면 다 커서는 강철처럼 강인하기라도 해야지. 그것도 안 되고 다 큰 개체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약하기 짝이 없다. 얼룩말 모녀는 엄두도 못 낼 병원이란 곳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내지조차 못한다.
다 떠나서 최소한 날개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꼬리도 없는 주제에. 날개는 생물학적으로 어렵다고? 꾸짖을 갈! 모름지기 하려고 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에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장기 운영 관점에서 기획하지 못했기에 초기단계에서 날개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근시안에서 벗어나 날개의 중요성을 깨닫고 “날개 니즈 있음, 관계부서 미팅 필요”라고 백로그에 넣어놨으면 됐을 일이다. 인간을 기획한 자가 누구인지는 의견이 분분하겠으나 그자는 필시 신입이었을 것이다.
인간 기획자(신입)가 간과한 꼬리의 사회적 역할은 “Genuine Communication”이다. 진솔하고 성실한 소통이자 정직, 공감, 그리고 취약함을 기꺼이 드러내는 태도다. 이는 숨기거나 조작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생각과 감각을 나누는 것으로, 신뢰와 연결이 피어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꼬리가 있으면 모든 사회적 관계가 훨씬 쉬워진다. 예를 들어보자. 여자친구에게 꼬리가 있다. 데이트를 하던 중 갑자기 여친의 꼬리가 바닥을 탁탁 친다. 당신은 바로 알 수 있다. 아 뭔가 기분이 나쁘구나, 까불지 말아야겠다. 눈치 같은 게 처음부터 필요가 없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팀장님이 회의중에 어떤 아이디어를 냈다. 테이블에 앉은 8명의 팀원중 6명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이건 좋은 아이디어다. 가타부타 따질 필요가 없다.
이런 식이다. 인간에게 꼬리가 있다면 이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이 너무나 쉬워진다. 그만큼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에 자유로워진다. 탁탁, 살랑살랑. 얼마나 명료한가. 몇 가지 꼬리 움직임만으로 서로 진심을 다 알 수가 있다. 저 많은 마음챙김정신건강의학과는 공실이 될 것이고 스트레스성 폭식이 사라지며 게비스톤과 위고비를 만드는 제약사는 상장폐지될 것이다.
물론 몇 가지 사이드이펙트는 예상되는 바이다. 예컨대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심각하게 말라붙은 밥풀을 자신의 꼬리에서 발견하고 힘겹게 떼어내야 할 수 있다. 좌식생활을 하는 우리 한국인은 살면서 그런 경험을 아주 많이 해야만 할 것이다. 필시 꼬리에서 밥풀 떼는 전용기구™도 발명될 것이다. 그밖에 바지공장에서 하의를 다 만든 후에 꼬리 부분을 뚫는 공정을 추가해야 한다든지, 급똥 지렸을 때 그 구멍으로 강렬한 스멜스라익틴쉿피릿이 퍼진다던지 하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꼬리엔 그 사이드이펙트들을 일거에 타개하고도 너끈히 남을 장점이 있다. 바로 꼬리는 귀엽다는 것이다. 퐁실퐁실하고 촉감이 좋다. 심미적 관점에서나 패션/스타일의 측면에서도 탁월하다. 꼬리가 있으면 인간은 지금보다 최소 60%는 더 귀여워질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빽꾸를 꼬리에 하는 꼬꾸나 옴브레 솜브레 발레아쥬 꼬리염색이라거나, 벌써부터 꼬리로 할 수 있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안타깝다. 인간에게 꼬리가 없다니. 없어졌다니. 꼬리 흔드는 댕댕이를 볼 때 우리가 그토록 사랑스러워 하는 이유는, ‘꼬리콥터’라는 말까지 만들며 그 꼬리를 깊이 애정하는 이유는 결핍 때문이다. 그 꼬리가 우리가 영영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퐁실퐁실한 꼬리 대신 헛헛한 꼬리의 흔적을 품고 평생을 살아야 하다니. 그저 원통하다. 이래서 회사들이 PM/기획자는 신입을 잘 안 뽑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