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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Apr 26. 2020

'n번방 사건'의 주범을 '악마'로 규정하는 것


‘n번방 사건’의 주범을 ‘악마’로 규정하는 것은 그들이 본질적으로 악하고 특수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만든다. 이는 n번방 사건의 재발 방지와 성 착취물 유통의 근절을 어렵게 한다. 또한 사회 담론이 가해자의 행위에만 집중되어 피해자 구제에 대한 논의가 형성되는 것을 저해할 것이다.


먼저, n번방 주동자에게 씌워진 ‘악마’라는 이미지는 그들이 왜 악마가 되었는가에 대한 서사로 이어진다. 대중들이 그들의 가정환경, 학창시절, 교우 관계 등에 집중하여 가해자 시선으로 n번방 사건을 접근하게 만든다. 이처럼 주동자에게 그의 범죄 행위를 자칫 합리화하는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담론의 중심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로만 향할 위험을 내포한다. 초점이 ‘악마’라는 이미지에 집중된다면, 이 프레임 안에서 피해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대중들의 중심 서사에서 밀려나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 보호 및 정신적 고통의 경감 대책이 논의되는 시기를 늦출 것이다.    


또한 n번방 주동자를 ‘악마’로 보는 시각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무수한 익명의 공범자들을 간과하게끔 한다. 선한 일반인들과 완전히 다른 ‘악마’라는 이미지는, 이들을 처단하면 동일한 문제를 겪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그러나 고작 몇 명의 주범을 처벌한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깊숙이 뿌리박힌 은밀한 성 착취물 향유 문화를 곧바로 근절할 수 없다. 이러한 성 착취물 유통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성 상품화, 여성 혐오 등 왜곡된 성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n번방의 주범을 ‘악마’로 규정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외면하여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언론은 대중들이 문제 현상을 보는 틀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공론화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이들이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사건을 보도했다면 n번방 사건의 주동자를 ‘악마’로 규정하는 대중의 시각을 전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언론이 앞장서서 대중들의 시각을 변화시킬 방법이 무엇인지 다각도로 고민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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