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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임재광 Nov 08. 2021

이방인의 노래

시간을 걷다

세상 시름도 모른 채 가을은 한바탕 축제를 하고 홀연히 떠났다. 축제가 끝난 도시에는 역병이 쓰레기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미처 날뛴다.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무거운 돌덩이를 끌어안은 듯한 마음을 털어내려고 카메라 장비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돌아올 날자를 정하지 않고 딱히 어디로 갈 것 인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바다가 있는 서쪽으로 달렸다.

끝 간 데 없는 수평선으로 태평양 바다와 얼굴을 맞댄 바닷가의 작은 포구가 나를 유혹했다. 밤새도록 창문을 두드리는 익숙하지 않은 파도 소리와 심장을 씻어가는 바다 바람이 낯선 외지인의 밤을 흔들며 깨웠다.

아침 햇살은 선창에서 펄떡 거리는 은빛 생선에 튕겨져 부서지고 갈매기의 합창은 힘차게 포구의 아침을 열었다. 문득, 살아 숨 쉬고 있음의 감사함이 격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먼 길을 달려온 밀물의 파도는 힘차게 육지를 밀어 올리고 썰물은 쉼 없이 육지를 끌어당긴다. 세속에 오염된 내가 아니라, 세속을 오염시키는 내 자아를 꺼내서 바다 물에 씻어 내야겠다. 차가워야 되는 머리는 더워지고, 더워져야 되는 가슴은 차가워진  낡은 아집과 내 자아 안으로 끓임 없이 들락거리는 모순을 차고 짠 바닷물에 헹구어야겠다.                                                              


시간 위를 걷다.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무념무상의 시공에서 낯선 길을 걷는다.

사 계절을 돌고 돌아 걸어온 서해의 길 위로

늙은 해시계가 천천히 걸어갈 때마다

뭉텅 뭉텅 기억을 베어가는 깊은 통증들...

화살처럼 꽂힌 추억 하나 뽑아내자 발 밑에 그리움 한 덩어리 풀썩 주저앉는다.

지나온 길에 뿌려 놓은 무수한 상념을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 굽혀 주워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추억 하나 그리움 하나 가득히 담아 놓는다.

가끔 가슴이 시려올 땐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그래도 한기가 덥혀지지 않는 가슴을 안고 나는 지금 어떤 시간 위를 걷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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